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과일을 따다. (그린망고, 캐슈넛, 칼라만시)
강은경
'오전 내내 핼린이랑 열대과일을 땄어. 핼린은 계속해서 뭐든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먹이고 싶어 나를 끌고 다니기 바빴지. 통통한 아가씨가 어찌나 몸을 재게 놀리는지. 물론 나는 신바람이 나서 그녀를 따라다녔고.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좀 피곤했어. 삼일 동안 더위에 시달린 탓인지, 낯선 환경 탓인지. 뭐, 샤워만 한 번 하고 나면 가뿐해질 것도 같은데. 씻지도 못하고, 땀범벅인 얼굴에 선크림만 발라대니, 피로가 풀리지 않는 거야.
아무튼 아침에 핼린이랑 그린망고를 땄어. 대나무 장대로. 망고를 썰어 소금이랑 젓갈에 찍어 먹었어. 엄청 시다. 혀뿌리가 오그라들고 침이 부글부글 솟는 게... 어라? 몇 쪽 먹다보니 자꾸 댕겨. 높은 가지에 달린 칼라만시는 핼린이 땄어. 가는 나뭇가지를 잘도 타고 올라가대. 탱자처럼 노랗게 익은 칼라만시는 처음 먹어봤지. 그것도 레몬처럼 톡 쏘는 신맛.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나무에서 막 딴 과일 맛이 어떤지 알지? 햇살 맛, 바람 맛, 하늘 맛... 시든 떫든 달든, 그 생생한 자연의 맛과 향기가 얼마나 죽여주는지. 아, 그리고 핼린이 마당가에서 불을 피우고 찌그러진 냄비에 캐슈넛을 구웠어. 아뿔싸, 불이 번져 풀밭을 홀랑 태울 뻔했지. 당황한 핼린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들고 불꽃을 쫓아다니며 두들기는데...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랑 나는 배꼽을 잡고 뒹굴었어. 식식대는 핼린의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그 바람에 캐슈넛이 새까맣게 타 버렸어. 숯덩이가 된 줄 알았지. 탄 껍질을 벗겨보니 노릇노릇 잘 익었더라고. 그 깊고 고소한 맛은 말로 표현 못하겠어. 나는 결국 점심 먹고 방에 들어 와 뻗어버렸어. 얼씨구, 콧물이 흐르네. 오싹오싹 식은땀까지 흐르고 말이야. 설마, 이 무더위에 감기? 내가 쉬겠다고 하니 핼린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래, 오늘 이 섬을 떠나기로 했는데, 정확히 몇 시에 출발할지는 모르겠어. 방카(배)가 준비되는 대로... 내일 떠날 수도 있다고 하고... '이렇게 여행일지를 쓰고 있는데 미셀이 불렀다.
"강, 지금 가야 해요!"나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오후 3시 30분, 방카에 올라탔다. 마침내 칼라우이트 섬을 떠나 부수앙가 섬의 코론 시로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쉬이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핼린은 어디 있지?"방카에 올라타며 미셀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선가 낮잠 자고 있을 거예요."미셀은 몇 번째 같은 대답이었다. 갑자기 떠날 상황만 아니었어도, 나는 핼린을 찾아 바랑가이(마을) 오두막집들을 다 뒤지고 다녔을 것이다. 방카를 탈 때까지 핼린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인사를 못하고 떠나자니, 못내 서운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작별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