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향해 앉는다나가자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가을의 뜻을 이젠 읽을 수 있다
박혜림
사실 나도 가을이와 만나기 전엔 동물을 보면 손부터 뻗었다.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안아보고 싶어했다. 공격을 당한 적은 없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동물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공부한 이후로 이젠 그들의 '거부 신호'가 읽힌다.
만약 어떤 강아지가 고개를 돌려 나의 시선을 피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지금은 내버려두라는 뜻이다. 몸이 얼음처럼 굳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기분이 나쁘다는 듯 앞니를 슬쩍 드러내거나,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말아 넣기도 한다. 긴장한 눈빛으로 짖으며 꼬리를 좌우로 강하게 친다면 그 또한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쓰다듬거나 안아 들었다? 강아지는 비록 얌전해 보일지라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이런 반응은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특히 뚜렷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다? 나를 싫어하는 개는 없는데" 라고 말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버림을 받고 상처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싫어요', '무서워요'의 표현은 생존과 직결됐기에 더 확실하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한 책들을 통해 이들에게 자극을 적게 주면서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 아직도 나에게 쌀쌀맞은 그 애를 서운해 말자. 말은 못해도 힘든 역사를 갖고 있을 테니. 그저 밥을 주고 청소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덜 느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인간의 뻗은 손, 두 눈, 몸의 정면, 말소리는 동물에게 이해하기 힘든 위협의 대상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예의가 있듯이 그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은 측면으로 틀어 개에게 내 몸의 앞, 뒤가 다 노출되도록 앉는다.
몸집이 큰 개도 눈높이는 우리보다 거의 낮으니 앉는 게 중요하다. 시선도 개를 응시하기 보단 슬쩍 피해준다. 뚫어져라 바라보면 아무리 사랑을 듬뿍 담았다 할지라도 그들을 떨게 만들 수 있다. 만지고 싶고 이름을 부르고 싶겠지만 역시 참자. 안정된 후에 말을 걸어줘도 늦지 않다.
그리고 핵심은 천천히 하품을 하고 쩝쩝 입맛을 다시는 행위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낯선 환경에서 개들이 하품을 하고 혀로 코를 핥아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이도 원하지 않는 곳에서 지체해야 하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가까이 오면 똑같이 행동한다.
우리도 그들에게 조금은 긴장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같이 릴렉스하는 게 어때? 눈도 느린 속도로 깜박거리고 숨도 침착하게 쉬어본다. 개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소란스럽고 빠르다. 아무 말 없이 이 행동만으로도 경계하던 개는 서서히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물론 한 번에 해결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반복하며 기다려주기. 조급해하지 말고 믿어주기.
1000회 학습의 효과, 이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