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문자메시지를 지우지 못하는 이유?

햇빛 찬란한 오늘의 소중함 알려준 그녀...12월의 비망록

등록 2015.01.01 14:46수정 2015.01.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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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피부. 세련돼 보이는 짧은 헤어스타일. '나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듯한 환한 표정. 털이 복슬복슬한 니트에 청바지 차림으로 앉아 있는 낯선 여자. 누굴까? 다섯 평 남짓 작은 교실에 궁금증이 감돌았다.


"안녕하세요. 제 인생이 담긴 글을 써보고 싶어서 왔어요. 제가 사연이 좀 있거든요. 박애리(가명)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수강생 난 강사. 서울에 있는 한 문화센터 강의실이었다. 그 강의실에는 그녀 말고도 수강생 몇 명이 더 있었다. 50대에서 70대 사이의 누님들이었다. 서른 살 남짓한 젊은 여자가 교실에 발을 들인 건 처음이었다.

실제 나이는 몇 살일까. 저렇게 젊은 여자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엄마뻘되는 언니들 앞에서 '사연 있는 인생'이라 밝힐 수 있는 것일까? 자칫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데. 이런 궁금증이 몰려 왔지만 굳이 내 입으로 물을 필요는 없었다.

"머리가 짧네, 요즘 아가씨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인가요?"

궁금증을 절대로 참지 못하는 한 누님(수강생)이 그녀의 첫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물었다.


"어색한가요?"
"아뇨 예뻐요. 내가 하면 어색할 것 같은데 젊고 예쁜 아가씨가 하니까 참 예쁘네."
"어머, 저 아가씨 아니에요. 오래전에 결혼 했고요, 애도 둘이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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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설원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대둔산 케이블카에서 본 설원.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오늘의 소중함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햇볕을 많이 쬐렴. 네 땀을 닦아주는 바람도 항상 곁에 있단다." ⓒ 이민선


이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그녀의 사연이 모두 공개됐다. 그녀는 스스로를 나이배기라 소개했다.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외모였지만 실제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지난 몇 달 동안 지금보다 훨씬 더 짧았다. 죄다 빠져 버려서 아예 없다시피 한 때도 있었다. 암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암수술을 받고 몇 달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무성했던 머리카락이 독한 약기운을 견디지 못해 모두 그녀 곁을 떠났었다.

"얼마 전, 암 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치료를 멈추자 신기하게도 머리카락이 다시 나왔고요. 오늘 처음 모자 벗고 나온 건데,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그녀는 마치 남 얘기 하듯 담담하게 말했지만 누님들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당장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야했다. 내 몫이었다.

"다행이네요, 절망을 딛고 일어섰으니 분명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우리 박수로 환영해 줄까요?"

신비한 박수의 힘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누님들 눈에 글썽이던 눈물과 무거운 공기가 박수 소리에 놀라 사라졌다. 그 자리를 그녀의 환한 웃음이 채웠다.

더 열심히 살려다가 오히려 후회를 낳고 있진 않을까

그녀는 '난 꼭 글을 쓰고 말 테야'하고 작심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눈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눈처럼 늘 초롱초롱했다.

그녀의 첫 작품은 아팠던 이야기다. '아팠던 이야기'를 써 보라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주일 만에 <암 덩어리가 드디어 사라졌어요> 라는 제목의 글을 내밀었다. 좋은 글이었다. 가슴으로 써내려 간 글이니 좋은 게 당연했다. 성공만을 위해서 질주할 때 보던 세상과 병마와 싸우면서 본 세상이 무척 달랐다는 내용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난 더 빠르게 더 완벽히 달리는 데만 충실했습니다. 매일 매일을 빛이 없는 지하철과 답답한 건물 속에서만 살았습니다. 그 많은 나날, 오늘의 이 빛은 저를 향하고 있었을 텐데, 보여도 보지 못하고 살았음을 느꼈습니다. 아름답고 눈부신 햇빛을 차가운 자외선 차단 크림으로 가리려고만 했던 저를 질책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살고 싶다고, 더 살고 싶다고. 마음속에 울림이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일을 더 달라고 기도 하는가, 어떤 내일을 보내려하는가? 내 삶을 어디에 뿌리려 하는가' . 천천히 걷고 싶어졌습니다. 내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끼며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암 덩어리가 드디어 사라졌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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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정상에서 본 일출. 새해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기위해 칼바람을 헤치고 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아름답다고만 느꼈지 떠올라줘서 고맙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앞으로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잊지 않고 고운 햇살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 이민선


그녀는 이 글에서 의미심장한 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같이 '맞아 맞아'가 절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말이라 식상 할 수 있었지만, 절망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라는 게 큰 울림으로 다가와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주어진 삶의 모양이 각기 다를 텐데, 누구의 말에, 이유도 모르는 잣대에 자기 자신을 맞춰서, 그게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들 전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도 그것이 정답인줄만 알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서글퍼집니다. 혹시 지금도 좀 더 열심히 바쁘게 살려다가 오히려 더한 후회를 낳고 있진 않을까요?

이제는 제 아이에게 이렇게 살아가라고 속삭입니다. 햇볕을 많이 쬐렴. 네 땀을 닦아주는 바람도 항상 곁에 있단다. 그리고 위대한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니라 꿈의 방향 이란다. 특별한 너는 남과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어. 그 재능을 사랑으로 천천히 풀어가길 원한다."
-<암 덩어리가 드디어 사라졌어요> 중에서-

짧은 사랑 긴 그리움

이 글을 완성하고 한 달 뒤, 그녀는 '창덕궁'에 얽혀 있는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글을 수줍게 내밀었다. <짧은 사랑 긴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세심한 관찰력과 감성이 녹아있어 감칠맛이 났다. 그녀는 이 글을 쓰기위해 창덕궁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우선 발톱에 있는 반짝이는 매니큐어를 지웠다. 그 다음 흙길을 느낄 수 있는 투박한 고무 샌들을 신었다. 이렇게라도 옛사람 되어 그곳의 주인이 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한가한 시간대를 찾아 낙선재로 들어섰다. 오후 4시경, 한여름 같은 뙤약볕이 물러가고 부드러운 봄볕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손끝만 살짝 잡은 연인은 문턱 넘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진작가의 기분 좋은 셔터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짧은 사랑 긴 그리움>중에서-

그녀가 주목한 것은 '낙선재' 옆에 있는 '석복헌' 주인 경빈 김씨와 헌종의 안타까운 사랑이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헌종과 경빈 김씨의 사랑은 2년뿐 이었다. 그녀가 입궁한지 2년 뒤인 1849년 헌종이 돌연 죽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 불과 23세였다. 이후로 그녀는 궁에서 나오게 되었고 77세로 눈을 감는 그날까지 58년이란 긴 세월을 홀로 보냈다. 그 긴긴 시간을 무엇으로 살았을까. 짧았지만 너무나 행복했을 그때를 떠올리며 그리움으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미소로 지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짧은 사랑 긴 그리움>중-

이것이 그녀가 쓴 마지막 글이다. 이 글을 완성하고 난 뒤 다음 글을 준비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2년 전,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이었다. 입을 앙 다물고는 '꼭 나아서 교실로, 선생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눈물과 함께 남기고 떠났다. 사라졌다던 암세포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끝내 교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을이 두 번이나 지나는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올 겨울이 돼서야 소식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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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온 마지막 문자메시지 ⓒ 이민선


"2014년 12월1일 20시 55분경 박애리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녀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였다. 분명 그녀의 전화 번호였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문자를? 아둔하긴 누군가 대신 보내준 거겠지'.

인연이라는 게 참 뭔지. 그녀와 나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엔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 몇 달간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 함께 글쓰기 공부 한 게 전부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인연의 끈이 너무 가늘어 혼자 병문안 가기도 어색했고, 장례식장에 가서 슬퍼해 주기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서 온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지금도 내 휴대폰에 고스란히 보관 돼 있다. 오래도록 지우지 못 할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지우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햇살 눈부신 오늘 이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준 그녀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12월에 떠났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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