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그림으로 보는 대구 "색다르네"

대구시조시인협희 <시조 시화전>, 10월 31일까지 범어아트스트리트

등록 2014.10.07 19:22수정 2014.10.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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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대구시조시인협회 <시조 시화전>을 찾은 답사자들에게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이 해설을 하고 있다. ⓒ 추연창


대구시조시인협회가 마련한 '시조 시화전'이 지난 10월 1일부터 대구 범어동 아트스트리트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시조시화전은 대구 전역의 이름난 곳들을 글감으로 삼고, 화가들이 그림을 덧붙여 아주 색다른 볼거리가 됐다. 시조시인들은 수성못, 도동측백수림, 갓바위, 북지장사, 서문시장, 팔공산, 안심 생태공원, 지하철, 방천시장, 진골목, 고모역, 계산성당 등 대구의 역사 또는 자연 문화유산 44곳을 시조로 노래했다.

김우연 시조시인은 <서문시장 칼제비>를 노래했다. 서문시장은 예로부터 '대구 큰시장'으로 불려온 전통의 대규모 재래시장이었다. 1601년 이래 망국 시기까지 줄곧 대구에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전체를 관할하는 경상감영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에 엄청난 시장이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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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연 시조시인의 <서문시장 칼제비>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장인광 화백의 그림. 사진은 전시된 액자를 재촬영한 것이므로 실제 작품과는 크기, 색깔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아래의 사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장인광

사르르 녹는 맛과 쫄깃쫄깃 씹히는 맛에
청송국수 아줌마의
구수한 정 묻어나니
사람이 그리운 날에는 칼제비를 먹는다

구름이 흐르다가 빗물로 내리듯이
하나의 뿌리에서
두 맛의 어울림은
두 눈도 함께 보라는
속삭임을 듣는다

대구공정여행A스토립협동조합의 범어아트스트리트 답사여행 안내를 맡은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은 "서문시장이 처음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본래 서성로와 달성공원 사이에 있었는데 일제가 1928년 12월 9일에 강제로 옮겼습니다. 서문시장은 1919년 3.1운동 때 대구 시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이지요."하고 해설했다.

그는 이어서 "그 이후 일제는 대구 사람들이 서문시장에 모여 독립운동 이야기를 하는 게 싫어서 계성학교 옆의 큰 늪을 메운 다음 시장을 아예 이전시켰던 겁니다. 역사를 모르면 사람의 특징 중 한 가지인 사회성과 역사성이 없어집니다. 시 속에 나오는 '사람이 그리운 날'도 몰역사적인 인식으로 읽는 것과, 시장 이전의 역사를 알고 읽는 것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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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희 시조시인의 <대구 도동 측백수림>과 남학호 화백의 그림 ⓒ 남학호

깎아지른 암벽에다 뿌리내린 측백수림
공중으로 힘껏 던진 저 팔매질 좀 봐
파랗게 날선 고함들이 까마득히 걸려 있네


그리움이 아니고야 낭에 발 딛고 설까
아스라한 외침들이 푸르게 솟구치며
이 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서 있네

박방희 시조시인은 <대구 도동 측백수림>을 노래했다. 시 속에 나오는 표현처럼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의 측백수림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측백수림이 자랄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바로 이곳 도동 향산이다.

정만진 해설가는 "남학호 화백의 그림 가운데를 유심히 보십시오"하고 말했다. 모두들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까만 동그라미 같은 것이 보입니까?"하는 해설가의 말을 들으니 과연 무심코 보았던 그것이 눈에 들어 왔다.

"저게 일제 침략의 흔적입니다. 일제는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여 우리나라 암벽 곳곳에 굴을 파고 그 속에 대포를 감추어놓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멸망을 했는데, 측백수림 암벽에도 저렇게 바위를 뚫고 참호를 판 것입니다.  남학호 화백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고 그림 속에 표현해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지요."

시조시인들이 가장 많이 노래한 대상은 단연 수성못이었다. 김봉근, 박계자, 예병태, 이상진 시조시인의 수성못의 자연 풍광 또는 야경을 노래했다. 그런가 하면 조명선 시조시인은 지하철, 황삼연 시조시인은 동성로, 배영근 시조시인은 고모역, 박희정 시조시인은 동촌 해맞이 다리, 이숙경 시조시인은 수목원을 노래하여 상대적으로 현대적 정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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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석 시조시인의 <갓바위>와 김동광 화백의 그림 ⓒ 김동광

대구가 자랑하는 전국적 명물 팔공산과 갓바위도 시조시인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송진환, 문수영 시조시인은 팔공산, 신후식 시조시인은 공산 전투, 정화섭 시조시인은 북지장사, 노중석 시조시인은 갓바위를 노래했다. 다음은 노중석 시조시인의 <갓바위> 전문.

약 항아리 하나 들고
팔공산 자락에 앉아
풀꽃들 피우면서
오는 손 맞이하네
촛불은 길을 밝히고
향 연기도 오르는데
무릎 앞에 놓고 가는
간절한 소원을 챙기면
풀꽃 향기를 싣고
골바람이 불어오고
눈이 먼 중생의 어깨에
가을 햇볕 쌓이네

정만진 해설가는 "시인이 '약 항아리 하나 들고'라고 표현한 것은 현대인들이 갓바위석불을 약사불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러나 갓바위가 지금은 약사불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지만 본래 신라 시대에는 미륵불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갓 모양의 바위도 고려 시대에 얹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라고 해설하면서 "이 시조의 핵심은 '눈이 먼 중생의 어깨'에 '햇볕 쌓이네'라는 종장으로 여겨집니다. 중생은 본래적으로 눈이 먼 존재이지요. 그래도 그 중생의 기도하는 어깨에 햇볕이 쌓이니 좋지 않습니까?"하고 반문했다.

끝물 단풍 보러 왔다 내 속을 들여다 보네 멀어서 볼 수 없는
그대 모습 그려보네
팔공산 휘굽은 길을 한발 앞에 펼치니

"문수영 시조시인의 <가까운 혹은 너무 먼> 시조를 보니 팔공산에 단풍을 보러 갈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하면서 운을 뗀 정만진 해설가는 "제가 소설가이니 문학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할 수 있겠죠. <가까운 혹은 너무 먼>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각각 4음보의 초장, 중장, 종장이 한 편의 작품이 되는 시조의 일반적 형식을 깬 파격이라는 점입니다"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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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영 시조시인의 <가까운 혹은 너무 먼 1>과 민병도 화백의 그림 ⓒ 민병도

"초고에는 중장에 있었을 것 같은 '멀어서 볼 수 없는'이 초장에 붙으면서 중장이 아주 짧아졌습니다. 이는 '그대 모습 그려 보네'에 의미 무게를 부여하고 싶은 시인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멀어서 볼 수 없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인은 그대 모습을 그려보는 이 순간, 이 행동의 가치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는 "두 번째 특징은 자연의 천연성과 사람의 복잡미묘한 감성을 절묘하게 합일치시켰다는 점입니다. 이 시조는 '끝물'과 '내 속', 그리고 '볼 수 없는 그대'와 '휘굽은 길'이 각각 사람과 자연의 속성으로 서로 대조를 이루는데, 자연을 묘파한 '끝물'과 '휘굽은 길'이 자연 그 자체를 말하는 듯하면서도 시적 자아의  내심을 다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하고 해설했다.

시인은 시적화자의 마음속 '끝'을 노래하고 있다는 해설이 이어졌다. 팔공산의 길은 '휘굽은' 모습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한발 앞에 펼치'고 만다는 것이다. '멀어서 볼 수 없는 그대 모습을 그려 보'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휘굽은 팔공산의 길을 펼쳐 마침내 단풍을 눈에 담는다. 그런데 그 길 '끝'에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모습'이 있다. 그러므로 단풍도 '끝물' 단풍이다. 하지만 끝물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시인은 끝내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정만진 해설가는 "시조시화전을 마련해준 대구시조시인협회에 감사하는 생각을 가집시다. 시조시화전이 앞으로 또 열린다면  비슬산, 도동서원, 홍의장군, 육신사에 대해서도 노래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도 끝물 단풍을 보러 가야지요?"하고 해설을 마쳤다.

대구시조시인협회의 시조시화전은 오는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범어아트스트리트는 대구 지하철 2호선 범어역 안에 있다. 문의 전화는 053)422-1248번이다.
#대구시조시인협회 #범어아트스트리트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문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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