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돈도 안 받는 전북교육감? '진실'이 뭘까

[주장] 누리과정 예산 문제, 전국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등록 2015.06.13 15:15수정 2015.06.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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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6월 14일 오후 5시 31분]

전북교육청, 누리예산 편성 거부 (<전북일보>, 6월 11일자)
송하진 "누리예산 교육청이 줘야"-김승환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을" (<새전북신문>, 6월 10일자)
김 교육감 "돈 없어 누리예산 못 세워"(<전라일보>, 6월 10일자)

지난 며칠 사이 전라북도 내 지역 일간지들에 실린 기사 제목들이다. 현재 전북은 전국 17개 시, 도 중 '유일하게'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국가보육과정) 예산 편성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최근 모종의 상황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현재 전북에서는 예산 부족과 법령 준수, 교육자치 훼손 우려 등을 표방하며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고' 있는 전북교육청과, '보육대란'을 우려하며 즉각적인 보육료 대책을 촉구하는 전라북도, 전라북도의회, 전라북도어린이집연합회가 팽팽히 맞서 있다. 지역 언론은 전반적으로 후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전북 전체가 전북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에는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이 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에게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전주 덕진을 지역구로 하는 김윤덕 의원은 "오늘 이 순간부터는 어린이집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다. 다른 지역은 다 하는데 전북만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하면서 "김 교육감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서 김 교육감의 퇴진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어린이집 보육료는 '보육기관'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 시·도지사 책임이다. 교육청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기관'인 유치원을 책임진다. 현재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근거는 법률이 아니라 하위법인 시행령(대통령명령)이다. '시행령 하극상'을 외치며 법치를 강조하는 김 교육감에게 법치를 강조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위법'과 '탈법'을 종용하는 듯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교육청, 누리과정 편성 거부? 진실은 뭘까


지난 10일 열린 제322회 전북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펼쳐진 장면도 이와 비슷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이날 본회의에 출석해 전북교육청이 어린이집 보육료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정 도의원(군산 3)도 교육행정 질문에서 "전북도가 도교육청에 전출해야 할 지방교육세 미수금 약 378억 원 중 184억 원을 추경예산안에 편성해 전출했는데도 도교육청 추경예산안 세입에는 편성되지 않는 것은 전국적인 망신이자 부실"이라며 "예산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 부분을 편성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법률상 어린이집 관할 주체인데도 도지사는 누리과정 예산 책임을 떠안지 않겠다고 한다. 도의원은 그런 도지사를 나무라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과 무관한 교육감을 질타한다. 언론 역시 김 교육감이 (도에서) 주는 돈을 마다하면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한다고 비판한다. 글머리의 기사들이 그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날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종합해 보면 송 지사와 최 의원이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된 상황을 왜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관계부터 틀린 것이 있다. 전북교육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근 전북도가 편성했다는 184억 원은 학교용지부담금이 아니라 전북도가 전북교육청에 전달해야 하는 법정전입금(지방교육세전입금 및 시·도세전입금)이다.

최 의원은 김 교육감이 전북도가 편성·전출한 184억 원을 "공문이 안 와서 추경 편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역시 실제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보도자료를 근거로 실제 상황을 재구해 보자.

전북교육청이 전북도의회에 제출할 예산서를 확정해 인쇄에 들어간 날은 5월 28일이었다. 전날인 27일, 전북도는 해당 과에 184억 원을 추가로 보내겠다고 구두로 알려 왔다. 예산서를 수정해 제출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화 통화 하나로 예산계획서를 수정해 짜는 일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전북교육청은 전북도에 관련 공문을 요청했다. 공문은 6월 10일에서야 왔다. 전북교육청이 추경 편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팩트'에 가까워 보인다.

전북교육청이 뒤늦게라도 184억 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184억 원과 같이 세수 대비 초과 전입되는 추경 예산은 2년 후에 그 금액만큼 교부금이 삭감되는 근거가 된다고 한다. 단순한 여유 예산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전북도에서 전북교육청으로 들어오는 전입금만큼 정부 교부금이 줄어들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가장 많은 부분은 학교용지부담금에 관한 것이다. 학교용지부담금은 학교를 신설하는 데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사업자로부터 거둬들이는 일종의 세금성 경비다. 지자체가 걷어 교육청에 전출하도록 되어 있는, 용처가 분명한 돈이다. 전북도가 전북교육청에 줘야 하는데 아직 전출하지 않은 학교용지부담금이 384억 원이다. 최근 기사에서 언급된 바로 그 돈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파문 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최근 기사들에 언급된 384억 원은 학교용지부담금으로 전북도가 교육청에 마땅히 줘야 하는 돈이다. 문제의 184억 원은 학교용지부담금 중 일부가 아니라 따로 교육청에 줘야 하는 법정전입금이다. 교육청이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배부받는 교부금의 일부로, '마땅히' 교육청 예산이 됐어야 하는 돈이라는 얘기다.

송 지사가 이끄는 전북도의 논리는 결국 교육청이,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지역 정치인과 언론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전북교육청이 전북도가 애써 마련한 돈을 거부한다는 식으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간 전북도의회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펼쳤는지 의문이다. 어린이집 관할 주체인 전북도 역시 뒷짐만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논란이 거세지면서 여기저기서 비판이 일자 마지못해 뛰어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정작 하는 일은 권한 밖에 있는 김 교육감 몰아세우기밖에 없는 듯하다.

단언컨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파문의 책임은 박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있다. 작년 12월 12일 김 교육감, 전북도의회의장, 도의회교육위원장 등이 전북도의회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시·도교육청 책임이 아니라 정부 책임이며, 향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완전한 지원을 받기 위하여 대정부 관계에서 공동 대응한다는 등의 내용을 합의한 배경이다.

이제부터라도 전북 교육과 보육의 모든 책임 당사자들이 대정부 공동 대응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전북뿐만의 얘기가 아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는 지방교육재정 붕괴나 교육자치 훼손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애먼 사람들 싸움 붙여 놓고 강 건넌 불구경하듯 하는 박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맞서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모두 함께 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알립니다
위 기사에 지난 10일 열린 제322회 전북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최인정 도의원(군산 3, 새정치민주연합)이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상대로 한 교육행정 질의 중 "전북도가 도교육청에 전출해야 할 학교용지부담금 약 378억 원 중 184억 원"이라는 발언 내용이 있습니다. 지역 일간지 보도(<전북일보> 6월 11일자 "전북교육청, 누리예산 편성 거부")를 인용한 내용이었으나, 이날 본회의 영상 확인 결과 최 의원은 '184억 원'을 "학교용지부담금"이 아니라 "지방교육세 미수금"이라고 발언했음을 밝힙니다. - 기자 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 #어린이집 누리과정 #학교용지부담금 #법정전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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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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