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곱게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 온몸이 숲내음으로 감돕니다.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최종규
숲 일기인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는 숲에서 배운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숲이 가르치는 이야기를 날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철 따라 달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글쓴이 주원섭님은 '나무가 잘 자란 길'을 걸을 적에는 흐뭇하거나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나무를 뭉텅뭉텅 벤 길'을 걸어야 할 적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시리다고 말합니다.
도시에서는 전깃줄이 걸린다거나 '나무가 해를 가린다'고 해서 나무 줄기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벱니다. 시골에서도 도시를 흉내내 나무를 함부로 베기 일쑤입니다. 한여름 더위를 그으려고 나무 그늘을 찾으면서도, 막상 나무그늘이 논이나 밭에 들어온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베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락이나 남새를 심으려면 해가 잘 들어야 할 테니, 논이나 밭 한복판에 나무를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해는 한 곳만 비추지 않습니다. 해는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질 때까지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아침에 그늘이 지면 저녁에는 해가 들고, 아침에 해가 들면 저녁에는 그늘이 집니다. 시골 들에서 나무를 모조리 없애면 해는 더 들 텐데, 해가 더 드는 만큼, 구름이 끼거나 비바람이 드는 날에는 들에 심은 나락이나 남새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둘레에 나무가 없으면 비바람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나락이나 남새도 비바람을 못 견디지만, 여느 시골 여느 살림집도 비바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돌로 울타리를 쌓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 '바람막이숲'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부터 이 땅 어느 시골이든 '숲정이'를 고이 아끼거나 건사했습니다. 마을마다 숲정이가 있어야 비바람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집집마다 나무를 돌보고 마을마다 숲정이를 보듬은 한겨레입니다.
나무그늘이 드리우면 논밭에 해가 덜 든다고 할 수 있지만, 나무가 있을 적에는 땡볕이나 불볕이 찾아들어도 나무가 더위를 식혀 줍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가뭄이 들어도 샘물이 솟고 냇물이 흐릅니다.
나무는 보통 잎으로 호흡하지만, 전체 호흡량의 8퍼센트 가량은 뿌리가 담당한다... 쥐는 놀라운 번식력으로 다른 동물의 풍부한 먹잇감이 되고, 온갖 잡다한 것을 먹어치우면서 생태계의 하층구조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도 한다... 국수나무는 둥근 덤불 형태의 군집을 크게 형성한다. 국수나무 덤불은 숲을 우거지게 해서 바람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숲과 마을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숲에서 헤맬 때 국수나무를 길라잡이로 해서 마을로 오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해 맑은 숲을 대변하는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287, 304, 367쪽)숲이 있기에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으니 나무를 베어 연필을 깎고 종이를 빚어 책을 묶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얻어 땔감으로 삼고 연장을 다듬습니다. 나무마다 온갖 열매를 맺으니, 나무 열매는 고마운 밥이 됩니다.
숲이 있기에 문명과 문화가 태어납니다. 숲이 없으면 문명이나 문화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숲을 아끼지 않아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없애면, 어떤 문명이나 문화이든 무너지거나 사라지고야 맙니다.
주원섭님은 스스로 애써 바지런히 숲을 드나들면서 숲일기를 씁니다. 도시에서 살며 숲을 드나들기는 만만하지 않을 테지만, 스스로 푸른 마음이 되어 삶을 가꾸려 하기에,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숲길을 찾아서 푸른 바람을 쐽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지내는 사람은 한결 넉넉하고 포근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니, 숲 일기를 써서 숲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곳은 우리 모두한테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 테니, 숲일기를 써서 숲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른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평을 쓰고, 운동 경기를 보고 나서 관전평을 쓰며, 책을 읽고 나서 비평을 씁니다. 경제나 주식을 비평한다든지, 정치나 사회를 비평한다든지, 예술이나 문화를 비평한다든지, 교육이나 역사를 비평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달리, 숲을 이야기하거나 나무를 이야기하거나 풀과 꽃과 들과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냇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 해 내내 운동경기 관전평을 쓰거나 정치 비평을 쓰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한 해를 통틀어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이랑 겨울에 따라 늘 달라지는 숲과 나무와 풀과 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숲 일기'와 '나무 일기'와 '꽃 일기'를 관찰 일기처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어른하고 아이가 모두 숲 일기나 나무 일기나 꽃일기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누구나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고 숲바람을 쐴 수 있다면, 참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 곰취의 숲속일지
주원섭 글.사진,
자연과생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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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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