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 상공'은 어디일까?

[우리말 살려쓰기] 겹말 '깊게 심호흡', '나란히 평행선', '다른 대안'

등록 2015.05.18 14:36수정 2015.05.18 14:36
0
원고료로 응원
ㄱ. 서울 하늘 상공

방송은 북한의 가상 폭격기가 서울 하늘 상공을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정수복-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문학동네,2015) 98쪽


상공(上空)
1. 높은 하늘
  - 상공에 연을 띄우다 / 수천 피트 상공으로 올라가
2. 어떤 지역의 위에 있는 공중
 - 서쪽 상공으로 가상의 적기가 나타났다 / 서울 상공에 이변이 일어난 듯한

 서울 하늘 상공을 날아가는
→ 서울 하늘을 날아가는

이 보기글에서는 '서울 하늘 상공'이라 나오는데, 한자말 '상공'은 '높은 하늘'을 뜻합니다. 그러니 겹말입니다. '서울 하늘 상공'처럼 적으면 '서울 하늘 하늘'처럼 말한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상공 = 어떤 지역의 위에 있는 공중'이라고도 나오는데, '공중(空中)'은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곳'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공중 = 하늘'인 셈입니다.

'하늘'은 어떤 곳을 가리킬까요? '하늘'은 '땅 위쪽'을 가리킵니다. 땅 위쪽이면 모두 하늘입니다. 개미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사람 키보다 낮은 곳이라 하더라도 개미한테는 하늘입니다. 하늘에는 높은 하늘과 낮은 하늘이 있을 뿐이고, 땅 위쪽은 모두 하늘입니다. 그러니 '공중 = 하늘'이고, '상공 = 하늘'이며, 한국말사전에 달린 풀이말에서 '위에 있는 공중'처럼 적은 대목도 엉터리와 같은 겹말인 셈입니다. '공중'이라는 낱말은 땅 위쪽인 곳을 가리키니, 이 낱말 앞에 '어떤 지역의 위'라고 꾸밈말을 붙일 수 없습니다.


상공에 연을 띄우다 → 하늘에 연을 띄우다
서쪽 상공으로 → 서쪽 하늘로

한자말 '상공'을 꼭 쓰고 싶다면 '서울 상공'처럼 적을 노릇입니다. 굳이 한자말을 쓸 생각이 아니라면 '서울 하늘'이라고만 적으면 됩니다. 다만, 어느 낱말을 골라서 쓰든 한국말은 '하늘'이고, 한자말은 '상공·공중'이며, 영어는 '스카이'인 줄 제대로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ㄴ. 깊게 심호흡

에바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밤 공기는 부드러웠고, 하늘에는 별들이 아주 높이 떠 있었다
<미리암 프레슬러/정지현 옮김-씁쓸한 초콜릿>(낭기열라,2006) 67쪽

심호흡(深呼吸) : 의식적으로 허파 속에 공기가 많이 드나들도록 숨 쉬는 방법
   -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고 나서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 깊게 숨을 쉬었다
→ 깊게 숨을 마셨다
→ 깊게 숨을 들이켰다
→ 한숨을 쉬었다
 …

한자말 '심호흡'은 '깊다(深) + 숨(呼吸)'으로 엮은 낱말입니다. 얼개 그대로 '깊은 숨'을 가리키는 '심호흡'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깊은 숨'이니까, '깊은 심호흡'처럼 적은 보기글은 겹말이 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뱉고' 같은 보기글이 있는데, 이때에도 겹말이 되고 말아요. 깊이 쉬든 크게 쉬든 모두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뱉고'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굳이 한자를 빌어 '심호흡'처럼 쓰기보다는, '깊은숨'이나 '큰숨'이나 '한숨'처럼 한국말로 쓰면 됩니다.

ㄷ. 나란히 평행선

지금 이런 독백을 읽을거리로 내놓고 있는데, 이것은 사진과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38쪽

평행선(平行線) : 같은 평면 위에 있는 둘 이상의 평행한 직선

 사진과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
→ 사진과 나란히 달린다
→ 사진과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
→ 사진과 나란히 있다
 …

'나란히 평행선을 달린다'처럼 쓰는 글이 겹말인 줄 미처 못 깨닫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평행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행선'은 '평행한 선'을 뜻합니다. 한자말 '평행(平行)'은 '나란히 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평행선'을 한국말로 옮기면 '나란한 금'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라든지 '나란히 달린다'로 손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사진과 나란한 금으로 달린다'라고 하니까 어쩐지 어설픕니다. '이 글은 사진과 나란히 달린다'라 하더라도 어설프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 글월은 더 손질해야 합니다. '이 글은 사진과 나란히 있다'라든지 '이 글은 사진과 함께 있다'쯤으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ㄹ. 다른 대안

그렇다고 체념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정말 없는 걸까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원마루 옮김-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 19쪽

대안(代案) : 어떤 안(案)을 대신하는 안
   - 대안을 내놓다 / 대안을 제시하다 /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대안(對案)
1. 어떤 일에 대처할 방안
   - 대안을 마련하다 / 대안을 세우다 / 대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2. 책상이나 밥상 따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음

 다른 대안은
→ 다른 길은
→ 다른 삶은
→ 다른 생각은
 …

'대안'이라는 한자말은 '代案'이나 '對案'일 텐데, '대안'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사람은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고 콕 집어서 느끼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냥 '대안'이라고 쓰리라 봅니다.

'代案'은 '대신하는 안'이라고 해요. '대신(代身)하다'는 "어떤 대상의 자리나 구실을 바꾸어서 새로 맡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한자로 쓴 '대안'이라면 '바꾸는 안'이나 '새로운 안'이나 '새로 맡는 안'을 나타내는 셈입니다.

'對案'은 '어떤 일에 대처할 방안'이라고 해요. '대처(對處)하다'는 '어떤 정세나 사건에 대하여 알맞은 조치를 취하다'를 가리키고, '조치(措置)'는 '벌어지는 사태를 잘 살펴서 필요한 대책을 세워 행함'을 가리킨다고 '대책(對策)'은 '어떤 일에 대처할 계획이나 수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빙글빙글 도는 말풀이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아무튼 이 한자로 쓴 '대안'이라면 '맞이할 방안'이나 '마주할 방안'을 나타내는 셈입니다.

 대안을 내놓다 → 새 생각을 내놓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 다른 길이 없으니
 대안을 세우다 → 새 생각을 세우다
 대안이 쉽게 떠오르지 → 다른 길이 쉽게 떠오르지

어느 한자말을 쓰든 '대안'은 예전 길로는 갈 수 없다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예전 길은 그만두고 '다른' 길이나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느낌을 나타내지요. 이리하여, 우리가 생각할 대목은 바로 '다름'과 '새로움'입니다.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길'이나 '다른 생각'이나 '다른 길'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새롭게 바라보려 하기에 '대안 찾기'를 한다 말하고, 다르게 나아가려 하기에 '대안'을 놓고 생각을 모읍니다.

 새길 찾기 . 새꿈 찾기 . 새삶 찾기 . 새넋 찾기 . 새빛 찾기

때와 곳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테니 어느 한 가지로 못박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그때 알맞게 새로운 낱말을 지어서 쓰면 됩니다. '새-'를 앞가지로 삼아 우리 마음을 북돋울 낱말을 요모조모 생각해 보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우리말 살려쓰기 #우리말 #글쓰기 #중복표현 #겹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