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 자식인지 알아?"... '관시' 없으면 서러워

[중국 칭다오 신세대 견문록 13] 천차만별 '소황제' 이야기

등록 2014.12.01 18:20수정 2014.12.01 18:20
2
원고료로 응원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뭐하나. 그 월급 평생 모아야 집 한 채 살 수 없는 걸. 애인이 있으면 뭐하나. 집이 없으면 결혼해 주지도 않을 걸. 결혼을 하면 뭐하나. 양가 부모와 자식은 어떻게 부양하나."

5학년 남학생이 설계실에서 푸념을 했다. "소황제로 자란 녀석이 엄살은!" 내가 끼어들자, 옆에서 다들 엄살이 아니라 현실이고 진실이란다. G2가 된 중국에서, 남들보다 등록금을 1년 더 내는 5년제 건축학과에서, 반질반질 고생티 하나 없는 얼굴들이, 졸업을 앞두고 한다는 말이 그랬다.

 빠른 속도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칭다오 산둥루 비즈니스센터 지역.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인 완다(萬達)그룹의 쇼핑몰과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왼쪽), 그곳에서 도보로 불과 15분 거리에 저소득층 주거지가 있다(오른쪽).
빠른 속도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칭다오 산둥루 비즈니스센터 지역. 중국 최대 부동산 업체인 완다(萬達)그룹의 쇼핑몰과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왼쪽), 그곳에서 도보로 불과 15분 거리에 저소득층 주거지가 있다(오른쪽). 김소연

무늬만 소황제?

개혁개방이 시작될 무렵 중국 정부는 '한 자녀 낳기' 정책을 강제적으로 시행했다. 전통적으로 대가족인 중국 가정에서 단 한 명의 자녀만 허용되자, 그 아이는 집안에서 금쪽같은 자식이 되었다.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금지옥엽으로 자란 아이들은 '소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립심과 참을성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소황제를 두고 기성세대는 '소황제 증후군'을 거론하며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다 소황제인 것은 아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진짜 소황제와 무늬만 소황제로 구별된다.

나는 4학년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 반 정도의 학생들이 외국 유학이나 중국 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미국 유학에 관한 최신 정보를 얻고 스터디 그룹에 나가느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혼자서 아등바등 유학준비를 하는 학생은 볼 수 없었다. 그만큼 다들 유학을 갈 만한 형편이었다.

"왜 유학 가니?"
"유학을 갔다 와야 제대로 대접을 받아요."


나라면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 선진 학문에 대한 동경, 한창 풋풋한 나이에 자유롭게 이국을 떠돌고 싶은 욕망, 그런 감상이 먼저였을 것이다. 명색이 디자인을 전공하는데, 더구나 20대 초반, 곧 죽어도 낭만을 꿈 꿀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학생들의 대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유학도 유학 나름이고 대접도 대접 나름이라면서.

건축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일단 미국 유학에 목을 맨다. 중국 건축계도 점점 미국 학위가 대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대학은 아니고 명문대여야 한다. 그래야 귀국 후에 급이 다른 대접을 받는단다.


부와 권력은 학력 순... 하지만

외국 유학에 대한 기대치가 이 정도라면 중국 내 대학원 진학은 어떨까? 최선이 아닌 차선일까? 그렇지도 않다. 사실 중국의 명문대 대학원 입학은 웬만한 외국 유학보다 어렵다. 건축학과가 유명한 칭화대, 톈진대, 상하이 통지대, 난징 동난대 입시에 떨어져 차선으로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있다.

그들이 명문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부와 권력이 학력 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의 억만 장자와 정계 지도자를 봐도 칭화대학, 베이징대학, 저장대학, 푸단대학, 런민대학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명문대가 모든 학생들에게 찬란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 즈음 중국 관영방송 기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니 싱푸마?"(당신은 행복하세요?)라고 물었다. 그 때 별의별 사람이 별의별 대답을 해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 중 베이징대학 남학생의 인터뷰 동영상이 있었다. 행복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남학생은 윈난 방언으로 대답했다.

"우리같은 가난한 학생들의 행복은 모두 '관얼다이(官二代, 고위 공직자의 자녀)'와 '푸얼다이(富二代, 부잣집 자녀)'에게 빼앗겼다.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들고 사회에 대한 스트레스도 이렇게 많은데, 무슨 행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기자가 대뜸 "너 윈난 출신이지? 못 알아듣겠으니 보통화(표준말)로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남학생은 보통화로 이렇게 고쳐 말했다. "아, 난 아주 행복해. 취업 기회는 갈수록 많아지고, 학습 환경도 날로 좋아지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는 사회와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학교가 너무 고마워." 바뀐 대답은 그 남학생보다 먼저 인터뷰한 교수의 말과 거의 같았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 베이징대 대학생이 가난한 중국 대학생의 현실을 꼬집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 베이징대 대학생이 가난한 중국 대학생의 현실을 꼬집었다. CCTV 화면 갈무리

방언과 보통화의 내용 차이를 두고 여러 댓글이 올라왔다. 억지로 받아낸 대답이라는 둥, 행복하다던 교수는 사실 행복하지 않다는 둥, 재치 있는 대답이었다는 둥... 카메라와 보통화가 남학생에게 자기 검열의 장치가 되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인 비아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영상의 남학생이 말한 '관얼다이'와 '푸얼다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관얼다이, 푸얼다이... 중국의 신귀족

'관얼다이'와 '푸얼다이'는 진짜 소황제처럼 귀하게 자랐고 신중국의 신귀족으로 행세한다. 언론에 '관얼다이'와 '푸얼다이'가 나오면 기사 내용은 비난 일색이다. 온갖 사치품에 연예인 스캔들, 갖가지 위법 행위가 줄을 잇는다.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 후 단속 경찰을 폭행해 숨지게 하거나, 명품 외제 차를 타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경찰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누구 자식인 알아?"

때로는 부모가 더 심각한데, 자식이 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사죄와 보상은커녕 피해자를 협박한다. 그들은 특혜 논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적은 별로인데 명문대에 합격하고, 실력이 없는데도 특채로 공무원이 되었다가 초고속 승진을 한다. 몇 년 전 일부 국유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 공고에서 '푸얼다이'를 사절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푸얼다이'는 업무 태도가 나빠서 기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두고 누군가는 국유 기업이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쇼를 벌인다고 했다. 하긴 '관얼다이'와 '푸얼다이'가 취직을 걱정할까. 부모의 돈과 힘으로 회사를 차리고 부모의 관시를 이용해 각종 이권과 특혜를 챙기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당시 많은 젊은이가 '푸얼다이' 사절 공고에 박수를 쳤다. 특히 '푸얼다이'는 건방지고 업무 태도도 나쁘다는 평가에 짜릿한 통쾌함마저 느꼈다. 그만큼 보통사람들은 '관얼다이'와 '푸얼다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관얼다이'와 '푸얼다이'의 반의어는 '핀얼다이(가난한 집안의 자녀)'다. 같은 대학교 학생이라도 '핀얼다이'는 '관얼다이'나 '푸얼다이'와 출발선부터 다르다. 비빌 언덕이 없는 '핀얼다이'는 대학을 나와도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고, 공무원 시험에서 1등을 해도 뒷배가 없으면 면접에서 밀린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반발심이 과장되게 투영된 것이려니 싶었다. 우리 반에도 '관얼다이'와 '푸얼다이'가 있었지만, 언론에서 비판하는 '관얼다이'와 '푸얼다이'식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간혹 건방을 떠는 학생이 있었지만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고, 대체로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요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겸손하고 소박한 학생이 나중에 알고 보니 고위 공직자의 아들이기도 했다.

F학점 받아도 공무원 아버지만 있으면...

그런데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의 진학과 취업 상황을 들으면서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공무원 시험 결과였다. 평소에 공무원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졸업 학기에 공무원 바람을 타고 몰려가서 시험을 쳤지만 합격자는 소수였다. 그 소수의 합격자 중에 의외의 학생이 있었다. 평소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학생인데 4학년 설계 성적이 F학점이라서 졸업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공무원 시험에 떡하니 합격을 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졸업도 했다.

어떤 학생은 석사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전문직 공기업에 들어갔다. 공무원이 된 학생은 부모가 공무원이었고, 대단한 공기업에 들어간 학생은 그 분야에서 막강한 관시를 가진 아버지를 뒀다.

설계 사무소 취업도 비슷했다. 평소 실력으로 보아 취직이 될까 걱정스러웠던 학생이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뭘 하든 잘 할 것 같은 학생은 어정쩡한 회사에 들어갔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렇게 취직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나게 아니다 싶은 경우가 어떻게 가능한지 중국인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공무원 시험이야 필기 시험을 통과하면 면접 점수를 확 올려주고, 졸업 문제도 학부모가 학교 고위직에 있는 사람과 관시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어요. 회사는 실력이 좀 없는 사람을 뽑아도 그 부모의 관시가 대단하면 장차 더 큰 프로젝트를 딸 수 있으니 손해 볼 게 없죠. 직원 한 명 월급보다 프로젝트 하나 더 생겨서 들어오는 돈이 훨씬 많을 테니까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나요? 불공평하다고. 또 그렇게 취직한 사람은 동료들 눈치가 보여서 직장생활 하기도 힘들텐데..."

"여기에서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대단한 비밀도 아니니까요. 다른 사람들이야 무슨 힘이 있다고.... 속으로는 억울해도 겉으로는 그러려니 하고 말아야지 어쩌겠어요?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대도시에서는 부패척결이다 뭐다 해서 그런 일이 많이 없어지고 있지만, 중소 도시에서는 아직도 관시가 힘을 발휘해요."

이쯤 되면 관시는 비리가 아니라 일종의 경쟁력이 아닐까 착각이 된다. 그런 경쟁력이 없으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도, 애인이 있어도, 결혼을 해도, 앞날은 계속 걱정거리라던 남학생의 말이 엄살만은 아니다.

 칭다오 인근 온천 지대의 부유층 별장. 경비가 삼엄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유럽 각국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주택 안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왼쪽), 19세기 말 독일이 칭다오를 점령한 후 근대적인 식민도시를 개발했을 때부터 조성된 구도심의 상류층 주택가(오른쪽)
칭다오 인근 온천 지대의 부유층 별장. 경비가 삼엄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유럽 각국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주택 안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왼쪽), 19세기 말 독일이 칭다오를 점령한 후 근대적인 식민도시를 개발했을 때부터 조성된 구도심의 상류층 주택가(오른쪽) 김소연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한때 그들을 심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소황제로 키운 인구 억제 정책이 이제는 노령화와 노동력 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창창한 청춘들의 미래를 짓누른다. 고령화 시대 한 명의 자식은 친조부모, 외조부모와 부모를 합쳐 여섯 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 결혼을 하면 양가 합쳐 12명의 노인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자녀 양육까지 보태진다. '한 자녀 정책'이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이제 '두 자녀 정책'으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정책을 반기고 실행할 만한 사람은 아무나가 아니라 두 명을 키울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다.

졸업이나 결혼같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진짜 소황제는 새로운 미래에 들뜬다. 무늬만 소황제는 노동력을 잃어가는 부모를 생각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받은 혜택이 이제는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길에서 졸업생 한 명을 만났다. 그는 관시 없이 혼자 힘으로 꽤 좋은 설계사무소에 취직을 했는데 마침 퇴근길이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야근이 많은 대신 월급이 많아요. 몇 년 열심히 일한 후에 유학을 갈 거예요. 가면, 안 돌아올 거예요."

가면 안 돌아오겠다는 그에게 나는 "일은 재미있니? 직장 동료들과 사이는 좋니? 회사는 직원들에게 공정하니?"라고 물을 수 없었다. 오래 전 내가 미국에서 만났던 중국인 유학생 L도 그랬을까? 그래서 그녀는 어떡하든 미국에 눌러 살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지금쯤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겠지? 매서운 비바람이 치던 날에도 억척스럽게 자전거로 등교를 했던 L, 이제는 꽤 괜찮은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겠지? 유학기간 내내 집에서 대충 만든 볶음밥으로 설계실에서 점심을 때웠던 L, 이제는 직장 동료들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겠지?

자신감과 의지로 똘똘 뭉쳤던 L, 부디 노력한 만큼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를. 하지만 나의 학생들은 관시의 틈에서 몸부림치다 중국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나는 희망한다.
#소황제 #관시 #관얼다이 #푸얼다이 #핀얼다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