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똑같이 손발에 피가 흐르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르네상스 초기)-우피치 미술관
박기철
이러한 철학이 현대에도 유럽인의 삶에 남아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앞서 말한 '자릿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메뉴 판에 적혀있는 가격은 커피와 음식의 가격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서빙하는 종업원의 노력에 대한 가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바에 앉아 직접 내 손으로 받아 먹고 마시는 커피와 음식보다 테이블에 앉아 먹는 것이 더 비싸게 된다. 나를 위해 테이블을 셋팅해주고 음식을 날라주고, 치워주는 노력 즉 '사람값'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야박하게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야박한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원가가 과연 얼마나 될 지 나름대로 유추해 본 경험이 다들 꽤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원재료의 가격만을 유추하고 그 외 사람의 노력에 대한 가격을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학교 식당 같은 단체 급식의 경우도 재료의 원가만 계산해서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많다.(물론 재료비로 장난 치는 몰염치한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예전에 꽤 유명한 중견 프랜차이즈 업체의 컨설팅을 맡아 그 프랜차이즈 업체를 1년 넘게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점주들 대상의 교육자료도 훑어 본 적이 있었는데, 비용을 줄이는 방법에 인건비 부분이 들어 있었다. 그 업체 컨설팅을 위해 여러 타 프랜차이즈 업체의 자료도 벤치마킹 했는데, 어김없이 인건비 절감 방안이 필수적으로 들어 있었다.
우리는 사람값을 쳐주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손님을 가족같이 생각해서 푸짐하게 주는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이나, 바쁜 단골집 사장님을 대신해 냉장고에서 직접 소주를 꺼내오는 손님들의 정감 어린 행위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심 혹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가치를 무의식 중에 무시해 온 것이 확대되어 사회 전반 곳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음식을 예로 들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값을 무시하는 인식이 점점 커져 간다. 정당한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법에서 정한 각종 야근과 특근 수당을 당연한 듯이 무시하는 기업가들의 인식에는 이러한 문화적 원인 역시 크다. 당장 식당에서 테이블에 앉았을 때 봉사료를 더 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거나 향후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받기 위해 타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사람값'에 대해 인식하는 노력이 병행되고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누군가의 사람값을 착취하는 이가 될 수 있다. 서비스를 공짜와 동의어로 생각하지 말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