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목도리 나눔 캠페인 안내장노란뜨개질 세트에 들어 있는 안내장
강정민
센터는 노란목도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노란목도리 나눔 캠페인'을 추진했다. 그리고 100개의 뜨개질 세트를 마련해서 원하는 곳에 보내 주었다. 우리 동네 작은도서관에도 10개의 세트가 왔다. 처음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엔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뜨개질 세트를 받았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목도리를 뜨게 되었다.
내가 할 줄 아는 뜨개질은 겉뜨기, 안뜨기뿐이었다. 변형고무뜨기를 분명히 바느질 잘하는 엄마에게 배웠는데도 집에 와서 하려니 새롭기만 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계속 플레이 하면서 떴다. 꽤 잘 떠진다 싶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몇 단을 더 뜨고 보면 중간에 구멍이 뻥. 다시 풀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손 때 때문에 목도리 시작 부분이 꼬질꼬질해졌다. 매일 조금씩 뜬다고 떴지만 세 타래나 되는 실을 손도 빠르지 않은 내가 언제 다 뜰지 걱정이 되었다.
괜히 뜬다고 한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겨울 다 지나고 완성하면 어쩌나? 걱정됐다. 마음과 달리 뜨개질이 지지부진하던 날, 고등학생 아이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엄마, 나한테는 북유럽이 딱 맞는 거 같아. 한국의 경쟁 교육은 정말 문제가 많아."아이는 우리 교육이 얼마나 문제인지 근거를 대며 이야기했다. 그런 아이가 난 기특했다. 그런데 날 선 비판이 계속될수록 좀 걱정이 됐다. 아이 모습에서 현실엔 발 담그지 않고 비판만 하는 사람의 모습이 겹쳐졌다. 난 실천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아이는 내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는 엄마는 우리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 뭘 했는데?"기가 막혔다. 내가 한 일이 없다니. 난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를 만들었는데. 내가 선 자리에서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동안 주말이면 공사를 하고 청소와 회의를 했다. 아이가 초등 4학년 때 더는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일반 학교로 옮겼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엄마는 뭘 했느냐?' 묻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아이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 말이 다 틀린 건 아니다. 대안교육도 공동육아도 내 아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 일이 좀 더 넓은 아이들에게 확장되었다고 단언을 못 하겠다. 우리나라 교육을 바꾸려면 일반 학교를 바꾸는 일에 뛰어들었어야 한다. 아이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아이는 내 뒤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말을 안 했을 뿐.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는 어쩜 나에게 물을 것이다. 엄마는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어? 말을 안 해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정치권이 알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저절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