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박물관 <영국박물관> -
정기석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에서 비싼 물가를 보상받다개인적으로는 영국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단 두 곳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런던의 매력은 충분했다. 비싼 호텔비와 저녁 밥값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선 세계 3대 박물관인 영국박물관, 영국 최대 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는 모두 공짜다. 런던 시내의 대다수 박물관, 미술관은 공짜다.
만일 한국에서 영국박물관이나 내셔널갤러리의 값진 세계적 문화재, 명화들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할까. 내셔널갤러리에만 명화가 2300점이 넘는다. 한국 특별전시회에는 그림 몇 점 달랑 걸어놓고 수만 원씩 입장료를 받지 않나. 현실적으로 아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니 값을 따지는 시도 자체는 부질없는 짓이다. 차마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이렇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하는 나라는 영국 말고는 없다고 한다. 박물관, 미술관 뿐이 아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를 보상받을 방법은 또 있다. 영국박물관을 나와 내셔널갤러리를 찾아가려면 자연스레 런던 웨스트엔드를 지나게 된다. 영국의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공연예술의 성지다.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 코베트 가든 거리마다 세계적인 오리지널 뮤지컬을 공연하는 극장이 즐비하다.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라이온 킹, 미스 사이공 등이 이곳에서 초연돼 세계로 퍼져나갔다. 연중 상시 공연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는 가격의 반의 반 값 정도면 볼 수 있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한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하루 정도 밖에 허락되지 않아 공연 관람은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명작이 초연된 고색창연한 극장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공연광고 간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공연의 감동을, 런던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영국박물관은 우주 같았고 내셔널갤러리는 바다 같았다. 영국박물관은 영국의 흑역사다. 지난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호전적인 선조들의 전리품이다. 이집트, 그리스, 앗시리아,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의 전시장이다. 영국박물관에 정작 영국의 문화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박물관은 입장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입구에서 자발적인 기부금만 받고 있다. 자국 물품이 일정 수 이상이 안 되면 입장료를 받을 수 없다는 국제박물관헌장 규정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연을 듣고 외침과 수탈의 역사에 찌든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마음도 따라 아팠다.
영국 국립미술관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는 명화의 전당이다. 르느와르, 클림트, 모네와 마네, 고호와 고갱, 터너, 쇠라, 루벤스, 루소, 루벤스, 홀바인 등 학교 미술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대가들의 명작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데 모여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지만 고호의 해바라기를 보고, 홀바인의 대사들을 보고, 모네의 수련을 보고 홀린듯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60여개의 전시실에. 축구장 6개 넓이다. 그만큼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의 시공간은 우주나 바다처럼 넓고 깊다.
일단 그 무지막지한 규모와 깊이에 나는 입구부터 이미 질려있었다 주눅이 잔뜩 들었다. 딱 아는 만큼만 보였다. 그러니 결국 많이 보이지 않았다. 도슨트의 안내나, 오디오 도우미도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작정하고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날을 잡아 돌아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럼에도 통풍으로 발까지 절뚝이며 영국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의 회랑을 바삐 돌아다녔다. 내셔널 갤러리는 두 번이나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갔던 방을 또 들어가는 등 예술에 홀려 미로를 자꾸 헤맸다. 명화의 신들에 치여 내내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결국 1백만분의 1밖에 구경하지 못했다.
그날 런던에서 나는, 영국박물관을 거쳐 내셔널갤러리를 빠져나와 석양이 지는 트라팔가 광장 한켠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프랑스의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환청이 들렸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