"여대 침몰 위기? 언론의 마녀사냥"

반복되는 '여대 위기론'... 여대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등록 2014.10.02 17:30수정 2014.10.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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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대 위기'를 말하는 기사 제목들
'여대 위기'를 말하는 기사 제목들송지희

지난 8월과 9월, '여자대학교의 위기'를 말하는 기사가 연달아 보도됐다. <한국경제>는 <현실로 다가온 '여자대학 위기'… 구조조정 평가 하위권 몰렸다>(8월 29일), <여대에 여학생 안 가는 까닭은… "여자대학, 존재의 이유 찾아야">(9월 4일) 두 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신문>(9월 1일)과 <경향신문>(9월 1일), 대학전문 뉴스인 <유스라인>(9월 15일)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로 기획기사를 썼다.

8월 29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여자대학 7개 중 3곳이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잠정 지정됐다. 해당 기사들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는 데 반해 서울 소재의 모든 여대 취업률은 전국 대학 평균 취업률인 58.6%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근거로 '최근 몇 년간 대두돼온 여대의 위기가 현실화됐다'는 식의 해석을 했다.

기사의 댓글을 살펴봐도 누리꾼 대부분이 여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부정적이다. 누리꾼들은 "여대 자체가 성차별이라 보는데 육군사관학교도 여자한테 문 열었는데 이 시대에 무슨 여대냐. 문 닫아라"(ID : 0700****), "여대가 왜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존재 이유도 모르겠는데"(ID : ghjk****)라는 등의 의문을 품었다.

사실 이런 보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히 있어왔다. 실제로 여대를 다니는 학생들은 이런 '여대 위기론'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9월 27일 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언론의 보도를 보고 대부분 '억울하다'고 입을 모았다.

백아무개(25·숙명여대)씨는 "대입 기간이 다가오면서 대학 관련 기사가 많이 뜨는데, 여대를 싸잡아서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 언론이 (누리꾼들한테) 또 다른 마녀사냥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는 "나는 여대에 온 걸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대학평가·취업률 들이대며 '여대 존재 이유 찾으라'는 언론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commons.wikimedia.org

여대 학생들은 여대 중 절반 가까이가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잠정 지정된 것, 즉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평가를 '여대 위기'의 근거로 삼은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천가현(24·이화여대)씨는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런 기사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며 "대학의 경쟁력을 취업률에 두고 평가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요즘 대학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취업 안 되는 학과들을 폐지하려고 하는데, 어문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어이없다"며 "취업률 높이기 위해 학과를 통폐합해 인문학을 축소한 대학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좋은 대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대학 평가를 각각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며 "서울에 있는 여대들 사이에서도 평가 항목별 편차가 크다"고 평가결과를 싸잡아 확대해석 하는 것을 경계했다.


여대의 취업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보도에도 학생들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나아가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기사들은 여대의 낮은 취업률이 여대 위기를 초래한 근거 중 하나라고 봤다. 지난해 사법고시 합격자 중 40.2%가 여성이고, 외무고시 합격자 중 59.5%가 여성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으나 여대들의 취업률은 사회적 수치에 비해 아쉽다는 게 그 근거다.

하지만 '대학알리미'의 2014년 취업률 공시 자료를 봐도 여대 전체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2014년 졸업생 취직 현황 중 여성 졸업자와 여성 건강보험연계 취업자 비율을 보면 경희대 36%, 동국대학교 42%, 서강대 47%, 중앙대 23%, 서울여대 40%, 숙명여대 42%, 이화여대 35%, 성신여대 42%이다.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10.9%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대학생 취업이 힘든 상황이지 여대 졸업생만 취업이 힘든 것이 아니다. 소혜령(22·숙명여대)씨도 이런 사실을 지적하며 "요즘 대부분의 대학생들 취업이 다 힘든 거지 여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거 같다"며 "언론이나 정부가 왜 대학 줄 세우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대여서 취업 안 되는 게 아니라 여자여서 취업 안 돼"

 서울여대
서울여대송지희

윤빛나(23·숙명여대)씨는 "여대를 다녀서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 힘들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듣지만 요즘은 대외활동도 많아 (남녀)공학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다"며 "학생활동을 여자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여대에는 여자들을 배려한 시스템이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정아무개(24·숙명여대)씨 역시 "취업한 언니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여대 나왔다고 편견 갖는 사람은 없고 선배도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다"며 "한창 취업 준비할 때 이런 기사를 봤는데 위축되고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도 학생들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데 언론이 여대를 싸잡아 별로인 것처럼 말하니까, 학생들도 그렇고 학교도 기운 빠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부 기사는 '남녀공학 전환'이나 '다른 대학에 합병'까지 언급하며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었다. 여대 학생들은 지금 시대에 여대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나 차별화된 요소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대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일부의 보도에 대해서는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앞서 만난 숙대생 백씨는 "우리 학교나 이화여대나 역사적으로 여성교육을 시작한 학교로서 의미가 있는데 언론에선 왜 그렇게(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같은 대학의 윤빛나씨도 "우리도 똑같이 4년 동안 대학교육을 받고 졸업한다. 그런데 여대 출신이라고 (사회에서) 꺼려하면 억울하다"며 "여대라고 해서 수업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닌데 여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언론 보도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고 털어놓았다.

드물게 여대를 통폐합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설이(22·서울여대)씨는 "어차피 여자 남자 같이 사는데 왜 여대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미 남녀공학에서도 여성교육이나 여성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만큼 여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대만 묶어서 위기라 하는 것, 선정적인 태도"

 덕성여대 정문
덕성여대 정문연합뉴스

이에 대해 김성욱 서울여대 교수는 "여대 기피 현상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여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다양성의 인정이 필요한 만큼 여대를 없애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대의 위기가 아니라 대학의 위기라는 표현이 맞다"며 "여대 전체를 묶어서 일반화 해 위기라고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 나서서 여대 위기론을 부추기는 선정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여대 학과가 인문학 중심인 만큼 여대 위기론을 말하는 건 대학 인문학 위기와 연결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지난 8월 27일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도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여대에 대한 수험생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어 위기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최 총장은 현행 대학평가는 여러 잣대가 (여대보다는) 남녀공학 위주로 돼 있다"고 대학평가 기준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같은 대학 관계자도 9월 2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여대가 각종 평가지표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며 "최근 불거지는 여대 위기론은 여대만의 위기라기보다 대학 전체의 위기라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관계자 역시 "학교 자체적으로 여성파워를 높이기 위해 교육커리큘럼을 만들고 있다"며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지 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덕성여대 관계자는 "여대가 과거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기에 여성에게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측면에서 시작된 만큼, 그 의미가 이제는 퇴색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고 여권이 신장됐다고 해서 남녀평등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성(남성)에 종속된 존재로서의 교육이 아닌, 여자 전체가 주도해나가는 교육이 여전히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대학 평가에 대해 "각 대학의 상황과 처지가 다른데 획일적인 기준과 잣대로 대학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며 "대학 평가가 과연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인지도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여자대학교 #재정지원대학 #여대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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