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환영 나온 소녀... 이래도 되는 걸까

[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①] 다정한 인간 띠를 형성한 환영 인파

등록 2014.12.03 14:16수정 2014.12.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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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쾌청했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꾸러미들을 버스에 싣고 버드러칼리학교로 출발했다. 더먹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4년 전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그 때는 길이 패이고 무너져서 인근 농가에서 삽과 곡괭이를 빌려다가 길을 보수해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험했다.

 맨발로 환영을 나온 네팔 소녀
맨발로 환영을 나온 네팔 소녀최오균

버드러칼리학교에 도착하니 교문에서부터 아이들이 양쪽에 길게 도열해서 우리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박수 갈채를 보내주는 학생들 사이로 걸어가기가 쑥스러울 정도로 열렬하게 환영을 해주었다. 우리가 이렇게 환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이라도 했단 말인가?

순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진실로 우리를 환영해주는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의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실을 알 수가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에 내 마음이 비치는 것 같았다. 

 황금색 꽃병에 꽃을 들고 쿠마리 복장을 한 네팔의 소녀들. 네팔에서는 쿠마리(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복장을 한 소녀들이 꽃을 선물하는 것은 아주 귀한 손님을 환영하는 행사이다.
황금색 꽃병에 꽃을 들고 쿠마리 복장을 한 네팔의 소녀들. 네팔에서는 쿠마리(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복장을 한 소녀들이 꽃을 선물하는 것은 아주 귀한 손님을 환영하는 행사이다. 최오균

화려하게 쿠마리(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복장을 한 소녀들이 황금빛 꽃병에 금송화를 받쳐 들고 우리들에게 꽃을 한 송이씩 선물했다. 네팔에서는 가장 귀한 손님에게 이렇게 쿠마리 복장을 한 소녀들이 꽃을 선물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예쁘고 정말 여신처럼 생긴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한 소녀는 맨발인 채로 다소곳이 걸어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잔하기도 하고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른 소녀들은 모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얼굴이 둥글고 순진하게 생긴 소녀는 그냥 맨발인 채로 걸어왔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자꾸만 그 소녀의 맨발로 눈길이 갔다. 신발이 없어서 신지 못했을까?

 교문 앞에서 따뜻한 미소로 환영을 해주고 있는 버드러칼리 학생들
교문 앞에서 따뜻한 미소로 환영을 해주고 있는 버드러칼리 학생들최오균

아이들이 도열한 긴 인간 터널을 지나 학교 운동장에 도착을 하니 수천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운동장 잔디밭에 모여 있었다, 아마 이 고을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오지 않았을까? 어디서 이렇게 진솔하고 성대한 환영을 받아 볼 수 있단 말인가? 운동장에 길게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마음과 마음이 모여 따뜻한 인간 띠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 가슴 뭉클한 덩어리들이 자구만 목젖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운동장에는 환영 행사를 위한 작은 연단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지역 유지들과 연단에 배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대부분 햇볕이 쨍쨍 뇌리 쬐는 운동장 바닥에 그냥 앉아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마 우산이 이들에게는 귀하기도 하겠지만 우산을 쓰면 손님을 맞이하는 데 누가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햇볕이 쨍째 내리쬐는 운동장 바닥에 앉아 환영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님들
햇볕이 쨍째 내리쬐는 운동장 바닥에 앉아 환영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님들최오균

길고도 진지한 환영 행사

아침 9시부터 환영 행사가 오전 내내 진행이 되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목에 향기 나는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환영 리본도 달아주었다. 예쁘게 치장을 한 아이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환영 공연도 해주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 교육장, 운영위원장 등 많은 유지들이 저마다 길게 환영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사말은 대부분 정치성을 띠거나 자신의 입지를 선전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런 겉치레 적인 행사는 생략을 해야 할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환영하는 이런 긴 행사도 생략을 해야 할 것들이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 않은가?

 쿠마리 복장을 한 아이들의 환영공연
쿠마리 복장을 한 아이들의 환영공연최오균

부처님께서는 만약에 사람이 무엇인가에 머물러 보시를 한다면 마치 사람이 컴컴한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보시를 한다면 햇빛이 밝게 비추어 갖가지 모양을 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한다면 그 준다는 자체도 잊어버리고 머무름이 없이 그냥 주어야 하는 것일진대, 이렇게 장시간 환영식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이 환영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중생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환영인파
운동장을 가득 메운 환영인파최오균

케이피 시토울라씨는 네팔의 오랜 관습이 이러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만약에 이런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이곳 사람들에게 엄청 실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팔에 오면 네팔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시토울라씨는 이곳 더먹이 고향이다, 그리고 이 버드러칼리학교가 자신이 다녔던 모교이다. 한국에서 23년 동안 살고 있는 그는 오랜만에 고향 모교에 오게 되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다. 마치 그는 금의환향을 한 모습처럼 보였다.

환영 행사와 컴퓨터 전달식, 그리고 컴퓨터 교실을 오픈하고 나니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학교 옆에 위치한 한 농가로 가서 야외에 마련된 네팔 달바트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4년 전에도 이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때는 환영 행사가 지금보다 더 늦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로 갔다.
덧붙이는 글 한국자비공덕회는 네팔 칸첸중가 인근 오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는 작은 모임입니다. 지난 10월 28일 그 학교에 컴퓨터 70대를 마련하여 전달을 하고자 네팔을 방문했습니다. 오지에 가서 아이들을 만난 감동과 느낌을 몇 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맨발로 환영을 나온 소녀 #한국자비공덕회 #버드러칼리 학교 #네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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