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0일. 서울시청앞 플라자호텔에서 내려다본 탄핵 반대 촛불문화제 전경. 광화문-서울시의회-서울시청-덕수궁 대한문앞까지 촛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3월 12일 오후 11시 56분 국회에서 193 대 2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탄핵을 강행한 정치세력을 심판하자는 민심은 촛불시위로 재점화됐고, 3월 20일의 '탄핵무효 100만인 대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http://omn.kr/bnrk)
서울 광화문에만 22만 명(주최측 추산, 경찰추산 13만 명)이 모였고, 오마이TV를 통해 현장 생중계를 시청한 사람도 35만 명에 이르렀다. 이날 오마이뉴스에 만들어진 100만인대회 특별게시판에는 하루 동안 약 8만5천건의 독자의견이 올라와 창간 이래 단일기사 최대 댓글 건수를 기록했다.
[43]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 창간 (2004. 5. 27)
영문판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은 5월 27일 창간했다. 그해 3월 인터내셔널의 시민기자로 가입한 론다 하우벤 기자는 2006년 10월 오마이뉴스 기자로는 처음으로 유엔의 출입기자로 등록했고, 2008년 12월 4일에는 유엔특파원협회 인쇄-전자매체 보도부문 은상을 받았다. 2006년 8월 28일에는 오마이뉴스 재팬이 일본에서 창간됐지만, 한국과 다른 인터넷 환경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2009년 4월 24일 문을 닫았다.
[44] 시민기자 해외통신원 1기 발족 (2004. 6. 1)해외 이민자나 유학생들에게 오마이뉴스는 고국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창구였다. 세계 각지의 한국인들이 정치, 문화, 사는이야기를 보내왔다. 그해 6월, 오마이뉴스는 정식 특파원제 대신 시민기자들로 해외통신원을 발족했다. 미국의 강인규와 조명신, 프랑스의 박영신, 뉴질랜드의 정철용, 중국의 김대오 시민기자가 1기 해외통신원으로 위촉됐다. 해외통신원이 공동기획한 '세계의 공영방송을 가다'는 독자는 물론, 국내 기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 2005~2006년 황우석 사태,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에는 해외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특파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45] 유재순 "감옥갈 각오로 전여옥 '표절' 밝혀낼 것" (2004. 7. 1)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의 인터뷰 기사(
http://omn.kr/bjye)가 나간 날 저녁 국회 기자실은 발칵 뒤집어졌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이 표절 피해자 유재순씨의 인터뷰가 나가자마자 기자실을 찾아와 "비방 목적의 허위보도를 한 오마이뉴스를 고소하겠다. 보도를 인용하는 언론사에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넣은 것이다.
두 달 뒤 5억 손해배상 소송을 넣은 뒤에는 "끝까지 가겠다. 10여 명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100% 승소를 확인하고 낸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2012년 5월 18일 대법원이 "전씨가 유씨의 소재와 아이디어 등을 무단으로 이용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표절 혐의를 사실로 확정하는 데는 7년 11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46] 한나라당 연극 '환생경제' 파문 (2004.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