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내려다 본 오늘의 목적지 마이쩌우 : 너무 평화스럽게 보인다.
이규봉
주변은 모두 논이고 물이 많아서인지 모기가 문다. 닭이 홰를 치기 시작하니 개는 덩달아 따라 짖는다. 잠을 깨니 새벽 3시이다. 억지로 다시 눈을 붙였으나 이제는 새소리까지 겹치고 게다가 확성기에서는 60,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아침마다 틀었던 생활체조 리듬의 음악도 나온다. 어쩜 어렸을 때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던지 잠시 추억에 잠긴다.
어제 내려왔으니 오늘은 길을 거슬러 다시 올라간다. 약 30킬로미터를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날씨는 종일 흐리고 가랑비도 내리다 말다를 반복한다. 4시간 쯤 달렸으나 주행한 거리는 겨우 30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1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가니 평지가 나온다. 식당에서 갈증을 식힐 맥주와 함께 점심을 네 명이 했는데 그 값이 우리 돈으로 만원 남짓이다.
몇 번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내려 달리니 마을이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 목쩌우(Moc Chau)이다.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섰는데 마침 그곳에 호텔이 있었다. 별 두 개인 이 호텔의 하루 숙박비는 30만동이다. 시설은 평범하다. 젖은 옷을 모두 빠니 손목이 쑤신다. 예전 세탁기 없을 시절 빨래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한 번도 그 노고를 생각해 보지 않고 자란 것 같다.
이와 같이 흐리고 습도가 높은 날씨에 빨래를 말리려면 바람이 필요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를 밤새 틀어놓았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빨래는 모두 말랐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식당을 찾다가 그런대로 큰 식당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던 젊은 베트남 사람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술을 권한다. 함께 어울렸다. '베트남 만세! 호찌민 만세!'를 뜻하는 '무온 남(Muon Nam)'을 외치니 모두 좋아한다.
통일된 베트남, 우리는?베트남은 중국에게 천여 년을 지배 받았던 민족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저항한 베트남은 938년 중국 남한(南漢)의 침략을 물리쳤고, 이로써 천 년 만에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베트남 최초의 독립국가인 다이 비엣(大越)을 세웠다. 송나라의 군대가 11세기에 또 침략했으나 물리쳤으며 그 결과 송나라는 1164년에 다이 비엣을 안남(安南)이라 칭하며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중국은 끊임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13세기에 원나라가 3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침략했으나 이를 모두 막아냈다. 1427년에는 명나라의 침략을 물리쳐 국호를 다시 다이 비엣으로 바꾸었다. 1789년에는 청나라가 침략했으나 이 역시 물리쳤다. 우리도 수나라와 당나라를 물리친 적이 있다. 하지만 원나라에 패해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원의 통치를 받았으며 명나라에 대해서는 소중화(小中華)라 칭하며 스스로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하다 두 번에 걸친 호란을 겪고 임금이 일개 장수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사죄를 했다.
베트남의 이러한 승리는 세계 전쟁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매우 힘든 것이다. 강한 적과 대할 때는 가능한 정면 대결을 피하고 게릴라 전법을 사용하다 상황이 좋아지면 전면대결을 하며 강대국을 괴롭혔다. 이 전술은 현대의 베트남 전쟁에 그대로 이용되었다. 1954년에는 프랑스를 물리쳐 영원히 쫓아냈다. 그 빈 자리를 다시 침략한 최고의 강대국 미국에 대응하여 베트남 인민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싸우고 이겨 마침내 1975년에 통일을 이룩했다.
베트남의 통일을 방해하고 베트남의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한 그 대가로 벌어들인 돈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분단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그들보다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엄청난 돈이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에 불필요하게 지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갈등을 조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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