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의 수첩에 밑줄이 진하게 쳐진 채 "신영철 대응 꼭!!"이라고 적혀 있다.
이희훈
'촛불' 사법부를 뒤흔들다7년 전 그는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아래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었다. 이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야간 옥외집회·시위 금지)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된 안 사무처장은 이 조항을 두고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낸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재판장 박재영 판사(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단독7부)는 2008년 10월 9일 집시법 10조를 헌법재판소로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촛불재판 개입'논란의 중심에 설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
안진걸 팀장 "신영철 핍박받은 박재영 판사에게 감사").
2009년 2월 23일,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보수성향 판사에게 촛불집회 관련 재판 '몰아주기' 배당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3월 5일에는 그가 2008년 11월 6일 판사들에게 '야간집회 금지조항 위헌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대법원 진상조사 결과 신 대법관이 이메일뿐 아니라 촛불집회 관련 재판 담당 판사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보석을 신중히 하라'는 등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안 사무처장은 이 일을 "사법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재판 개입"이라고 평했다. 당시 사법부 구성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전국 각지에서 판사들의 회의가 열렸고, 신 대법관의 부당한 재판 개입을 비판하는 글이 법원 내부 전산망 게시판에 잇달아 올라왔다. 모두 신 대법관의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역시 신 대법관이 이메일과 배당 문제 등으로 판사들을 압박한 일은 재판 진행 관여이며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봤다. 하지만 마무리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와 신 대법관의 사과로 흐지부지됐다. 신 대법관은 끝까지 버텼다.
잦아들었던 신영철 대법관 사퇴 요구가 다시 거세진 것도 안 사무처장 때문이었다. 2009년 9월 24일 헌재는 그와 박 판사가 문제 제기한 집시법 10조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정족수(6명)에서 1명이 모자라는 바람에 헌재는 국회가 이 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해당 조항을 놔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은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이 부당했다고 쐐기를 박은 셈이었다. 민주당 등 야당 국회의원 105명은 그해 11월 6일 신 대법관은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을 어겼다며 그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관련기사:
야당 의원 105명, 신영철 탄핵소추 발의) .
절반의 승리, 그리고 절반의 패배하지만 신 대법관은 무사했다. 다수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비호 덕분이었다. 2009년 11월 12일 오전 10시, 헌정사상 최초의 대법관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됐고 신 대법관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안 사무처장은 "큰 굴종감과 자괴감,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판사들은 쫓겨나고, 시민들은 다시 재판을 받게 되면서 밤 12시 이후 야간 시위했다는 혐의로는 유죄, 일반교통방해죄도 유죄판결을 받으니까(기자 주 - 헌재가 지난해 3월 야간 시위의 경우 밤 12시까지는 가능하다고 한정위헌 결정까지 내리면서 일시 중단됐던 촛불집회 관련 재판이 6년 만에 재개됐다)… 사법부 독립을 반만 지켜낸 셈이다. 승리했지만, 또 다른 면으론 처참하게 패배한 투쟁이기도 하고(관련기사 : 밤 12시 이후부터는 야간시위? 헌재의 이상한 결정)."안 사무처장 역시 아직 '피고인' 신분이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일부터 멈췄던 안 사무처장의 재판은 2014년 8월 27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지난 2월 6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에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선고 기일은 딱 한 달 뒤인 3월 6일 오전 10시로 잡혔다. 13일 안 사무처장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걱정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다"고 말한 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그가 자신의 1심 판결을 걱정하는 이유는 처벌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재판들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두려워서였다. 안 사무처장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제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는 편으로 아는데, 이 판결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부담을 주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이어질까봐 걱정"이라며 재판장에게 선처를 구했다. 그는 인터뷰 때도 거듭 "저야 처벌을 감수할 수 있지만, 다른 시민들이 다 유죄가 나올까봐 너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헌재가 야간 옥외집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시위 쪽이 밤 12시 이후는 애매하게 돼서… 여기에 해당하는 집회 참가자들은 상당수가 유죄 받을 위기라 걱정할 수밖에 없고 미안하다. (헌재가) '입법자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으니 반드시 불법이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기계적으로 시민들을 기소하고, 법원은 기계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11시 59분까지만 시위하다가 자정 되면 집에 갈 수도 없는 것인데…."안 사무처장은 "1000명 넘게 기소됐는데 헌재 결정 이후 12시 이후 부분은 계속 유죄가 나오고 있다"며 "촛불시민의 명예가 반만 회복됐다"고 우려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무료 변론하는 관련 재판만 2014년 12월 2일 기준으로 모두 306건(945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밤 12시 이후 야간 시위에 참가했다거나 도로교통법을 어겼다는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안 사무처장은 "촛불시민 단 한 사람도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연대할 것"이라며 "당시 참여한 시민들도 재판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신영철 대법관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