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머니쿠스 시대... 시인의 눈에 비친 돈은?

[서평] 돈에 울고 시에 웃다 <돈詩>

등록 2014.11.12 15:44수정 2014.11.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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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바람 한 줄기로 허기를 달래며 시집 한 권 배낭에 넣고 영혼의 자유를 찾아 떠나던 시절은 아득한 일이 됐다. 국밥 한 그릇 값인 시집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돈詩>는 정끝별 시인이 시를 통해 읽어 낸 자본주의 증상들이다. <돈詩>에는 내가 존경하는 김남주 김수영 시인부터 송경동 시인까지 총 예순여섯 명이 쓴 돈과 연관된 시와 정끝별 시인의 해설이 달려있다.


a 돈詩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시인이 엮고 해설한 돈에 관한 시

돈詩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시인이 엮고 해설한 돈에 관한 시 ⓒ 마음의 숲

호모 '머니'쿠스가 상상하는 돈으로 정복할 수 없는 사람들과 그들의 사회는 어떤 것일까? 대표적인 것이 시를 짓는 시인들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돈과 맞짱 뜰 수 있는 인간 정신의 꽃, 시를 짓는 시인이야말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하라고 했을까? 정끝별 시인은 괴물 자본주의 바깥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킬 동력을 키워내는 이들은 바로 시에 웃는 시인과 독자들임을 상기시킨다. 시인이라고 햇살 한 줌으로 배를 불릴 수야 없겠지만 시인은 여전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찍이 함민복 시인은 시집 한 권이 국밥 한 그릇 값이고 시 한 편이 쌀 두 말 값이라고 쓴 적이 있다. 시집 한 권을 엮어내기 위해 감내하는 산통을 생각한다면 시인은 참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비록 시를 읽는 독자가 줄었지만 시는 여전히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는 영혼의 샘물이다. 인간의 영혼이 정화되고 충전되는 시는 어쩌면 어머니의 품을 닮았는지 모른다.

<쓰봉 속 십만원>

권대웅


"벗어 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 주듯이
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
속곳 깊숙이 감춰 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
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
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
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
엄마 전 재산 십만원

그것마저 다 쓰지 못하고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온몸을 찡그리며
통증에 몸을 떨었다 한 달 보름
꽉 깨문 엄마의 이빨이 하나씩 부러져 나갔다
우리는 손쓸 수도 없는 엄마의 고통과 불행이 아프고 슬퍼
밤늦도록 병원 근처에서
엄마의 십만 원보다 더 많이 술만 마셨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고참이 된 누나가 지쳐가던
성탄절 저녁
엄마는 비로소 이 세상의 고통을 놓으셨다
평생 이 땅에서 붙잡고 있던 고생을 놓으셨다

고통도 오래되면 솜처럼 가벼워진다고
사면의 어둠 뚫고 엄마가 날아간다
쓰봉 속 십만 원 물고
겨울 하늘 훨훨 새가 날아간다

'쓰봉 속 십만원'을 읽으니 시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기 전 까만 손지갑 깊숙이 빳빳한 오만 원짜리 지폐 10장으로 갈무리해 뒀던 오십만 원이 생각나 코끝이 찡해진다. 정끝별 시인은 돈이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돈을 몸 한가운데 품고 산다고 했다.

손 마디가 거칠어지도록 일해서 번 돈, 혹은 찬 값을 아껴 꼬깃꼬깃 모아 둔 지폐를 일바지나 '쓰봉' 속곳 속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손주에게 건네던 할머니를 요즘은 잘 볼 수 없다. 할머니의 구겨진 지폐 한 장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나도 얼마 전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마음이 담긴 선물을 마음을 담아 나눈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분이 손수 재배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캐서 보낸 고구마였다. 돈 만 원이면 사 먹어도 될 고구마를  집까지 가져 가려면  번거로웠을 것이다. 다만 나눠 먹고 싶다는 마음을 알기에 받는 이도 기뻐했다.

친구를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인간 관계에는  물질로 대치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호모머니쿠스 시대에도 시는 여전히 돈보다 중요한 그 무엇으로 우리 안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영혼을 지닌 존재이기에 정끝별 시인의 말대로 돈에 속수무책인 시와 시인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적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시가 쌀 두 말이 아니라 가장 비싼 값을 받고, 국밥 한 그릇 값인 시집이 불티나게 팔려,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시인들의 주머니도 영혼만큼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돈詩> 정끝별 엮고 해설/ 마음의 숲/ 1만 1800원

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마음의숲, 2014


#돈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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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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