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XX, 알바 주제에..." 이러지 마세요

[현장]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증언대회... "알바생도 노동자로 봐야"

등록 2014.10.01 19:24수정 2014.10.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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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담배는 2200원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손님은 2000원을 건넸다. 200원이 부족했다. 돈을 마저 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손님은 "나 돈 없으니까 그냥 줘"라는 답만 반복했다. "정찰제라 안 돼요"라고 했다. "건방진 새X, 알바 주제에"라는 욕설이 돌아왔다. 김범수(24, 가명)씨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할 때 겪은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은 술 취한 남성이 편의점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윗옷을 벗으면서 김씨에게 "싸울래?"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편의점 매뉴얼대로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황당한 요구를 거부하면 도리어 손님이 화를 내거나 폭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어린 아르바이트 직원이라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지만, 이런 상처를 알아주는 사장이나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징징거린다고 해결 되냐... 알바니까 참아"

 청년유니온과 장하나의원실의 주최로 1일 오후 국회에서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증언대회'가 열렸다.
청년유니온과 장하나의원실의 주최로 1일 오후 국회에서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증언대회'가 열렸다.이주영

1일 오후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청년유니온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조씨를 비롯한 여러 청년들이 참석해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부당한 감정노동 사례를 소개했다.

유지영(26, 가명)씨는 PC방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성희롱을 당한 일을 털어놨다.

"어떤 손님이 다짜고짜 '커피 타 달라'고 하더라고요. 커피는 손님들이 직접 자동판매기에 가서 뽑아 먹어야 해요. 그래서 정중하게 '손님, 커피는 셀프입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나 게임하잖아'라며 제 엉덩이를 툭 쳤어요. 또 다른 손님은 제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애인 있냐' '자유분방하게 생겼네, 연애도 자유롭게 하겠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어요."


유씨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한참 어린 초등학생에게 욕설을 들어도 보통 사장들은 '원래 용돈 벌기 힘드니 참아'라고 할 뿐"이라며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한탄했다.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했던 강연화(23, 가명)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계처럼 친절을 베풀어야 하니 어느새 감정노동이 습관처럼 돼 버렸다"고 한다. 강씨는 "한번은 손님으로 가게에 들어갔는데, 다른 손님이 나가자 나도 모르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은 "나도 그런 적 있다"고 맞장구를 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증언자로 참여한 청년들은 젊은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겪는 부당한 감정노동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사회분위기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욕설, 성희롱 등을 겪어도 회사에서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현미(26, 가명)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나친 감정노동이 힘들다고 말하면 도리어 회사는 '너는 아르바이트 직원이니 손님 기분에 맞춰야 해' '징징거린다고 사회가 해결해 줄 것 같냐'고 다그친다"며 "그런 말을 들으면 나 자신이 굉장히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자'로 인정해야"

 청년유니온과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년유니온과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9월 24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강민수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김현주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노동을 제대로 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주나 소비자들이 아르바이트 직원을 '용돈 버는 어린 아이'로 치부하기 때문에 과도하거나 부당한 감정노동을 시켜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들 역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로 인식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함부로 대해서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며 "캠페인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업주와 소비자들의 생각을 바꿔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하나 의원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청년을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청년들을 감정노동 문제로 몰고 있다"며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청년유니온이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전국 15~29세 서비스업 아르바이트 종사자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과도한 감정노동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50.7%는 인격 무시 발언을 들었다고 했고, 39.6%는 욕설이나 폭언을 겪었다고 답했다. 성희롱이나 신체접촉을 당했다는 청년도 15.1%에 달했다. 신체적 위협(15.6%)이나 폭행을 당했다(4%)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감정노동 #청년유니온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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