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자리에서 하차한 김현정 PD가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CBS 사옥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뉴스쇼는 강자들에게도 여는 프로들처럼 마이크를 들이대지만, 약자들에게도 마이크를 꼭 열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했기에 청취자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유성호
"저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그리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쓴소리 잘 못하고요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요, 강하기보다 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10년간 시사(프로그램)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애청자 여러분의 격려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한숨 쉬었던 그 많은 순간들, 잊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요,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 약한 이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김현정이었습니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아래 뉴스쇼)>의 앵커였던 김현정 PD가 하차하며 청취자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의 일부다. 지난 7일 김 PD는 재충전을 위해, 그동안 진행하던 <뉴스쇼>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뉴스쇼> 앵커를 맡은 지 6년 6개월 만이다.
김 PD는 2001년에 PD로 CBS에 입사하여 줄곧 음악방송의 연출을 맡아왔다. 그랬던 그가 시사프로그램을, 그것도 연출이 아닌 진행을 맡은 건 2004년이었다. 오후 시사프로그램 <이슈와 사람> 진행자가 2주 휴가를 가서 대타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좋아 눌러앉았다.
4년 정도 진행을 하던 김 PD는 2008년 새롭게 시작한 <뉴스쇼>에 앵커로 발탁되었다. 당시 아침 시사프로그램은 현재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진행하던 MBC <시선집중>의 독무대였다. 당시 누구도 <뉴스쇼>가 이처럼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 PD의 진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차츰 청취율도 올랐고 손석희 앵커의 <시선집중> 하차와 맞물려 <뉴스쇼>는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간판이 되었다. <뉴스쇼>는 사회의 뜨거운 이슈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방송이 끝나면 인터뷰를 인용하는 기사들로 넘쳐났다. 김 PD는 때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청취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가 하면 진정성 있는 질문으로 청취자들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 PD가 하차하던 7일 아침 <뉴스쇼>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청취자들은 <뉴스쇼> 홈페이지 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그의 하차를 아쉬워했다. 지난 10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김 PD를 만나 소회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
마지막 순간 깔린 <이매진>... "그렇게 슬픈 노래인지 처음 알았다" - 당장 하루 일과가 달라져셔 어색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느긋하게 일어나려고 알람을 7시로 맞추고 잤지만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지더군요. 몸이 거짓말을 못해요(웃음). 그래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침을 맞았어요. 게다가 의도적으로라도 뉴스를 보지 않고 머리를 식히려 하는데 어느샌가 자동으로 뉴스를 찾아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죠. 출근하고 나서는 정오 방송을 위한 노래를 선곡해요. 창밖을 보면서 그날의 습도와 바람의 세기, 구름의 색깔 모든 걸 고려하며 한 곡 한 곡 정성스레 선곡을…. 정말 전혀 다른 생활이죠."
- 10년 만에 음악프로그램 연출자로 돌아왔는데, 어땠어요?"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거라 낯설고 긴장되더라고요. 밥도 안 먹혔어요(웃음). 그런데 저를 따라서 와주신 <뉴스쇼> 청취자들이 문자 메시지로 알은 척도 해주시고 노래 신청도 해주셔서 덜 외로웠습니다."
- <뉴스쇼> 마지막 날 이야기를 좀 해보죠. 전날까지만 해도 '시원섭섭'하다고 하셨는데 당일 마지막 방송에서는 울먹이셨습니다. 심정이 어땠나요?"'영영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울긴 뭘 울어'라는 생각이었어요. 실제로 당일 아침까지 여느 때처럼 방송을 준비하느라 마지막이란 걸 실감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김장훈씨와 인터뷰를 끝내고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깔리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그 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인지 처음 알았습니다(웃음). 그래도 감정을 겨우 억누르며 인사멘트까지는 했는데 온-에어 불이 꺼지자마자 참았던 게 복받쳐올랐어요. 10년 동안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깔린 배경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당일 아침까지도 방송을 준비하느라 저도, 제작진도 미리 배경음악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3부 직전에 '뭘 틀까' 하고 PD가 물었는데 순간적으로 떠오른 곡이 <이매진(imagine)>이었어요. <뉴스쇼>에서 매일 들려드리는 '오늘의 노래'로 이매진을 가장 많이 틀었거든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자는…. 의미가 좋아 틀자고 제가 제안했는데 막상 전주가 나오니, 맙소사 이렇게 구슬플 줄이야!"
- 2010년 출산휴직으로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전혀 달랐어요. 당시에는 잠깐 쉬는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묘한 감정은 아니었어요, <뉴스쇼>를 한 지도 얼마 안 된 시점이었구요. 그러나 지금은 마치 10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에요.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봅니다. 서로를 위해 합의하에 헤어지는 건데도 그러네요(웃음)."
- 그 후 복귀 인터뷰 때 '헤어진 연인과 재회한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맞아요. 당시 인터뷰 때도 그랬죠. 그러고보니 제가 <뉴스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 같아요."
- 지난해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에 해당하는 조치를 받기도 했잖아요. 혹시 그것이 하차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계시던데요?"전혀 아닙니다. CBS에선 그런 것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아요. 말 그대로 재충전을 위한 쉼이에요. 지난 10년을 돌아보자면, 말에게 양쪽 가리개를 끼우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한 시간 같아요. 그저 밤낮으로 주야장천 뉴스만 보고 달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 소진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금쯤은 잠깐 안대를 떼고 다른 곳도 바라보면서 저를 더 채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방송 하루이틀 하고 말 게 아니라면 말이죠. 손에 쥔 것을 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만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아쉽다', '서운하다'는 각종 문자며 전화가 쇄도하고, 제 마지막 인사를 듣고 엉엉 울었다는 분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정말 놀랐고 감동했습니다. 어떤 분은 '급속 충전'을 하고 돌아오라며 협박성 문자도 보내셨는데요, 실제로 '아니, 이렇게까지 청취자들이 원한다면 급속충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
"지난 10년 평가하자면 '80점'... 치열했기에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