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만남 공간 '초록', 문 닫습니다"

지율 스님 등 2006년 부산교대 앞 마련했으나 주택 낡아, 새 방향 모색

등록 2015.06.09 10:12수정 2015.06.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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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풀잎을 가져다가 부처를 삼아 쓰기도 하고 부처를 가져다가 작은 풀잎을 삼아 쓰기도 한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2006년 부산교대 앞에 생태문화공간 '초록'을 열면서 한 스님이 했다며 소개한 말이다. 공간 초록은 2006년 6월 문을 열었는데, 그때 지율 스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세계를 열어 갈 작은 문이 될 것이며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너른 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공간 초록이 오는 6월 30일로 문을 닫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간 초록을 다녀갔고, 이곳은 공부와 토론, 문화공연, 독립영화 상영 장소로 활용되었다. 공간 초록은 도심 속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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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 앞에 2006년 여름부터 공간을 마련해 시민사회단체와 문화단체의 다양한 활동 장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초록'이 오는 6월 30일로 문을 닫는다. ⓒ 윤성효


공간 초록은 '천성산 도롱뇽 소송'(경부고속철도 원효터널 착공금지 가처분소송)이 끝나갈 무렵인 2006년 6월 만들어졌다. 도롱뇽소송에 참여했던 변호사와 '도롱뇽의 친구들'이 대법원 패소 뒤 모여 논의해 생태문화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주택을 빌려 얼마의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내기로 했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도록 했다.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이 탄생했던 것이다.

지율 스님은 2009년 모든 운영에서 물러났고, 권한과 책임을 '초록운영위'가 맡았다. 부산온배움터가 얼마의 월세를 부담하면서 다양한 강좌를 이곳에서 열기도 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계간 <녹색평론> 독자모임인 '구들장', 호랑이출판사 등이 주로 이용해 왔고, 매달 한 차례 '초록영화제'도 열렸다.

공간 초록이 문을 닫는 이유는 월세 부담도 있지만 집이 오래됐기 때문이다. 이 집은 1966년 지어졌는데, 올해로 49년째다. 공간 초록이 처음 만들어질 무렵에도 누수현상이 있었는데,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발생했다.


공간초록운영위는 2년 전 전기배선을 다시 놓고 벽지도 다시 바르면서 '대대적인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평화로운 공간을 계속 이어가자는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자원봉사하며 일도 하고, 돈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옥상과 부엌의 누수가 심각하다. 물이 새고 있다"며 "부엌 누수는 2009년부터 시작되어 여러 번 공사를 했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비만 오면 초록을 힘들게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간 초록의 문을 닫기로 했다. 7월 이후부터는 '방 잡기 예약'은 되지 않고, 이곳에서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만남'을 볼 수 없게 된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민경씨는 "고민하고 물어보고 이야기한 끝에, 아쉬움과 섭섭함을 뒤로 한 채 상황을 반전시킬 대안이 없으니 자연스레 문을 닫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운영위원들은 공간 초록과 비슷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김민경씨는 "여기서는 끝이지만 초록의 정신은 어디서든 영원할 수 있기에 여기서의 인연들도 끝이 아니라고 본다"며 "다른 공간이 생겨 초록의 정신이 이어질 수도 있고, 마음과 행동이 모여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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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 앞에 2006년 여름부터 공간을 마련해 시민사회단체와 문화단체의 다양한 활동 장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초록'이 오는 6월 30일로 문을 닫는다. 공간초록은 처음에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 등이 마련한 공간이었다. ⓒ 윤성효


#공간초록 #지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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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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