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학'을 떼고 나서다

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 ③

등록 2015.06.01 10:57수정 2015.06.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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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행복한 인문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인문은 곧 학문(인문학)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조금 더 쉽고 흥미 있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인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현장 체험적 글입니다. 또한 교사와 학부모와도 공유해 청소년 인문학과 인성 지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인식, 그리고 적용의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 기자말

인문학의  '학'은 고상하고 높은 벽

인간적 가치가 무시되고 사람 사는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현실을 생각할 때 인문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이 인간다운 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인문적 사유의 힘이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인문적 사유의 기초가 허약한 그들에게 처음부터 인문학적 접근을 요구하는 방식 자체에 무리가 있음을 오랜 교직 경험을 통해 번번이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오히려 처음부터 인문적 영역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가지게 만들어버리기 쉽지요.

인문적 소양과 가장 근접한 학문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들이나 보통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낯선 여행지와도 같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다녀오면 좋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려운, 그런 먼 나라 말입니다.

실제로 인문학이 우리 청소년이 접근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얘기지요.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다고 하면서 정작 보통 인간으로서 인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자꾸만 실질적인 일상의 삶과는 별로 연관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은 물론 대부분의 일반 사람이 '인문학' 하면 우선 '학(學)'자가 붙어 있어 머리 아프다고 합니다. 하기 싫은 공부인 것 같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분야인 것 같은 거부감을 유발하는 느낌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분명히 학문이고 공부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원론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려야 합니다. '학'이라는 글자가 일반인이나 청소년들이 인문의 실제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고상하고 높은 벽이 될 뿐입니다.

인문학, '인문 정신'으로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와야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은 학문 분야로는 인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곧 인문학은 아니며, 인문학을 통해야만 인문적 사유가 가능한 것 또한 아닙니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역사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히 다르지요.

역사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일의 유용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 한 인간으로서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나 모두가 역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역사 의식은 역사학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일도 같은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인문적 사유와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삶과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인문학에 대한 깊은 학문적 이해의 수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문 정신은 인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운 실제 삶을 위해 기능해야 합니다. 따라서 의학이나 과학, 이공 계열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도 인문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면 '인문'이 남습니다. 그 안에는 보다 나은 인간적 삶에 대한 지향이라는 인문의 힘과 정신이 오롯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유와 정신은 비로소 인문학 책이나 강의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그 동안 인문학은 인간들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 채 상아탑 속의 강단이나 책장도 넘기기 어려운 서적 속에 안주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한테는 어렵기만 한 이론의 틀로 무장한 채 대중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인간을 위한 실제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심하게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들어지고 인간적인 면이 점점 더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런 책과 이론 속의 인문학은 당연히 제일 먼저 위기에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이제 인문학은 그 본질적 가치인 '인문 정신'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사람들의 정신과 가슴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현실적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성찰과 실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또 그 정신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직면하고 생각하는 인문적 사유를 통해 보다 인간답게 변화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청소년들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들 수준에 맞는 방법을 통해 먼저 인문적 소양을 쌓는 일의 중요함을 알고 인문적인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인문학'에서 '학'을 떼버리는 일인 것이지요.
#청소년 인문 #인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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