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돌쩌귀꽃, 뿌리에는 맹독성이 있어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임소혁 사진작가 제공
독립군단의 발흥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3월 13일 용정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은 훈춘·화룡·연길 등 북간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서간도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이 3·1운동을 계기로 서북간도, 연해주 일대에서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항일전을 표방하는 수많은 독립군단들이 편성되고 있었다.
김좌진(金佐鎭)·서일(徐一) 등이 통솔하는 대한군정서와 안무(安武)가 거느리는 대한국민군,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 등이 대표적이요, 이밖에도 이범윤(李範允)을 중심으로 한 항일의병들의 대한의군부 그리고 이범윤을 단장으로 추대한 대한광복단, 방우룡(方雨龍)의 의민단, 김규면(金奎冕)의 대한신민단 등 수많은 독립군단들이 활발하게 대일 항쟁 활동하고 있었다.
망국 10년을 맞이한 1919년 8월부터 이들 독립군단들은 마침내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했다. 홍범도가 인솔하던 대한독립군은 그 선두에 서서 압록강을 건너 혜산진을 한때 점령하고, 그 해 9월에는 갑산의 일제기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독립군단의 국내진공작전은 1920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홍범도를 비롯하여 최진동, 안무 등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과 군무도독부, 김좌진이 지휘하는 대한군정서 소속의 독립군은 기회가 올 때마다 국내진공작전을 펼쳐 일제 기관과 군경을 살상했다.
여러 독립군단들은 망국 10년 이래 겨레의 숙원이던 독립전쟁을 수행함에 충분한 총기와 탄약 등 무기 조달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독립군단들은 국내외 동포들로부터 모은 군자금으로 우선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해주에 출병하였던 체코 군이 철수하면서 매각한 무기들을 사들여 무장하였다. 이밖에도 독립군단들은 러시아제, 미제, 독일제, 일제 등 가리지 않고 무기를 구입한 결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1920년 5월 28일, 홍범도를 중심으로 여러 독립군단들은 군사조직 통합을 추진한 결과 대한독립군단과 대한국민군 그리고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도독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그 거점을 왕청현 춘화향 봉오동에 확보하고, 그곳에 병력을 집결시켜 대대적인 국내진공작전을 펴기로 했다.
이 무렵 대한북로도독부은 1200여 명으로, 무기로는 기관총 2문 총 900정, 수류탄 100여 개였다고 일제는 탐지하였다. 그 당시 그 일대에 큰 토지와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대한북로도독부 부장 최진동이 가산을 헌납했기 때문에 독립군 주둔이 가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