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하는 모습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에서 노점 하던 모습
배수경
이렇게 해서 생전 처음 해보게 되는 노점 장사가 시작되었다. 일단 광장의 한 끝에 자리를 마련하고는 허술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우리의 상품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흔한 나무 판대도 없이 그대로 땅바닥에 물건들을 내려놓고는 세 한국인 처자 역시 그곳에 주저앉았다.
광장을 걷던 사람들은 "뭐야?" 하는 표정으로 우리 쪽을 응시하며 지나가고 멀리서 어느 한 상점 주인이 우리와 눈을 마주쳤지만 무심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멀뚱멀뚱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세 처자 사이로 깊은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질러야 하나?" 한 번도 경험이 없는 내 쪽에서 먼저 질문을 건네었더니 비교적 여유 있는 표정의 그녀들이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좀 있다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으면 그때 해도 되요"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한여름 그늘 하나 없는 광장의 햇살은 우리의 온 몸을 강타하는 것도 모자라 뼈 속 깊이 자신의 존재들을 각인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 그대로 앉아 20분, 30분,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다리는 저려오고 그나마 응급처방이라고는 그 자리에 일어나 있다가 다시 앉기를 반복하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과연 승산이 있기는 한 걸까? 행인들 중에는 대놓고 키득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의 모습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듯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광장 끝에 이르기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도 있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가와서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들이 건넨 첫 질문은 "여기서 뭐하세요?" 였다.
도대체 '뻘줌'이라는 걸 모르는 그녀들이 솔직하게 설명을 해드렸더니 그 중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 아들에게 가서 좀 보여주려고. 부모 돈 무서운지 좀 알고 정신 좀 차리라고. 아이고! 아가씨들이 기특하기도 해라"며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신다. 결국 내가 찍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무엇이든 본인이 직접 해보지 않고서 섣불리 판단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절절히 다가오는 경험이었다. '중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 상품 펼쳐 놓고 파는 일이 뭐 어려울까'라고 생각했던 노점이었다. 하지만 직접해보니 차라리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수긍이 갈 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성격 급한 내가 파장을 선언하기 바로 직전, 그제서야 한두 사람이 우리 상점 앞에 와서 물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복 입은 인형, 부채 등 그녀들의 물건이 먼저 팔리기 시작하고, 뒤이어 한 독일인 할아버지께서 내 상품 몇 가지를 주섬주섬 챙기시더니 본인도 학생 때 일을 병행하셨다며 따뜻한 미소를 건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