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왕복 6시간...상주에서 영덕까지, 탈핵 집회 다녀오다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평화시위의 끝판왕

등록 2015.03.15 19:34수정 2015.03.1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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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웃마을의 귀농자로부터 한통의 카톡을 받았다. 3월 14일 토요일 영덕에서 탈핵반대 집회가 열리는 데 함께 가자는 내용이었다. 순간, ' 아, 영덕에서 원전 건설때문에 반대 집회를 하는구나' 싶었고 가서 연대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만 했다.

요즘 크고 작은 봄철 농사일도 밀려있고, 개인적으론 일요일까지 볼일이 겹쳐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상주에서 영덕까지의 거리도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차로 왕복 6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당일로 다녀오기가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영덕 탈핵반대, 간곡하고 끈질긴 요청에 25명이 동참

그렇다고 슬쩍 빠지기도 찝찝한 것이 근래 들어 상주에서 탈핵 강연도 개최하고 틈만 나면 탈핵 원전반대를 외치다가 정작 코앞에 원전건설이 현실화되려고 하는 마당에, 행동해야 될 때 안하는 것도 못내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집회동참을 제안해 온 귀농자의 간절한 요청이 계속되었고, 끈질긴 요청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으나 동참을 약속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하고 꼭 함께 해야 할 행사라면 상주 내 각 단체에 알려 더 사람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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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천국 등뒤에 탈핵 천국이라는 문구를 넣어 핵없는 세상을 소망하고 있다. ⓒ 이종락


그 제안이 계기가 되어 마침 열리는 단체 사무국장 회의에서 긴급 안건으로 상정돼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을 확대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일 아침 봉고차 2대와 승용차 한 대에 아이들 포함 25명의 상주 시민이 영덕 탈핵 집회의 길을 나섰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구면의 낮익은 얼굴들이었다. 그만큼 상주지역에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영덕이라는 원격지의 집회에 연대하러가는 시민들 수가 25명이나 됐다는 사실에 가슴 한 편이 뿌듯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귀농한 지 9년이라는 세월 동안, 광우병 집회부터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등등 먼 거리를 오가며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깊은 한숨이 나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좋은 봄날에 평범하게 봄나들이나 가는 그런 삶은 어디로 갔나..'

3시간을 달려 영덕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와보는 영덕의 하늘은 푸르렀고 날씨는 화창했다. 곧바로 중식을 먹고 집회장소인 영덕군청 앞마당으로 향했다. 집회시작 1시간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버스가 집회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찰차가 분주하게 움직였고 집회와 행진에 쓰일 소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무슨 예술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것들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치 축제를 즐기는 사람처럼 탈핵반대를 표명하기 위한 몸 꾸미기 작업등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서울, 부산, 청주, 그리고 경북 각 지역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행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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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집회 준비 탈핵 집회가 시작되기 전 참가자들이 노란 띠로 퍼포먼스 준비에 여념이 없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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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학년 탈핵반대 상주에서 중2년생들이 영덕 탈핵반대 집회에 참가해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이종락


시위가 아니라 예술축제로 승화된 시민들의 거리행진

몇몇 대표 분들의 인사말과 연대의 격려사에 이어 바로 시위대의 거리 행진이 시작되었다. 인구 몇 만의 경북 동쪽 끝 작은 영덕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휘황찬란한(?) 거리행진을 하는 게 아마 개청 이래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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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탈핵 거리행진 영덕 읍내를 거리행진하는 집회 참가자들 ⓒ 이종락


주말이었지만 조용하고 인적과 차량이 드문 작은 지역이었다. 관광지인 강구 항이 훨씬 더 북적거리고 영덕읍내는 늘 이렇다고 어느 분이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경찰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인지 시위대보다 더욱 더 긴장된 표정으로 행진 통제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거리에 선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10대 아이들은 거리 행진의 퍼포먼스 구경꺼리에 신기한 듯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불야성 강구항, 전기 펑펑 써대는 우리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영덕 읍내 작은 광장에서 한바탕 행진의 모둠 판이 열릴 땐 영덕 전체가 시위가 아니라 축제의 도가니에 싸인 듯했다. 거리 행진은 다시 영덕 군청 마당으로 집결했고 몇 몇 지역 대표들의 연대 인사말에 이어 각자의 소원을 담은 헝겊을 모아 돌리는 행사로 영덕 탈핵 반대 집회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모처럼 내륙의 한가운데서 바닷가에 나온 상주 사람들은 저녁이라도 먹고 가자는 제안에 강구항의 다리 밑 쇠락해가는 상가에서 서로의 수고를 풀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오는 길에 집회에 대한 각자 느낀 점도 자연스레 주고받았다.

"데모가 아니라 영덕군 금메달리스트 환영 퍼레이드 하는 거 같아 하하."

"준비는 많이 했는데 집회가 너무 평화적이라서 탈핵 반대의 강력한 의지 전달이 잘 됐을까?"

"분위기는 좋던데, 아이들도 물어보니까 영덕에 원전 건설 절대 안 된다고, 아이들이 그럴 땐 부모들도 같은 생각이지 않겠어."

"문제는 영덕군수가 반대 의지가 없는 것 같아, 밀어붙이려는 거 같은데, 군의원들이 반대를 좀 하는 것 같은데 다 새누리당이라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정부에서 또 돈 좀 풀고 온갖 경제적 발전 지원하겠다고 사탕발림 해놓으면 주민들 넘어갈 확률도 많아."

삼척에서 원전 건설이 무산되니까 영덕에다 원전을 짓겠다는 정부, 이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세계적 재앙이 된 현실 속에서 원전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정부, 경북의 동쪽 끝 대게로 유명한 영덕이라는 작은 지역이 자칫 경남의 밀양처럼 또 다른 투쟁과 갈등의 상징이 될 것 같은 우려가 들었다.

어둠이 깔린 주말의 강구항은 불야성이었다. 마치 부산 해운데, 광안리를 모방한 것처럼, 저렇게 전기를 써대니 핵발전소가 필요하고, 결국 전기를 마구 써대는 우리에게도 그 원인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우리부터 전기를 아껴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한 시간 전기 끄기 운동을 상주에서 한번 해보자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한 몸을 끌고 상주로 돌아오니 어느 덧 하루가 다 저물고 있었다.
#영덕 #탈핵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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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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