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 통 하나에 6시간 동안... "심장이 너덜너덜"

비행기 지도 화면만 뚫어져라... 별별 상상 다했다

등록 2014.11.04 14:28수정 2014.11.0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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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선크림 스프레이 ... ⓒ 정현순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안 됩니다!"

저 말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오는 듯했다. 그뿐 아니라 온몸에 피가 멈추는듯하고 손발이 저려왔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내 양옆으로는 언니와 올케가 앉아 있어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랐다. 내가 '그' 말을 하면 이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 심장이 콩닥콩닥

지난 10월 26일 언니, 올케, 나 이렇게 셋이서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발칸 4국 여행길에 올랐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길이 즐겁기만 했다. 26일 새벽 비행기라 25일 밤 10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에서 모두 합류했고 여행사와도 미팅을 마쳤다.

26일 새벽 1시 30분에 비행기에 올라 드디어 첫 도착지인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베오그라드를 가기 위해서는 도하에서 환승해야 했다.

"그런데 도하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래서 나도 찾아봤지. 도하는 카타르의 수도이고 2006년 아시안게임을 했던 곳이래." 
"아하...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다, 했지."

언니와 올케가 대화를 나눴다. 나도 조금 들뜬 마음인지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셋은 수다로 꽃을 피웠고,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카타르 시각으로 새벽 5시 25분에 도착했다. 9시간 30분을 날아 환승 공항인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에 도착한 것이다. 카타르는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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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목적지 ... ⓒ 정현순


도하에 도착해서 공항의 상가도 둘러보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환승객을 위한 수면실과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실도 발견했다. 우리나라 공항과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우리나라 공항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비행기를 탔고, 목적지인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중간에 앙카라를 잠시 경유하는 코스였다. 그때까지는 마냥 즐거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가 곧 이륙했다. 그러고 10분 정도 지났나? 그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한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인천국제공항에서 짐을 부칠 때 직원이 하던 소리였다.


"여기에 스프레이나 라이터 등은 없지요?"
"네, 없는데 왜요?"
"있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하고 굉장히 강한 목소리로 강조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하필이면 환승을 시작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때 함께 떠오른 생각은 요즘 많이 사용해 온 '선크림 스프레이'였다. 얼마 전 딸 아이가 사준 것이었다.

'아니 내 캐리어에 선크림 스프레이가 있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스프레이 통 하나 때문에 온갖 상상...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뒤엉키기 시작했다.

'스프레이 통이 흔들려서 자동으로 폭발하나? 그러니 스프레이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을 테고. 그럼 공중에서 비행기가 폭발하겠지. 스프레이가 폭발하면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다 죽겠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대한민국 정현순이란 사람이 스프레이 선크림을 가지고 타서 비행기가 폭발했다는 보도로 전 세계가 시끄럽겠지. 한국에 남은 식구들은 달랑 집 한 채 있던 것도 없어지고 거지가 될 것이고. 이젠 난 어떡하면 좋지. 비행기를 세우고 짐을 찾을 수도 없고.'

온갖 상상에 안절부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비행기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던 터라 나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나질 않았다. 자리에 있는 작은 TV로 지도만 보고 '어디까지 왔을까?' 하며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간이 지나 다시 확인해보면 2분~3분이 지난 것이 고작. 아직도 목적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도하에서 2시간 30분 동안 있었으니 '스프레이 통이 진정이 됐겠지' 하면서 나름대로 작은 위로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앙카라에서 비행기 짐칸을 여는 순간 펑펑하고 터지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숨소리가 가빠졌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처음부터 그것을 넣었더라면 생각이 날 수도 있었을 텐데. 왔다 갔다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씩 집어넣었던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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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먹어야지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 .. ⓒ 정현순


지도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어느새 끼니때가 됐는지 점심이 나왔다.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밥 생각이 있을 리 없었다. 점심을 받아들고 잠시 생각하다 '그래도 먹어야 시간이 빨리 가지' 하곤 점심을 먹었지만 제대로 먹힐 리가 만무. 한 숟갈 한 숟갈이 마치 지옥을 드나드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럼 없어야 하고말고. 아직 스프레이가 터져 비행기 사고가 났다는 말은 없었잖아. 아니야, 하지만 운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을 거야'하고 생각했다. 불안감 아니, 공포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무사히 베오그라드에 도착해야만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지옥을 넘나드는 6시간 동안의 비행이 끝나고,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짐도 무사히 찾았다. 다행 중 다행이었다. 그제야 난 웃을 수 있었고 언니와 올케에게도 말할 수 있었다.

올케는 "지금까지 스프레이 때문에 사고 난 적은 없었잖아요"했고, 언니는 "그래, 나도 그 얘기 들었다. 너 걱정 많이 했겠구나. 우리한테도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그나마 처음부터 그 생각이 안 나서 다행이다. 비행기 타자마자 생각났으면 넌 지금 반은 죽었을 거야.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언니나 올케가 그랬어도 나처럼 그랬을 거야. 얘기한다고 일이 해결 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 심장이 너덜너덜 다 해진 느낌이다."

다행히 여행은 계속됐다

큰일이 해결된 뒤라 첫 일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첫날 일정이 모두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문제의 선크림 스프레이를 꺼냈다. 그 물건은 아무 일 없이 아주 잘 있었다. 다음날부터 선크림 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리고 바르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더불어 가이드에게 관련 사실을 물어봤다. 가이드는 "요즘은 스프레이 상품이 많아서 절대로 못 싣게 되어 있어요. 저도 수신기를 30개 정도 한꺼번에 가지고 탔다가 빼앗긴 적 있어요. 수신기 안에 아주 작은 칩이 있는데 그것이 모여 있으면 폭발의 위협이 있다네요"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언니, 올케와 나는 놀라며 서로 쳐다보기도 했다. 여행이 끝나는 날 선크림 스프레이가 남아 있어서 숙소에 팁과 함께 놔두고 나왔다. 청소하러 오시는 분이 괜찮다면 사용하라는 뜻으로.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알 수 있었다. 작은 불씨가 큰 불씨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교훈을 단단히 얻기도 했다.
#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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