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해고되는 꿈도 꾸지만... 난 행복한 사람

[초보학부모 이야기 시즌2-②] 자주 아픈 아들들, 어릴 적 내 모습 떠올라

등록 2015.03.12 17:16수정 2015.03.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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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주 아프다 이비인후과를 3일에 한번씩 간다. 감기에 장염에 독감까지 약이 그칠 날이 없다. ⓒ 김승한


아이들이 자주 아픕니다. 목감기와 콧물은 기본이고 장염에 독감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이며 약국을 내 집처럼 드나듭니다. 독감에 걸리니 학교에도 못 보내고 회사로 데리고 왔습니다. 낮에는 좀 괜찮다가도 밤이면 어김없이 기침에 고열이 시작됩니다.


9일 밤늦은 시각, 아이들의 열이 내리는지 이마를 만져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저에게도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거든요. 잠깐 옛날 얘기 좀 해보고자 합니다. 고3때의 이야기입니다.

힘들었던 나의 고3 시절

무엇엔가 놀라 벌떡 일어나 눈을 떴습니다. 악몽인가 봅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이불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일단 이마와 목 주위에 맺혀있는 땀부터 닦았습니다. 가슴에 통증이 시작됩니다.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약 5분간 죽는 것 같은 고통이 지속됩니다.

화장실에 다녀와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아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눕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누웠습니다. 또 통증이 몰려옵니다.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빠른 속도로 뜁니다. 한 시간 정도는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잠들 수 있습니다.

폐결핵이었습니다. 약 2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3월 첫 주에 전 폐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핏기가 없으며 쉬이 지치고 미열과 함께 기침을 많이 합니다. 가끔 피를 토하기도 하고요.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3층이었는데 1층에서 3층까지 올라가려면 두 번을 쉬었습니다. 2층에서 한 번 쉬고 3층에서 벨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쉬고요. 그러고 집에 들어가면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거기에 늑막염까지 함께 걸려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눕거나 일어날 때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은 아직도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던 순간만큼은 지금도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병의 상태를 설명하려다 망설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러더니 어렵게 말을 꺼내더군요.

"결핵입니다. 폐결핵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질병인데 요즘 들어서 10대를 중심으로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에요. 결핵균이 폐에 많이 퍼진 상태라 학생이 많이 힘들 텐데……. 휴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휴학을 권하는 의사선생님, 그러나​

당시 전 키 163cm에 몸무게는 45kg 정도였습니다. 안 그래도 작은 키에 희멀건 피부를 하고 깡말라 흡사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아빠는 몸이 약해서 그런 거지 병은 아닐 거라 했지만, 아빠와 재혼한 새엄마는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감지하고 병원에 보낸 것입니다.

이후 저는 학교 가는 길이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 마냥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45kg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것도 힘든데 그것보다 참기 어려운 통증은 ​수업시간에 수시로 찾아오는 기침과 무호흡 증세였습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기침을 참느라 배에 힘을 주고 입을 막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멀쩡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30초에서 1분 가량 계속되는 이 현상이 때문에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진 저는 가슴을 쥐어뜯고 어떻게든 숨을 쉬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숨을 쉴 수 있었고요.

그 기억 때문인지 전 지금도 호흡곤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 시엔 최악이었습니다. 지금도 물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휴학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가 공무원이긴 했지만 당시 우리는 3남 2녀. 아버지 수입만으로 재수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성적도 뒤에서 놀고 있는 처지라 한 학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휴학은 집어치우고 고3 수업에 야간자습까지 하고 집에 왔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1년을 보내고 학력고사를 치렀습니다. 시험을 치르는 당일 새벽에 일어나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는데 손이 부르르 떨려 국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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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시절 사진 다들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필자는 아래줄 왼쪽에서 세번째입니다. ⓒ 김승한


어찌어찌해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니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더라고요. 폐결핵도 1년 동안 보건소에서 타온 약을 꾸준히 먹으며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온 덕인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엔 완치는 아니지만 '비활성'이라는 판정을 받으며 지긋지긋했던 병마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아, 어디 갔었어. 대학교 합격했대."
"정말요?"

"그것도 장학생이란다. 고생했다."
"......" 

비록 지방 3류 대학이긴 하지만 시험에 붙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합격했다는 데도 전 그다지 기쁘다거나 이런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니 도리어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더군요.

공부에 관심없던 대학 시절 그리고 졸업과 함께 찾아온 IMF

​전 91학번으로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등록금을 면제받고 기성회비만 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통기타에 빠졌고 학과 친구들과 어울리며 밤낮 놀러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대학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이 대학에 들어간 거지 공부하고픈 욕심도 없고 앞으로 무얼 하겠다는 생각도 전무했으니까요.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하니 IMF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취직도 힘들어지니 친구들과 뭐라도 해 보려고 이것저것 손을 대었다가 사기와 횡령 혐의로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대전의 동부, 서부 경찰서를 전전하며 조서를 꾸미기도 여러 번, 결국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날들은 마음과 몸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하니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침마다 콩나물시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게 일이었습니다.

'언제쯤 나도 저들처럼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출근이란 것을 해볼까?'

폐결핵으로 휴학을 권했던 의사의 말을 뒤로 한 채 보낸 1년의 시간, 덤으로 얻은 대학 생활! 그리고 졸업과 함께 찾아온 IMF, 경찰서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

지금은 15년째 근속중인 어엿한 직장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랑했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하고 씩씩한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교훈 없는 고통은 없다 생각합니다. 무가치하다 생각하던 인생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지금도 폐결핵의 후유증으로 호흡이 많이 짧습니다. 그래서 깊은 호흡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쉽게 지치는 편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아빠가 병으로 고생하던 이야기를 해 주려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도요. 

사회 생활의 일원이 된다는 것, 그것은 월급이 많건 적건 이 사회 어딘가 소속되어 내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것이 나에겐 커다란 행복입니다.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끔 직장에서 해고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면 일어나자마자 긴장했던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퇴근하면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인사를 합니다. 양손을 배에 가지런히 얹은 후에 인사를 합니다.

"배꼽 인사!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누가 뭐래도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독감과 장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며 기대해 봅니다. 내 아이들과 행복이란 무엇인지 감사함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날들을.
#폐결핵 #호흡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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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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