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조현아와 갑 장그래

[삐딱한 목사의 서재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등록 2015.01.09 14:55수정 2015.01.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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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마침내 구속되었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회항까지 시킨 강심장이 여론의 분노를 견디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가 부사장이라 해도 그 비행기에는 '왕'(갑)인 고객(승객)들이 타고 있었는데 자기의 감정적 불쾌함으로 승객의 시간을 단 몇 분이라도 지체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강심장에서나 나올 수 있는 태도다.

언제부턴가 갑과 을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는 갑이 되어 을을 무시하고, 덜 가진 자는 항상 가진 자에게 당하는 현상이 당연시되어버린 세상에서 '갑을 대칭구도'가  분명 우리를 속시원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이 복잡하고 타락한 자본주의 구도가 설명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얼마 전 드라마 <미생>이 종영되었다. 프로 바둑기사 입문에 실패한 고졸 청년의 취업기를 다룬 웹툰 원작의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모든 면에서 을의 요건을 다 갖춘 인물이었기에 모든 을들의 공감을 샀다.

실제로 드라마 이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장그래와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장그래보다 훨씬 스펙이 좋은 사람들도, 부장, 과장들도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모두 장그래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우리 사회의 '갑을 놀이'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갑을구도에 빠져 희화적으로 갑과 을을 이야기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은 놓쳐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신입사원에게 간부사원은 갑인데 정작 갑들은 자신들을 을로 여기고 있는 것은 모순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일렬로 쭉 세워 놓는다고 가정하면, 최상의 한 사람과 최하의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에게는 갑과 을의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다. 누구는 누군가보다 못한 사람이며 누구는 어느 누군가보다는 더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을 보자. 그녀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자기가 부사장인 회사의 비행기에 탑승한 고객이 갑이어야 할 상황에서 을이 갑질을 한 것은, 그 아버지의 말대로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조씨가 정말 '영원한 갑'인지는 생각해 볼만하다. 조씨의 잘못은 자신이 영원한 갑이라고 착각한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을의 요인 때문에 화가 폭발했든지.


삼성가의 이부진 사장(호텔 신라)은 택시 기사의 실수로 호텔 입구 유리문이 파손되자, 기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돌려보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하며 이부진 사장을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조 부사장의 잘못이 틀림없듯이 이사장의 '선행'도 틀림없다. 그러나 이사장은 이로 인해 엄청난 이미지 쇄신 효과를 누렸다. 동시에 삼성이 저지른  수많은 문제들(대한 항공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더 많은)은 상쇄되어 버렸다.

삼성은 대한항공에 비해 갑이고 조현아는 이부진에 비해 을이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보기에 모두 '아비' 잘 만난 재벌가 '공주'처럼 보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만약 이부진 사장이 조 부사장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언론에 보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이전에 삼성의 막강한 네트워크는 피해 사무장을 비롯한 목격자들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입다물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현아는 을이다. 조현아의 동생이 '반드시 복수하겠어'라고 한 것은 세상에 원망이 많은 '을'들의 외침이다. 재계 내부의 먹고 먹히는 수많은 약육강식과 관행들을 보아왔던 조씨 자매는 '이 불공평한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미생> 마지막회에서 장그래는 다른 회사에서 능력있는 사원으로 변해간다. 그는 인턴을 하던 회사 내에서는 최하의 을이었지만 또 누군가는 그를 갑으로 여길 수 있다. 인턴직조차 얻지 못한 청년들, 좋은 동료를 얻지 못해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장그래는 갑이다.

장그래는 프로바둑 기사 입단 직전에 포기한 청년이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두어 본 사람들은 아마추어 1급만 해도 동네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안다. 하물며 그는 프로 직전의 단계까지 갔었다. 그래서 바둑에서 배운 판세 읽는 법을 직장에 적용할 줄 알았다. 그도 저도 아닌 청년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처럼 세상에 최상과 최하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갑과 을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을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갑에 저항하기보다는 자기보다 못한 을을 만나게 되면 숨겨 왔던 갑의 본성을 드러낸다.

자신이 가진 재화의 양으로 품위와 권력의 양이 규정되는 세상에서 갑을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부천의 한 백화점에서 주차 안내 요원을 무릎꿇린 모녀는 주차 요원이 와서 차를 빼라고 말해도 자신은 '600만 원짜리 구매자'라는 갑이 되어 권세를 남용한다. 서울의 부유층들에게 서울 위성 도시의 백화점에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은 을축에도 못끼는데 말이다.

이반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느린걸음, 2014)에서 지금의 시장 의존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쓸모없는 사람, 말하자면 을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죄악이거나, 또는 두 가지 다일 수 있다. 소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우리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을)로 만드는 소비 중심사회에서 탈피하라고 경고한다.

현대인은 구매상품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도 구매한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확대되고 우리는 항상 전문가 앞에서 주눅들 수 밖에 없다. 이반 일리치의 다른 저서 <학교없는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것도 평등이라는 가치보다는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무능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비판한다.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가치의 창조'를 뜻하던 기존 노동의 의미는 사회적 관계를 뜻하는 직업으로 그 의미가 축소된다. 그래서 "무직(無職)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도한 부가 생산되거나 고용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아무리 잘 분배하더라도 평등하고 생산적인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사회적 문화적 자연적 조건이 파괴되고 만다. 비트(bit)와 와트(watt)(각각 정보와 에너지 단위를 나타낸다)가 어느 한계를 넘어 대량 생산 상품에 과도하게 투입되면 필연적으로 인간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impoverishing wealth)'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 가난한 부는 함께 나눌 수 없을 만큼 희소한 부이거나, 한 사회의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서 자유와 해방을 빼앗는 파괴적인 부이다.(15쪽)

책의 원제는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다. 을들을 양산하는 전문가 구조에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일자리를 찾는 데 젊음 모두를 걸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주장은 책임 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자발적 실업이라는 말은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언제까지 이 골칫거리를 그대로 놓아 둘 것인가? 이반 일리치는 지동설이 주장되었을 때 천동설은 아주 단순한 논리로 지동설을 비판했다면서 현대 경제학 이론에서 벗어나 분명 사용가치 중심의 경제 구조로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뀔 때 사람들이 느꼈던 불안감처럼 시장의존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불안해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일리치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과연 우리에게 이런 용기가 있는지 되묻게 된다. 동시에 이런 용기 없이  '파괴적 부'의 한 조각이라도 더 잡기 위해 살아가는 이 시대 많은 을들의 결코 나아지지 않을 미래 속에 내 모습도 함께 겹쳐진다. 예언자 요엘은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미래를 예언했는데(요엘 2:27) 지금 이 시대는 시장의존 구조 안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루려는 을들의 시도를 꿈이라는 말로 풀어 쓴다.

그래서 출판사 서평처럼 이반 일리치는 '보수주의자에게는 사상의 저격수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진보주의자에게는 시대를 앞선 성찰로 불편함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말이 옳게 들리나 그렇게 살기 두려워 불편하다. 책의 끝에 붙은 볼프강 작스의 추천의 글로 일리치를 비겁하게나마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일리치를 읽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기대 기자는 LA평화의 교회 목사로 기독교 매체 <뉴스 M>의 편집장도 맡고 있습니다. 이 글은 <뉴스 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조현아 #장그래 #미생 #이반 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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