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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때론 마약 같다. 숨 막히는 일상을 잠시 탈출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그도 그랬다. 서울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다가 지치면 주말에 제주도를 찾았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쟁 같은 삶이 되풀이 됐다. 7년 동안 영업직으로 전쟁을 치른 그의 신체와 정신건강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출근하기 싫어서 미치겠다'... 스트레스를 견딘다는 핑계로 계속 지갑을 열었고, 텅 빈 통장을 채우기 위해 다시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남은 건 '소맥' 제조기술, 어깨통증, 뱃살 뿐.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고 저녁에는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고, 집에 와서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고……."서울 탈출을 꿈꾸는 직장인이라면 그의 고백에 공감할 것 같다. 직장생활 7년차, 그가 서울에서 버틴 힘은 짧은 여행과 '계급장'이었다. 취업난 시대에 그럴듯한 회사 직원이라는 명함과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마약 같은 연봉 5000만 원. 하지만 거대한 서울의 톱니바퀴 속에 '나'라는 존재는 없었단다. 서른 셋의 '나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그는 2012년에 마약을 끊었다.
"6월 사표를 던졌다. 그 뒤에 장흥 노력항으로 차를 몰았다. 통장에는 약간의 총알이 있었다. 물론 연봉 반 토막 보다 작았다. 나는 혼자 제주 성산포항으로 향했다."[한라산 야간등반] 나의 아픔
그는 밤늦게까지 한라산 소주를 마셨다. 이를 '한라산 야간등반'이라고 표현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그가 연세 170만 원을 주고 구한 집에서도 그랬다. 술을 유독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외로웠다. 낯선 집에서 홀로 무시무시한 태풍을 견뎌야 했다. '육지 것', '제주 이민자'... 소위 제주의 '괸당 문화'(친척이나 인척이라는 뜻의 권당에서 비롯된 말로 지역색을 담은 문화를 뜻한다) 속에서 그는 제주도라는 섬 속의 또 다른 섬이었다.
- 요즘도 야간에 한라산 등반하나? "예전만큼 자주하지는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쯤. 동네 친구들과 카페 '소리'에 가서 야간등반을 한다. 술 마시자는 사람은 널렸지만, 이젠 몸이 힘들어서……. (웃음)"
지금은 웃었지만, 3년 전 제주도에 처음 이주했을 때에 그는 혼자였다. 휴가철에 잠깐 다녀가는 친구들과 여행객들과 투명한 한라산 소주 앞에서 평등하게 야간등반을 했지만, 그들이 육지로 떠나면 혼자 남았다. 친구들을 서울로 올려 보내고 혼자 운동화를 빨면서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뭍으로 떠나지 않는 사람들, 떠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밥은 먹고 다녀요?"라고 물으시는 대평리 집주인 아주머니, "우리 아들이 서른아홉인데, 꼭 만나 달라"고 야밤에 대문을 두드리는 할머니, 비양도 해녀들의 구역다툼 이야기를 해주셨던 부녀회장 아주머니, 셰어하우스 1호 입주자 유라, 동네카페 '소리'의 정겨운 주인장 부부…….
그가 마음을 굳힌 건 용눈이 오름에 올랐을 때였다.
"제주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막힌 게 뻥 뚫린 것 같은 느낌, 자연이 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