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자세로 서로를 향해 대결하는 모습에서 현대사회의 극한의 구조가 느껴진다.
문성식 기자
이제, 21세기 물질문명 시대 부속품처럼 쳇바퀴 같은 삶이 성행위와 동성, 집단 성행위로 표현된다. 움직임은 야한 것이 아니라, 기계운동처럼 천천히, 나사가 정교히 맞물린 가운데 톱니처럼 계속될 뿐이다. 그로테스크한 음악은 고음까지 가세해 더욱 공포스럽다. 13명의 남녀무용수가 서커스 같은 여러 대형을 보여주고, 이동식 대형 거울 네 개가 남녀 커플들의 자화상을 비춘다. 인간들은 결국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공허한 바람소리와 약한 철길 소리가 들린다. 가운데 남자가 크게 몸을 휘두르며 대장장이처럼 쇠망치로 쇳덩이를 계속적으로 때린다. 다른 무용수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무대를 크게 반시계 방향으로 줄지어 돈다. 1, 2명씩 쓰러지면서 영상에 0, 1, 2의 숫자들과 두드리던 쇳덩이 돌의 모습, 별들의 표면, 사람, 요란하게 돌아가는 잭 팟과 숫자들이 보인다.
이어 대결 장면이다. 남녀 서로 한 조를 이루어 대결하기도 하고, 다 같이 무리 짓기도 한다. 간혹 여성들이 내는 고음의 야릇한 소리도 인상적이다. 아주 길게 서로 겹치는 글리산도 음이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시 고음 플루트의 플라터 텅잉 반복음과 현악기 피치카토 등이 복잡하게 겹치며, 무용수들은 복싱자세로 서로를 또는 알 수 없는 허공의 누구를 향해 목적 없이 싸우다가 몸을 포개어 탑을 쌓으며 쓰러진다.
끝을 알 수 없는 행군과 싸움, 학대당한 몸, 발, 등, 손, 팔의 부위가 확대되어 영상 화면가득 보인다. 다시 반복되는 현실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비닐과 검정망토를 걸친 영웅을, 영화 <어벤져스> 같은 영웅과 분홍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꿈꾼다. 공주가 홀로 춤추고, 우리가 도달하고 싶지만 저 멀리 보일 뿐인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품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