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네팔에서 안아준 '아가'도 갔다

어린이날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

등록 2015.05.06 17:29수정 2015.05.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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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 마을 풍경 이번 네팔대지진으로 랑탕 인근 러슈와라 불리는 다수의 마을이 붕괴되었다. 그 중에서도 랑탕 계곡을 올라가며 등산객을 반겨주던 랑탕 마을은 대참사를 겪었다. 전과 후의 모습이 서늘한 아픔을 준다.
랑탕 마을 풍경이번 네팔대지진으로 랑탕 인근 러슈와라 불리는 다수의 마을이 붕괴되었다. 그 중에서도 랑탕 계곡을 올라가며 등산객을 반겨주던 랑탕 마을은 대참사를 겪었다. 전과 후의 모습이 서늘한 아픔을 준다.김형효

아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번 네팔지진 참사에서 또 한 번 그런 절감을 한다. 한국은 어제(5일)가 어린이날이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보냈다. 사정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도 지자체나 마을단위에서까지 준비된 어린이를 위한 각종 행사에 참가하여 나름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어른들은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나 자유롭고 편안한 조건만 만들어주면 스스로 즐겁다. 나는 어제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네팔 상황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네팔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나타난 어린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진 참사로 어른들은 고통 속에서 시름시름 불편한 얼굴 기색이 역력한데 즐겁게 스스로 어울리며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정성껏 챙기는 모성을 보여주는 아이도 보았다.

이번 지진참사로 세상을 떠난 나의 지인이 있다. 내가 듣게 된 첫 번째 궂긴 소식이었다. 내게 오빠라 부르던 어린 아가씨가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녀의 미국에 있는 조카와 페이스북 채팅을 하면서 듣게 된 슬픈 소식 그녀가 낳아 기르던 어린 딸아이가 지난 25일 오후 카트만두에 지진으로 떠났다고 한다. 네팔 말로 "거요(Gayo)", 갔다는 뜻이다. 그 아가는 어디로 갔을까? 아주 어린 포대기 속에 아이를 보고 안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 아가가 갔다니......, 참으로 슬프고 슬프다.

랑탕 마을에서 만났을 때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지난 2007년 랑탕에서 만났던 그의 가족은 매우 단란하고 맑았다. 가던 길 오던 길 2박 4일을 함께 했다.
랑탕 마을에서 만났을 때 그의 가족들과 함께지난 2007년 랑탕에서 만났던 그의 가족은 매우 단란하고 맑았다. 가던 길 오던 길 2박 4일을 함께 했다.김형효

나는 그 슬픔을 달래고 위로하느라 한참 멍한 사색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였다. 이미 본보에 소개한 바 있는 돌마 타망(Dolma Tamang)소식이다. 살펴보니 지난 3월 28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인 랑탕마을에 간다고 전화를 걸어와 실로 8년 만에 통화를 한 학생이다. 이제 아가씨가 다 된 그녀는 그사이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카트만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아버지 장례를 위해 한 달 정도 랑탕에 가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카트만두로 돌아오려던 그녀, 지난 25일에 랑탕은 사라졌다.

마을 70여 가구가 한꺼번에 비바람에 눈보라에도 건재했던 마을이 건물 잔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랑탕 인근에 많은 마을들이 산사태까지 나서 무너지고 집은 부서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신호음이 가지 않았다. 다시 또 전화를 걸었다.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그녀의 여동생에게서 페이스북을 통해 전화가 걸려왔다. 슬프다는 소식, 견디기 힘들다는 소식, 나는 그들을 모두 사랑하고 결코 잊지 않겠다는 포스팅도 보였다.

무너진 마을 사람들 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쫓기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 사이에서도 아이들은 부끄럽게 웃고 있다.
무너진 마을 사람들한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쫓기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 사이에서도 아이들은 부끄럽게 웃고 있다.사진 랄라 구릉 네팔

한국시간 밤 여덟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확인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 바로 그때 전화를 받는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한마디 하고는 다른 사람이 말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타망족 언어인지, 티벳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희망이 하나 생겼다. 그래서 곧 그녀의 어린 동생과 다시 채팅을 통해 전화해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30분 후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아픈 소식, 사연을 함께 알게 되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갔다가 지진이 났고 모든 마을 사람이 생사에 갈림길에 놓였을 때 이 학생의 어머니도 마을과 함께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돌마 타망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녀의 동생 까르톡 타망은 지금 영국에서 공부 중이다. 모두가 사라져 소식이 없을 때 그리움에 사무친 글을 남겼던 그녀는 이제야 운다.

또 하루가 지났을 때 머리에 붕대를 감은 돌마 타망의 사진 속에 어린 동생들이 함께 누워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들판이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시 다른 사진이다. 이번에는 붕대를 푼 사진이다. 머리에 상처가 크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그 마을과 그녀를 위해 시를 지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마을과 그곳에 사람들을 위해 기원했다.


랑탕 빌리지의 별이 된 사람들


김형효

오래된 고대를 걷는 자리에
땅이 있었습니다.
별처럼 땅 위에 빛이 나던
무공해한 웃음은 고대로부터 한가족이었던 듯
입은 것 말고는 그 어떤 경계도 없는 것처럼
예쁜 돌담 사이로 꽃 핀 식물처럼
가늘가늘 하늘하늘 땅 위를 밝히는 별 같았습니다.
돌마 타망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콧물 흘리던 어린 동생들
아무런 경계도 없이 처음 만나
서로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삼촌이 되고 조카가 되고 서로는 그렇게 땅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나를 비춰주던 마당에는 별들이 내려와
땅 위의 별들을 따듯하게 감싸주었습니다.
안아주고 싶은 듯 부끄럽게 반짝이던 하늘에 별과
땅 위의 별들에 밝고 검소한 반짝임은 서로 하나였습니다.
그 마을에는 전설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전설이었고, 모던한 거리를 휩쓸고 온
거친 바람 같은 사람들을 반짝이는 별처럼 씻어주었습니다.
그저 맑은 랑탕 히말라야를 흘러내려온 바람과 함께
모던한 거리에 아프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하늘도 땅도 계곡을 흐르던 바람도 다 끌어안고
랑탕 계곡 깊숙이 골짝을 흘러 전설과 함께
슬픈 대지를 쓸고 가버렸습니다.
별이 된 별이었던 자취만 남기고 가버린 그들
거기 한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까르톡 돌마 라마여!
울지 마라!
언니도 오빠도 천지자연에 있다.

*까르톡 돌마 라마는 지진이 난 다음날 저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의 안부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아직도 언니의 소식이 확정된 것은 없었습니다. 마을이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에 이 시를 짓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랑탕 마을 사람들 #돌마 타망 #까르톡 타망 #랑탕 히말라야 #사라진 마을, 사라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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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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