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는 조진옥이 이번 <수궁가>에서 국내 첫 선보였다. 소리의 미세한 공간분포와 방향성이 기존 5.1채널 시스템보다 잘 표현된다.
박현근
5시 드디어 멀티미디어 음악극 <수궁가>가 시작됐다. 사실, 판소리 수궁가를 완창으로 들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국악 전공자 중에서도 판소리 전공이거나, 국악 애호가이거나, 아니면 옛날에 태어난 어르신들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로 연주 횟수가 적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전통의 형태로 만나는 것이 힘들고, 또한 원형 그대로 만난다 하더라도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다양한 전자기기와 멀티미디어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옛 방식의 예술문화를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어떤 어린이가 이날 공연의 수궁가를 보았다면 "아, 토끼랑 거북이 그림에 나오네? 수궁가 재밌다!!"라고 했을 것이다. 3시간 반의 완창본 수궁가를 한 시간으로 줄이고, 용왕, 바닷 속, 토끼, 거북이가 수묵담채화로 은은하게 그려진다. 또한 공연 내내 영상(영상디자인 최성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판소리와 음악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부분 위주로만 등장함으로써 영상과 판소리, 대금, 북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고 있었다.
GRM의 'Acousmonium', 영국 버밍엄 대학의 'BEAST'등 해외 유명 음향기관에서는 다채널 스피커시스템의 연구가 활발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연구하고 나아가 대중을 위한 공연에까지 직접 연결한 적은 이번 조진옥의 시도가 처음이다. 이번 공연의 사운드 시스템의 컨트롤을 위해서는 서울대학교 예술과학센터 책임연구원 고병량이 개발한 프로그램 'AcousBlender'가 사용되었다.
정은혜의 소리와 김인수의 북, 이아람의 대금은 찰떡같은 노래와 연주로 몰입감을 주었다. 24채널 라우드스피커 오케스트라는 공연장이 마치 바닷 속에 잠긴 것 같이 느끼게 했다. 거북이가 토끼를 잡으러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대목에서는 바닷물살이 공연장 스피커 뒤쪽에서 앞쪽으로 첨벙거리며 거대한 소리의 물결이 서서히 이동하는데, 정말로 관객이 거북이 등을 타고 바다 깊은 곳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토끼의 모습을 노래한 "토끼화상" 대목을 맨 마지막에 다시 배치해 극의 전체균형을 잘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