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소진되지 않고 살아남기

[내 친구가 고민하는 바로 이 문제④]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홍기빈

등록 2015.01.06 16:15수정 2015.01.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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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지대 G밸리 개관 기념 100분 강연 '내 친구가 고민하는 바로 이 문제'를 함께 나누고자 4부 기획 기사를 시작합니다. 무중력지대 G밸리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청년을 위한 24시간 무료 개방 공간입니다. G밸리의 청년들이 먹고 마시고 쉬고 배우는 공간, 더 나아가 G밸리 바깥의 청년도 아우르는 커뮤니티와 허브가 되고자 합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12월 개관 기념 100분 강연 <내 친구가 고민하는 바로 이 문제>는 '청년'을 주제로 전문가를 초청해 사회의 여러 이슈들을 다룹니다.  - 기자 말

<내 친구가 고민하는 바로 이 문제> 강연 순서
내 친구가 고민하는 교육문제 - 시골의사 박경철
내 친구가 고민하는 패션산업 - 청년창업가 다니엘 정
내 친구가 고민하는 IT노동 - IT 협동조합 선구자 오철
내 친구가 고민하는 진짜인생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홍기빈

지난해 12월 22일 월요일, 무중력지대 G밸리에서 개관 기념 100분 강연 프로그램인 <내 친구가 고민하는 바로 이 문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강연이 열렸다.

'진짜 인생'과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할 마지막 연사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정치경제학자인 그가 바라본 인생과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홍 소장은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이야기를 할 예정이라며 서두를 뗐다.

자기계발서는 자기를 '기능'으로 파악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자기계발' 자체는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달라진 오늘 날의 인생주기를 알아야 한다.

21세기의 인생주기

홍 소장은 70, 80년대의 인생주기에서는 '삶의 표준모델', 즉 삶의 가짓수라고 할 만한 것이 4, 5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개, 스무 살이 되면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남성의 경우, 30세 이전에 결혼해 아이를 뒀다. 퇴직은 60대에 했다. 이쯤 되면 자식들도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 40년 동안 벌고 십여 년의 여생을 노후로서 보낸다. 이것이 산업화 시대의 삶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삶의 모델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진입 연령부터 크게 달라졌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혹은 선택할 수 '있어 보이는' 삶의 가짓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 번 들어가면 벗어날 수 없는, 위계화된 삶들 앞에서 청년들은 최대한 '엔트리 포인트'를 벌고자 한다. 노동시장 진입을 최대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회 진출 전의 교육 기간이 늘어난다. 교육에는 비용이 든다. 서른 살 쯤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개 취업하게 되는데 그 즈음 해서 '스펙 관리' 비용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노동 생활을 50세 이후에 유지하는 것이 또 어렵다.

"예전에는 '만년 과장'이라는 게 있어서 곧잘 우스개로 써 먹히곤 했다. 요새 만년 과장이 어디 있나. 아무도 '만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버는 기간은 짧아졌는데 수명은 늘었다. 요즘은 노후를 80세까지 잡는 것이 보통이다. 퇴직 이후의 삶이 30년 가까이 남았는데 활발히 버는 기간은 20년 남짓이다. 이 기간 동안 지금 당장의 살림과 노후의 살림, 독립이 늦어진 자녀를 지원할 살림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홍 소장은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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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지대 G밸리 강연 중인 홍기빈 소장 ⓒ 이진수


'대기업 정규직'도 소용없다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버텨 낼 수 있을까. 홍 소장은 현대의 직종을 사람 자체가 자산이 되는 직종, 사람을 비용으로 다루는 직종, 사람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직종으로 구분했다.

각각 전문직 종사자, 정규직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에 해당한다. 전문직과 정규직, 특히 대기업 정규직은 지금 한국 사회 청년들이 꿈꾸는 '좋은 직장'이다. 그러나 좋은 직장도 개인에게 어떠한 보장을 해 주지는 않는다고 홍 소장은 말한다.

"나도 <미생> 마지막 화를 봤다. 대기업, 대기업, 정규직, 정규직하는데 보는 나는 대기업 간 친구들 생각도 나고 허망하더라. 작년에 기업 근속년수가 발표됐는데 가장 긴 곳이 국민은행으로 19.5년이었다. 은행이나 되어야 19년, 17년이고 대기업 근속년수가 11.5년 정도 된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먹고 사나. 대기업이 잘 번다고 해도 이후의 삶이 30년이다. 그 이후에는 소득의 흐름을 새로 창출해야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기업의 노동관리 시스템은 고용 기간 동안 효율적으로 피고용자를 "쏙 뽑아간다". 홍 소장은 '번 아웃', 즉 소진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완전히 소진된 상태의 사람이 새로운 삶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까. 그보다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겨 놓지를 않는다. 박살을 내 버린다. 사람은 숨을 쉬는 동안에는 계속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생산 능력을 빼앗아 가 버리는 거다."

선망의 직종인 '대기업 정규직'이 이렇다. 전문직의 경우도 끊임없이 자리를 위협하는 후세대와 경쟁하며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일정 단계에서 '파워 엘리트'로 올라가지 않으면 생존의 유지가 어렵다.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의 경우 생겨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 50대 이후의 모습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 훨씬 더 소진된 세대가 출현할 것이다.

홍 소장은 이러한 사회 현실이 탈산업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의 문제'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산업 구조 자체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시장의 변화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다. 지구의 수요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기업도 고용의 생산을 계획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기업도 5년 이상의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의 변화 앞에서 개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홍 소장은 금융시장에서 공포를 조성해 재테크에 뛰어들게 하는 세태에 부정적이었다. 재테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 삶의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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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지대 G밸리 강연 중인 홍기빈 박사 ⓒ 이진수


진정한 자기계발, 소진되지 않고 나를 지키며 살아남기

삶의 구조를 재편하기 위해서 중장기적으로는 욕망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홍 소장은 저비용 구조로 살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산업화 시대의 욕망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60세 이후의 삶을 어떠한 패턴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늘 고민하며 욕망의 구조를 길들여야 한다.

욕망을 재구조한다는 것이 욕구를 억압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욕구는 제어한다고 작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 소장은 오히려 욕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욕구는 정태적이지 않아서 개발할수록 더 커진다.

"욕구가 개발된 사람은 욕구의 양이 많아요. 욕구가 개발된 사람은 이것저것 다 하고, 이것저것 다 먹고, 이것저것 다 즐거워요. 그런데 개발되지 않은 사람은 특정 욕구가 아니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요. 이것은 삶의 양과 연관이 있어요."

한정된 욕구를 지닌 사람보다 여러 가지 욕구가 개발된 사람이 훨씬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 똑같은 돈이 주어진다고 해도 욕구가 개발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다양하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그 돈을 이용해 삶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홍 소장은 생산 능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욕구와 마찬가지로 능력도 개발할수록 커진다. '복리의 마법'을 믿는 것보다 70세까지 써먹을 수 있는 생산 능력을 찾아 키우는 것이 생존에 더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 능력 개발, '자기계발'은 결코 시중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방식으로 성취할 수 없다.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계발'은 결국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스스로를 맞추고 가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활성화된 욕구와 능력 말고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된다. 홍 소장은 다시 한 번 '소진'을 강조했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기능으로서 소비되기면 자신은 끊임없이 마모된다. 기다리는 것은 소진뿐이다. 그래서는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되고 만다.

자기계발. 나의 욕구, 나의 생산 능력을 개발해 자기를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탈산업사회, 21세기 한국에 대처하는 홍 소장의 답이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말로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꾸준히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도출해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쩌면 맥 빠질 수도 있는 결론이다. 원하는 일을 찾아서 열정을 다 바치라는 메시지에 청년들은 신물이 나지 않았나. 그러나 이는 흔한 '성공을 위한 조언'이 아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다. 2010년대도 이제 중반, 청년이 처한 21세기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자.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알고, 만들어 내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자. 2015년을 열며 청년이 새겨야 할 다짐이다.
덧붙이는 글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wsyn.kr
#무중력지대G밸리 #홍기빈 #청년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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