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 김신헤는 2000년 3월 8일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진은 당시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를 하던 김씨가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김신혜
2000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시민단체인 '반부패 국민연대'에서 민원국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없었던 그 날, 일상처럼 제일 먼저 시작한 업무는 밤사이 단체 인터넷 홈페이지로 접수한 민원 확인이었다. 그때 특이한 제목의 민원이 눈에 띄었다. '우리 누나가 억울하게 갇혀 있어요'라는 메일이었다. 그래서 클릭한 게시 글은 이러했다.
"누나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현재 구속되었는데, 누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누나와 여동생을 아버지가 성추행하여 아버지를 누나가 살해했다고 하는데 여동생은 아버지와 같이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추행을 했다고 하면서 누나가 아버지를 수면제로 죽인 것이라고 합니다. 누나는 현재 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저희로서는 도울 길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습니다. 제발 저희를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접수된 내용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사연이었다. 기본적인 6하원칙인 언제, 어디서, 몇 살의 누가 했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민원 낸 사람이 받을 연락처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무시할까 싶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 구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사실 시민단체에는 많은 민원이 제기된다. 그중에는 사실과 다른 허위도 많고 또 그냥 한번 해보는 민원도 상당하다. 하지만 정말 민원처럼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받았다면 이것은 정말 큰 일이 아닌가. 결국 나는 보내온 메일 아래에 댓글로 '직접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며 게시판에 남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또 며칠이 지나가던 어느 날 오후. 한 통의 전화가 사무실로 걸려 왔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 3월 발생한 '완도 존속살인 여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내가 시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요"민원을 보낸 사람은 당시 19살이었던 김신혜의 남동생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34살의 아저씨가 된 남동생은 그 당시 참 심성이 여린 친구였다. 한편 남동생과 통화 후 나는 존속 살인사건에 대한 여러 의심 정황에 대해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한 전남 완도를 수차례 방문했고 사건 수사기록과 1, 2심 판결문을 입수하여 검토했다. 그렇게 알게 된 존속살인 여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참으로 황당했다.
먼저 경찰이 밝힌 사건 당시 상황이었다. 2000년 3월 7일.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50분경. 전남 완도의 한적한 시골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당시 50대 초반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3급 장애인으로 사고 현장에서 차량으로 20분가량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김OO씨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나오던 마을 주민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처음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한다. 사망자가 도로 위에서 발견되었고 또 사망자 주변에는 현대자동차 마르샤 차종의 크고 작은 라이트 조각도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단순 교통사고 뺑소니로 여겼던 이 사건이 갑자기 존속 살인 사건으로 발전한 것은 사고 발생 후 만 하루가 지나가던 3월 9일 새벽 0시 10분 경이었다. 완도 경찰서가 사망자의 큰 딸, 김신혜(77년생, 당시 23살)를 존속 살인과 사체 유기 혐의로 전격 체포한 것이다. 그 후 김신혜는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모든 혐의가 인정되어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재판부는 '김신혜가 아버지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범행 과정에서 참작할 사유가 있다며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죽은 아버지가 큰딸 김신혜를 어려서부터 성추행했고 이어 둘째 딸 마저 성추행하자 이에 격분한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정상 참작이었다.
그런데 묘했다. 이처럼 재판부가 정상 참작한 사유에 대해 정작 김신혜는 달랐다. 재판부의 정상 참작을 거부하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주장하고 나섰다. 검찰이 주장하고 또 1,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감형 요인, 즉 '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강력히 항의한 것이다. 김신혜는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
김신혜와 고모부의 15년 진실 공방2001년 여름, 나는 모든 기록을 다 검토하고 그제야 김신혜를 만나러 청주 여자 교도소를 찾아갔다. 수사 기록에 쓰여 있던 김신혜는 참 작고 가녀린 여성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몸무게가 불과 39kg 밖에 되지 않는, 작아도 참 작은 여성이었다. 이러한 김신혜의 작은 체구는, 그래서 당시 검사나 재판부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과연 이처럼 체구가 작은 여성이 단독으로 성인 남자를 죽이고 또 유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상식적 의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김신혜는 존속 살인범이 되었다. 이렇게 무리한 추론이 가능하도록 만든 중심에는 김신혜의 고모부 김정한(가명)씨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김정한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 발생한 2000년 3월 8일 밤 11시 40분경, 조카인 김신혜가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했다"며 자신에게 자백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