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글쓰기 강좌 <고종석의 문장> 2권 겉 표지
알마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 1권을 아주 흥미롭게 읽어 곧장 2권도 읽었습니다. 한국어 글쓰기 강좌를 엮어 이미 450쪽이 넘는 책(1권)을 엮어 내고도 두 번째 강좌를 엮어 또 다시 비슷한 분량의 책을 냈더군요.
2권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한국어 글쓰기 강좌를 무려 900쪽(1, 2권을 합쳐)이 넘는 책으로 엮을 만큼 저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주제가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종석의 문장> 2권도 좋은 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좋은 글은 명료합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명료하고 아름다운 글이 좋은 글입니다."저자는 명료하고 아름다운 글의 대표적 사례로 김현 선생의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라는 글을 추천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한국어 글쓰기 강좌에서 김현 선생의 글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순히 좋은 글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를 마치 해부학 실습을 하듯이 한 문장 한 문장씩 끊어서 내용과 형식을 자세히 파악하고 명료함과 아름다움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섬세한 글을 쓰고 싶으면 '시'를 읽어라2권에서 권하는 글쓰기 팁 중 하나는 '시를 읽어라'와 '사전을 곁에 두고 활용하라'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먼저 '시를 읽어라'는 섬세한 글을 쓰려면 시를 읽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시인들은 소설가나 에세이스트 같은 산문가들보다 말을 고르는 데 굉장히 신중하거든요. 물론 어떤 시인은 어떤 산문가보다 언어감각이 더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시인이 산문가보다 언어감각이 한결 예민하고 심세합니다." - 본문 중에서시를 읽다보면 말의 리듬감이 몸에 배고 산문을 쓸 때도 리듬감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를 읽을 때는 리듬감이 몸에 배일 수 있도록 소리내서 읽는 것이 좋고, 자기가 쓴 글도 소리내어 읽어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또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중요한 원칙 하나는 '사전 활용'이라고 강조합니다. 늘 잡문이나 쓰는 저는 한 번도 사전을 곁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가끔 컴퓨터로 국어 사전을 찾아보거나 맞춤법을 확인하기는 하지만 사전을 곁에 두고 확인해야 한다는 철저함이 몸에 배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사전을 옆에 비치하세요.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반드시 확인한다. 확인이 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세우고 지키십시오. 틀린 말을 쓰느니 아예 안 쓰는게 좋아요." - 본문 중에서여기서 사전이란 그냥 국어사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의어사전, 반의어사전, 연관어사전 같은 것을 갖추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말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머릿속에 다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전을 곁에 두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종석의 문장> 2권에서도 실전 강의를 위한 예제 텍스트는 저자의 전작인 <자유의 무뉘>입니다. <자유의 무뉘>에 포함된 여러 글을 인용하면서 때로는 새로 다듬기도 하고, 고쳐쓰기도 하며 마치 강독 하듯이 긴 설명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는 저자가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입니다. 저자는 강정구 교수와 사르트르를 예로 들면서 '표현의 자유'가 선별적으로 적용된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악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악법을 계속 어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악법이 유명한 사람이나 지식인들에게는 특별히 관대하게 적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를 넓혀야죠. 거의 무한대로 넓혀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넓혀야 합니다. 자유가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 본문 중에서예컨대 그것이 관례든 법이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법을 어기는 것보다 악법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2권에서 눈여겨 봐야 할 주제 중 하나는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입니다. 소비생활에 '과시효과'(잘난 체하기)가 있는 것처럼 글쓰기에도 그런 특성이 배어 난다는 것입니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도 비슷한 개념이라는 겁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취향을 구별지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반대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지우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상류층의 취향을 따르려고 합니다." - 본문 중에서대중적인 운동인 축구에 비하면 골프는 구별짓기에 해당되는 운동이고, 맥주에 비하면 와인이 구별짓기에 해당되는 술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언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표준어와 대략 일치하는 서울, 경기 지방언어를 익히는 모습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일본어에서도 그와 같은 특징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네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표준어뿐만 아니라 방언도 주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남방언 즉 경상도 사투리라는 겁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한 사회의 최상류층과 최하류층은 자기가 태어나서 배운 언어를 어지간해서는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영남방언이 해당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구별짓기의 욕망이 잘 드러나는 사례로는 기자, 의사, 변호사 혹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들이라고 합니다. 그 사회에서 힘을 가진 세력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지요. 과거 학생운동 활동가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지요.
구별짓기 글쓰기 사례 - 전혜린, 양주동, 피천득말뿐만 아니라 글에서도 이런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구별짓기의 나쁜 예로 '작가 전혜린'을, 독보적인 구별짓기 문체 사례로 '양주동'을, 천박한 글쓰기의 사례로 '피천득'을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어면서 처음 깨닫게 된 내용도 있었는데 바로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에 관한 것입니다. 새뮤얼 이치예 하야카와라는 미국 언어학자가 쓴 책에 나오는 선전언어를 분류하는 기준인데요.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많이 들어간 말인데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말이면 으르렁말이고, 긍정적인 방향이면 가르랑말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저자는 신앙인, 교인, 예수쟁이라는 말 가운데 신앙인은 가르랑말에 가깝고, 예수쟁이는 으르렁말에 가깝다는 겁니다. 중매인과 뚜쟁이, 스파이나 정보요원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물론 가장 대표적인 으르렁말은 '욕'이고 전형적인 가르랑말은 연인들의 '밀어'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가장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사례들에 속하는 노빠, 안빠, 박빠 같은 말이나 종북, 좌빨, 수꼴 같은 말들은 으르렁말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입니다. 광고 카피와 추도사 등에 널리 사용되는 사례를 소개하는데,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추도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략적 글쓰기를 위해서는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두 가지 표현방식을 적절히 구사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으르렁말과 가르랑말도 생소하였지만, 저의 경우 로마자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공부도 처음이었습니다. 저자는 영어가 언어 세계의 최강자가 되고, 로마자가 문자 세계의 최강자가 된 까닭을 말해줍니다.
으르렁말과 가르랑말 활용하기그리고 한국어의 로마문자 표기 방식이 매큔-라이샤워식, 문화부식, 예일식이 있다는 사실로 나아갑니다. 세 가지 표기법의 특성에 대하여 꽤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결론은 '정부의 표준안'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글쓰기 이론 강의에서는 심리형용사의 인칭 제약, 한국어의 재귀 표현, 띄어쓰기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약간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모두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강조합니다.
띄어쓰기에 대해서는 "각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붙여 쓴다", "조사는 앞단어에 붙여 쓰고 어간과 어미도 붙여 쓴다"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원칙만 지킨다면 언어 직관에 따라 써도 된다는 겁니다.
글쓰기 이론 강의를 하나만 더 소개하면 '은유와 환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논리학과 수사학으로 이루어지는데 수사학은 은유와 환유가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오늘 수사학에 대해 얘기하면서 주제를 은유와 환유로 한정지은 것은, 수사학의 요체가 비유이고 비유의 요체가 은유와 환유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중에서은유와 환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러시아 출신 언어학자 야콥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더군요. 야콥슨 이론의 요지는 "은유는 본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에 기초하고, 환유는 본관념과 보조관념의 인접성에 기초한다"라고 합니다.
언어학자의 연구를 요약한 설명은 좀 어렵지만 책에 소개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 낯설지 않습니다. 예컨대 '내 마음은 호수' 같은 표현이 은유이고,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같은 말들이 환유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널리 사용되는 환유적인 표현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숙어를 많이 알수록 유리하다고 강조합니다.
첫 문장을 잘 쓰기 위한 고종석의 전략이 밖에도 외국인의 이름을 표기할 때 역사 인물과 현대인을 다르게 표기해야 하는 까닭, 지명과 나라이름 등을 표기할 때 엔도님과 엑소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사례들을 설명하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외국인의 인명과 외국의 지명을 쓸 일이 흔치 않아 자세히 기억해두지는 않았습니다.
훗날 그런 일이 생기면 <고종석의 문장>을 다시 찾아 읽게 되겠지요. 1권에 이어 저자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바로 '첫문장'입니다. 저자는 1권에서도 글쓰기에서 첫문장과 끝문장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바 있지요. 저자는 청탁을 받아 글을 쓸 때 첫문장을 시작했던 경험들을 들려줍니다.
첫째 옛날 경험 돌아 보기, 둘째 시사적 사건, 친구와의 대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주제와 관련된 거리 모으기, 셋째 해당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시작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주제와 관련된 연관개념 찾아보기로 시작하기입니다.
어떤 주제나 소재에 관해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첫 문장부터 막힌 기억이 있다면 저자의 경험담을 기억해 두었다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행갈이를 하여 문단을 나누라거나 분량이 제한된 글쓰기를 연습해보라는 조언도 새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분량을 제한하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밖에도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글의 주제는 어떻게 잡나요? 창의성과 독창성은 어떻게 기르나요? 글감은 어떻게 찾나요? 같은 글쓰기 강좌 수강생들과 주고 받은 즉문즉답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는 글감을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에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매순간 순간이 모두 글감이라고 말하면서 조금만 생각을 하면서 삶을 한 번 돌아보라고 충고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으면 글을 쓰라 흔히 사람들은 생각이 정리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생각이 정리된 후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던 경험이 훨씬 많았다고 강조 합니다.
저자 고종석은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글쓰기의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인터넷 덕분에 기자, 작가, 저자 같은 계급장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읽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삶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여 그 자체로 훨씬 아름다고 풍요로울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글을 안 쓰는 사람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글을 안 쓰더라도 뭐, 몹쓸 삶은 아니죠. 그래도 글쓰기가 전제하는 책읽기나 생각하기 같은 것들이 영혼을 고양시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본문 중에서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글쓰기가 타고 나는 재주가 아니라 연습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1권부터 강조했듯이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나아진다는 것이지요. 타고난 재주보다 꾸준한 노력과 연습으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여러분도 희망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종석의 문장
고종석 지음,
알마, 2014
고종석의 문장 2 - 자유롭고 행복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고종석 지음,
알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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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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