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춘호 전 국회의원.
이희훈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정보기관의 정치공작, 특히 도청(불법 감청)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2005년 8월 5일에는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김대중 정부까지 이어져온 정보기관의 도청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기관장을 임명하는 대통령의 관여 여부는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다.
지난 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예춘호 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증언을 했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공개회의에서 도청으로 얻은 정보로 자신을 다그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1969년 4월 8일 오전 10시 52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작됐다.
공화당 총재였던 박 대통령이 이미 김진만 원내총무에게 야당이 제출한 권오병 문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키라고 지시한 상황에서 가 89, 부 57로 해임안이 가결된 것이다. 회의장의 공화당 의원 100명 중 40명 이상이 총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결과였다.
대통령의 3선개헌을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충정을 피력하는 자리였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명백한 '항명'이었다.
이틀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공화당 긴급확대간부회의를 소집했다. 박 대통령의 분노는 약 20분간의 훈시 내내 참석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훈시를 마친 박 대통령이 예춘호 의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다. 그는 약 19개월간 당 사무총장으로서 '총재 박정희'를 보필했다.
박 대통령 : "예 총장, 당의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맡았던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동조자를 규합하고 은어를 써가면서 야당 원내총무(김영삼 의원)와 결탁해 반당 행위를 한 데 대해서 할 말 있으면 해보시오."
예 의원 : "가표를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회 상공위원장으로서 상공위원들에게 권유한 일이 없고, 은어를 쓴 일도 없습니다."
예씨는 박 대통령이 '은어'를 언급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우리 의원들끼리는 전화 통화하면서 별명 같은 것을 즐겨 썼는데 그게 도청(불법 감청)하는 사람의 귀에는 마치 은어처럼 들렸을 겁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그런 말을 직접 했다는 것은 대통령도 정보부의 도청으로 '4·8 항명 파동'의 주동자들의 동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뜻이죠. 3선개헌 전에 청구동 김종필씨 집에서 전화 쓸 일이 있었는데, 수화기를 드니 공화당 의원들이 비공개 회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도청팀 사이에 혼선이 생긴 거죠. 당시 도청 장비의 수준이 그랬어요."- 그렇다면 도청의 주체는 누구입니까?"누구였겠어요? (김형욱의) 중앙정보부가 그랬죠. 그때는 유선전화밖에 없었는데, 통화 중에 끓는 소리 등의 잡음이 심하게 들리면 '이 친구들이 다 엿듣고 있구나' 감수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비밀이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