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오월의봄
1987년 1월 22일, 땅 없는 사람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이며 아키노 정부에 토지 관련 공약을 지키라고 경건하게 요구하고 있을 때, 경찰이 멘디올라 다리에서 발포해 최소 21명이 사살되고 100명 가까이 부상당했다 … 부패한 대통령을 몰아내는 두 번의 봉기가 성공했는데도, 필리핀 민중은 사회체제를 제대로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113, 134쪽)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8분, 랑군의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이는 나라 전체를 정지시키고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가져올 총파업의 신호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국적 운동은 야만적인 군대와 부딪혔고, 군부는 수천 명의 민중을 죽이고 이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하게 된다 … 군인들은 응급실에 쳐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날 버마 전역에서 360명이 살해됐다 … 버마 군부는 석유·목재·어로·채굴권 판매를 이용하여 군대의 규모를 확대하고 무기를 개선했다. (148, 150, 165쪽) 군대에는 자유도 평등도 없습니다. 모든 사내가 들어가도록 한대서 평등이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히거나 똑같은 총을 쥐어 준다고 해서 평등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훈련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준다고 해서 참말 '자유'롭게 지내지 못합니다.
군대에 자유와 평등이 없는 까닭은, 군대라는 곳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사람한테 길들여서 시키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사람 죽이기'이기 때문에, 군대에는 자유도 평등도 싹틀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시아에서 독재권력을 부리는 여러 나라는 군대를 거느립니다. 독재권력은 군대를 거느릴 뿐 아니라, 군대를 더 크게 키우려 하고, 군 간부를 늘려 떡고물을 잔뜩 안겨 줍니다. 군인이 되면 먹고사는 걱정이 없도록 하는 독재권력입니다. 군인한테 먹고사는 걱정을 없애 주니, 군인은 독재권력이 시키는 짓을 모조리 따르도록 길듭니다.
그런데, 군인이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을 하던 여느 사람입니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리려고 똘똘 뭉치는 여느 사람하고 똑같은 사람이 군인이 됩니다. 독재권력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참다운 자유와 평등을 바라보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독재권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군인과 경찰은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뿐더러, 자유와 평등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먹고사는 걱정'을 없애는 일에 팔아치웠기 때문입니다.
1903년 중국 장군 '도살자' 팽과 그의 군대가 가는 길마다 사람들을 도륙하면서 티베트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왔다 … 반세기 이상 이어진 중국의 점령 정책 동안에 반란·투옥·기아 때문에 죽은 티베트인은, 겨우 500만 명 정도인 전체 인구 가운데 100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 구타당하고 진압당해도 티베트인들은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 … 중국계 상인들은 국영 상점에서 사원의 귀중품을 판매한다. (179, 180, 194, 200쪽)
부는 고루 분배되기보다 새 호텔 건설에 사용됐고, 자본 투자 계획은 물가를 상승시켰다 … 엘리트와 노동자 간의 격차는 확대됐다. 엘리트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시절이 없었다. 당 간부들은 국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구입한 상품을 재판매해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 엘리트 담론에 길든 학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투쟁했고, 운동 내에서 같은 담론을 재생산했다. (221, 222. 246쪽)군인이 되어 이웃이나 동무를 죽이거나 괴롭히는 짓을 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독재권력을 거머쥔 우두머리는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할 뿐입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손수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군 간부를 거느리면서 이들한테 말 한 마디만 합니다. 군 간부는 수많은 졸개(일반 사병)를 이끌고는 바로 그들한테 이웃이자 동무인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며 마을을 불태웁니다. 더군다나 독재권력 우두머리는 그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뿐인데, 어마어마한 돈과 재산을 긁어모읍니다. 독재권력 우두머리 둘레에 빌붙는 이들은 모든 심부름을 도맡으면서 돈과 재산을 야금야금 얻어먹습니다.
아시아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은 독재권력 우두머리 한 사람만 끌어내리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두머리 한 사람을 끌어내려도 새로운 우두머리가 들어서면서 '앞선 독재권력자'하고 똑같은 짓을 일삼습니다. 그러니, 우두머리와 허수아비 몇 사람을 끌어내려는 민중봉기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짓고 새로운 삶을 이루고 싶어서 일으키는 민중봉기입니다.
<아시아의 민중봉기>라는 책을 읽으면, '엘리트'를 나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엘리트'란 누구인가 하면 야당 정치인이나 대학생 지도자입니다. 야당 정치인이나 대학생 지도자는 민중봉기를 등에 업으면서 이름값을 날려 '독재자한테서 정치권력을 나누어 받아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더 마음을 쏟는다고 합니다.
국민당의 학살극이 진정될 때까지 수만 명이 살해됐다. 아무도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 수많은 국민당 형법은 나치 독일에서 나온 것이며, 21세기에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 학교에서 타이완어를 말하는 어린이들은 매를 맞았고 … 타이완과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제조업인 군수산업의 중요한 소비국이 됐다. (290, 292, 293, 326쪽)민중이 들고일어날 때, 그들의 용감한 행동은 노래·춤·시·산문·연극으로 신화화됐다 … 정부가 평화적 시위자들을 구타하기 위해 만달레스(정부 폭력배 집단)를 풀자, 새로운 계층의 주민들이 운동에 참여했다 … 4월 6일 경찰이 발포하여 수십 명을 살해하자, 군중이 왕궁을 습격할 것이라는 생각에 당혹한 것은 국왕만이 아니었다. 합법화되어 권력의 한 조각을 얻기를 간절히 원했던 정당들도 더욱 불안해졌다 … 하층 카스트 민중, 소수민족과 여성은 의회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않았다. (332, 354, 361, 376쪽)<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읽는 내내, 이 나라와 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알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군홧발에 짓밟혀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독재권력은 '군인과 경찰'한테 사내는 그냥 때려죽이고 가시내는 강간하고 죽이도록 '작은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필리핀도 버마도 네팔도 중국도 티베트도 타이완도 방글라데시도 인도네시아도 모두 똑같습니다. 죽은 사람 숫자만 다를 뿐입니다. 죽는 모습은 엇비슷하고, 강간이나 학살이나 독재와 부정축재도 엇비슷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에 있는 모든 독재권력은 미국하고 줄이 맞닿습니다.
미국은 군수산업으로 나라를 버틴다고 합니다. 아니, 미국은 군수산업을 일으키고 어마어마한 군대를 거느리면서 지구별 수많은 나라를 짓누른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타이완과 한국이 미국에서 전쟁무기를 아주 많이 사들이는 '큰 손님'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군사독재가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려야 돈을 잘 법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이 군대를 자꾸 늘리면서 사람들을 윽박질러야 미국 군수산업은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끝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듭니다. 아시아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이 내다 파는 새로운 무기를 끝없이 사들입니다. 헌 무기는 전쟁을 치르면서 다 써 버리고, 전쟁이 지나가면 새로운 무기를 사고팝니다. 새로운 무기가 이윽고 헌 무기가 될 무렵 다시 전쟁을 치러서 이 무기를 다 써 버리고, 또 새로운 무기를 잔뜩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