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여관방과 미디어허물어져 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여관방에서 이루어지는 미디어 전시
박재현
사실 이 전시회를 연 이예승 작가는 동양화가였다. 가장 현대적인 기법의 미디어 전시 작가가 원래는 동양화가였다니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동양화적 기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미디어 작품 기법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디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동양화에서 먹이 번지는 표현 기법들을 연구했었는데, 미디어적인 스크린에서 빛과 그림자를 통해, 화선지에서의 수묵의 번짐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빛이 투과되고, 어딘가에서 빛이 사라지고, 그림자가 비치고...이렇게 동양화와 미디어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 있어요. 투시가 모아지는 것이랄까요. 동양화적인 특징을 미디어에서 이 각도, 저 각도로 활용할 수 있더라고요." 서양화는 한 공간을 바라보는 위치가 정지되어 있다면, 동양화는 다양한 위치에서 공간을 바라본다. 즉, 서양화가 하나의 투시법으로 장면을 표시한다면, 동양화는 다양한 투시로 장면을 표현한다.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더 크게 표현할 수도 있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더 작게 등장시키도 하며, 봄에 피는 꽃과 겨울에 피는 꽃을 한꺼번에 묘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간성과 공간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동양화다.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스크린에 비치는 그림자를 위해서라면 빛을 어느 정도 차단시켜야 할 텐데, 작가는 빛이 비치는 창문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있는 그대로 그 빛을 활용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낮에는 스크린에 투영된 이미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작품이었다. 마치 나에게 아무 도움도, 쓸모도 되지 않는, 내가 떠밀어내고 싶은 나의 모습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게 하듯이…. 그 빛은, 이미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한데 섞여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인생이라는 하부구조위층에서는 거대담론의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 반면, 아래층에서는 작가 개인의 어린 시절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가의 무의식이라는 하부구조가 세상이라는 상부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입구 맞은편 정면에 투영된 영상에서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꽃이 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각 방에서는 각기 다른 14개의 음향이 튕겨져 나오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조화로운 음색을, 한편으론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그 음향의 조류 가운데 흔들리는 길쭉한 꽃은 각자 숨겨 두고 싶은 마음의 비밀 공간으로 안내한다.
"저는 식물 공포증이 있어요. 그게 언제부터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이 공간은, 저의 기억으로 관객들이 초대되어 들어오는 것이에요. 트라우마이기도 하고 무의식이기도 한 공간이지요. 이곳은 아날로그적인 공간이에요. 이런 기억을 갖고 2층에 올라갔을 때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현상들을 관객들은 경험하게 될 거예요." 프로이트의 개념 중에는 '덮개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중요한 기억을 덮기 위한 사소한 기억'이라는 뜻이다.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 유난히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그것은 정작 중요하고 본질적인 기억을 감추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잡다한 기억들이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하여 정작 내 안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파고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이 하부구조는 덮개기억을 걷어낸 '중요하고 본질적인 기억' 자체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실제적 공간은 개개인 안에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이 발현된 공간인지도 모른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운영되는 듯 보이는 공간에서조차도 사람들 안에 축적된 무의식이나 상처가 조합되어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인생을, 세상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하부구조는 자기 자신을 대면해 본 자만이 또렷이 의식할 수 있는 구조인지도 모른다. 이 하부구조를 의식한 때에야, 상부구조에서 왜 내가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왜 내가 세상의 이 지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성을 지닌 여관에서의 전시. 공간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의 전시인 만큼 전시는 공간에 묻혀 버릴 위험도 크지만, 이예승 작가의 전시는 폐허적인 공간을 오히려 뛰어넘는다. 공간에 종속되지 않고 공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야 만다.
공간 안으로 관객이 직접 뛰어들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음험하고도 진중하게 스스로 묻도록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질문의 돌을 던져, 크고도 오랜 파장을 남겨 준 전시였다.
이진경씨는 출판기획편집자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민음인)와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책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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