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할 짓 없어서 강제징용시설을 관광지 만드나"

징용노동자 최장섭 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진에 '분노'

등록 2015.05.20 17:13수정 2015.05.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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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하시마(군함도)'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강제징용노동자 최장섭(88)씨.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하시마(군함도)'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강제징용노동자 최장섭(88)씨.오마이뉴스 장재완

"그것이 사람이 할 짓이여? 할 짓이 그렇게 없어? (하시마를) 관광지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자랑하겠다는 것 아녀...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여..."

강제징용노동자로 끌려가 탄광 노동자로 일했던 최장섭(88)씨. 20일 오전 대전 동구 판암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최근 일본이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에 대해 분노의 일침을 가했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여.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지... 군함도를 관광지로 만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지. 우리 노동자들에게 일언반구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하는 거여."

1943년 2월 전북 익산시 낭산면에서 살고 있던 최 씨는 열여섯의 나이로 강제징용을 당했다. 대전과 부산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 하시마에 도착한 그를 맞은 것은 바닷속으로 이어진 갱도였다.  [관련기사 : "누우면 그냥 송장... 사람인가 싶더라니께"]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 반도 서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둘레 1.2km, 동서길이 160m, 남북 480m, 총면적은 0.1㎢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작은 무인도다. 1800년대 초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미쓰비시 석탄 광업주식회사가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인부가 필요했던 일본은 강제징용을 통해 조선인을 이곳으로 보냈고, 중국인과 미군포로 등도 이곳에서 강제노역을 시켰다. 최씨가 일할 당시 이곳에는 조선인 징용노동자 500여 명이 수용되어 있었고, 중국인 노동자도 240여 명이 있었다. 

'하시마'는 해군 전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지만, '감옥섬', '지옥의 섬'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하시마 탄광은 해저 400~900m를 내려가는 곳에 있었고, 3km 가량 떨어져 있는 다카시마(섬)와 해저로 갱도가 이어져 있었다. 탄광 산업이 기울고 석유 시대로 넘어가면서 결국 1974년 하시마 탄광은 폐광했고, 다시 무인도가 됐다.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떠 있는 하시마, 일명 '군함도'.(2010년 6월 군함도 홍보관에서 자료 촬영)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떠 있는 하시마, 일명 '군함도'.(2010년 6월 군함도 홍보관에서 자료 촬영)오마이뉴스 장재완

3교대 근무에 하루 한 번 깻묵·된장국물 줘

'하시마'에서 최씨는 3교대로 하루 8시간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하루 한 번 주는 깻묵과 된장국물 뿐이었다. 대부분 영양실조에 시달렸지만 노동을 멈출 수 없었다. 1000m에 달하는 수직갱도를 내려갈 때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고, 실제 갱도가 무너지거나 기계 등에 끼어 죽는 일이 허다했다. 1986년경 시민단체에 의해 발굴되어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에서 사망한 사람이 모두 1295명이며, 이 중 조선인이 무려 122명(남 110명, 여 12명)이었다고 한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으로 수도 없이 자살을 생각했고, 일부 동료는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혀 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6개월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하던 최씨는 일본의 패망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대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비 50원이 전부였다.

열여섯 소년이 당했던 참혹했던 강제징용은 그의 평생을 괴롭혔다. 갱도에서 다친 허리가 고질병이 되었고, 그 무엇보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에 시달릴 정도다. 그런데 그 지옥 같은 섬을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여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자랑거리로 삼으려고 한다. 최씨가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더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최근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추진하는 시설들에 대해 '세계문화유산등록에 적합하다'고 추천, 등록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하시마(군함도)'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강제징용노동자 최장섭(88)씨가 자신의 경험을 '자서전'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기록물.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하시마(군함도)'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강제징용노동자 최장섭(88)씨가 자신의 경험을 '자서전' 형식으로 기록해 놓은 기록물.오마이뉴스 장재완

이에 대해 최씨는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록해 관광지로 만드는 것은 군함도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고, 모순"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강제징용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며,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갔던 곳이 어떻게 관광지가 되고,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최 씨는 또 "요즘 아베 총리가 위안부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그러는데, 아마 일본놈들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은 다시 전쟁국을 만들어 폭거를 해보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며 "그럴수록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노동자들은 참말 억울해. 나라는 국가재정(국가발전)을 올리기 위해 포스코랑 (보상을) 바꿔먹고, 정작 주체성을 가진(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이렇게 평생을 억울하게만 살아야 하니..."라며 제대로 된 대응과 보상에 나서지 않는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현재 최씨가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로 인정받아 병원비로 지원받는 연 80만 원이 전부다.

최씨는 끝으로 "후손을 위해서라도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옳은 이야기 한다고 빨갱이라고 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며 "우리 강제징용노동자들의 역사를 일본이 지우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강제징용노동자 #하시마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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