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왔다간 북 실세 3인방... 5가지 숙제 남았다

[분석] 황병서 총정치국장 방남 미스터리... 파격적인 남북 대통로, 가능할까?

등록 2014.10.07 10:43수정 2014.10.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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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흔드는 북한 고위대표단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이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자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실세 3인방의 방남은 그 파격성만큼 파장도 컸다. 며칠 간 언론의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비교적 긍정적인 보도였다. 국제 사회에서도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몇 년 간 북한발 이슈는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3인방의 방문으로, 모처럼 북한 뉴스가 안방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청와대는 북한 이슈가 이렇게 파괴력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황병서 미스터리'

하지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북한 최고실세들의 방남에 단장 자격으로 동행한 것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 이은 북한의 사실상 2인자다. 유일체제에서 2인자는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북한의 사실상 2인자가 또 다른 고위급을 대동하고 방남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이들이 단지 아시안게임 북측 선수단 격려 차원에서 방남한 것이라면 총정치국장이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과 김양건 대남당당 비서로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체육지도위원회는 처형 당한 장성택이 위원장이었고 이를 최룡해가 물려받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체육강성대국 건설'이므로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는 북한의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몰려 있다.

황병서를 포함한 3인의 방문은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대남전략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3인방은 당국자 접촉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서 "지금 남북관계가 워낙 막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좀 더 파격적인 어떤 그런 사건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한 번 문제를 접근해 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작은 통로'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오솔길을 냈으니 큰 통로를 열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파격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것은 남북 관계의 여러 가지 현안들을 현안별로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총정치국장이 아시안게임 선수단 격려 명목으로 방남한 사건을 통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포석을 놓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북한이 통상적으로 사용한 대남정책 수단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말폭탄'을 비롯한 강력한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나칠 정도의 저자세였다.


이는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근시안적인 발상이었다. 효과도 없었다. 강력한 위협은 남북관계를 악화 시키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 시켰다. 저자세 외교는 한국의 보수정부로 하여금 '북한을 더욱 몰아붙이면 붕괴까지 가능하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역효과만 본 것이다.

그간 김정은 시대의 정책은 김정일 시대의 관성과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을 조금씩 보여 왔다.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에 비해서 대외적으로 투명성을 높이려는 과감한 조치를 부분적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2012년 4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서방 언론에 공개한 것이나 실패한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정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후 억류 미국인들에 대한 서방 언론의 취재를 허용하거나,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동행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버럭 화를 내던 과거와 달리 인권보고서를 만들어서 대외에 공개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수령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유일체제인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건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보안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굳이 감추지 않는 것도 북한 국가수립 이후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번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방남은 이 같은 김정은 체제의 변화가 대남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다. 일반적으로 북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중심으로 한 '대남 유화파'와 군부를 중심으로 한 '대남 강경파'로 구분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정치국장이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방남했다. 북한 군부와 통일전선부가 대남정책에서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방남이 담고 있는 미스터리에 대한 풀이는 '파격적인 조치', '오솔길이 아닌 대통로'라는 두 가지 발언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방남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대통로'를 열기 위해 과거의 패턴이나 관성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조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것은 김정은 시대의 변화된 새로운 대남협상 행태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가 대통로를 열기 위한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 분석하고 예측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전략 변화에 매번 헛다리를 짚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 3대 세습 ▲ 장성택 숙청 ▲ 잦은 말폭탄 위협 ▲ 김정은 위원장의 어린 나이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났다. 덩달아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와 분석은 과거에 비해서 훨씬 소홀해졌다.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낸 '숨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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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표, 북 고위대표단 면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대표들이 4일 오후 2014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린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최룡해 노동당 비서,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측 대표단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것은 한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꽉 물린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중국이 'G2'로 쟁패하고 있는 동아시아 상황이 큰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 시켜서 한미일을 결속 시키는 수단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온건파에 속하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나서서 지난 2월과 9월에 북한을 '악'이라고 규정한 것이 그 사례다.

다음으로 ▲ 북한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방 ▲ 박근혜 정부의 속빈 통일대박론 ▲ 한국과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 ▲ 한국 내 민간통일운동의 약화 등이 교착상태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한반도 정세가 구조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실세 3인방은 남북관계가 워낙 막혀 있기 때문에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적어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화 의지를 표명했고,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도 '통일대박론'의 추진 수단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세 3인방의 방남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여론도 늘어났다. 실세 3인방의 방남은 이처럼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 작은 숨구멍을 낸 것이다.

아시안게임 폐막일에 북한의 실세 트리오가 방남한 것은 전격적으로 이뤄져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과거 같았다면 이 정도 비중 있는 인사들이 내려온다면 청와대 방문 요구를 하면서 남한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을 것이다. 그들의 화법은 대략 이랬을 것이다.

'총정치국장 동지를 비롯하여 공화국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들이 내려왔다. 원수님의 특별배려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과 만나면 북남관계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청와대 방문 의사 타진에도 불구하고 북측 인사들은 이를 '쿨하게'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것도 뜻밖이다. 이들 실세 3인방의 방남뿐만 아니라 12시간 체류 후 곧바로 돌아간 것도 국내 어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용기 편으로 내려왔다. 필요하다면 하루 더 머물면서 박대통령과 면담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들이 면담을 요청하고 청와대가 거부했다면 청와대는 상당히 난처했을 것이다. 이들을 만나기도 안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간이 안 되니 다음에 보자며 아주 쿨하게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이들이 면담을 요청했는데 청와대가 거절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연설은 허구라는 게 바로 증명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준비 없이 이들의 면담 요구를 수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부담이다. 미국과 조율 없이 북한의 실세 3인방과 만나는 것도 부담이긴 마찬가지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면담에 대한 이들의 뜻을 살짝 떠봤는데 다행히(?) 이들이 거부했다. 청와대로서는 대화 의지는 의지대로 드러낼 수 있었고, 또 면담의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진퇴양난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일거양득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청와대는 이 기회를 살려 나가려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 실세 3인방이 인천을 떠난 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남북관계를 주문했다. 야당은 분단 70년인 내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고 청와대와 여당을 고무 시키고 있다.

10월 23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가 첫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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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하지만 구조적 경직성은 녹록하지 않다. 당장 10월 23일에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열린다. 여기서는 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사드 미사일 한반도 배치, 한미일 3국정보공유MOU, 한미연합사 용산 잔류, 한미연합전투여단 동두천 잔류 등이 논의될 것이다.

문제는 이 사안들이 한결같이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0월 23일 이후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인지, 이번에 약속한 10월말 11월초에 가지기로 한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미일이 연대해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의 일환이다.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가지고 북한에 접근했을 때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이 나서서 일본에서 투명성을 요구했다. 남북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이 우리 정부에 속도 조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정부 시절, 2006년 중간 선거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이 패배하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서 북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11월 4일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와 미국의 '이슬람국가(IS)'와 전쟁도 변수가 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할 때 남북이 서로 알맹이 없이 남한은 '통일대박론', 북한은 '파격적인 대통로론'을 말하면서 명분 경쟁만을 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두 정부의 파격적인 조치와 국민들의 뒷받침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창수 기자는 통일맞이 정책실장이면서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북한 3인방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정은 체제 #대통로 #한미 S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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