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궁해지기 전에 뿌리를 돌아보라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37] 本

등록 2015.06.15 15:02수정 2015.06.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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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본(本)은 금문에서 보듯, 나무 밑동 부분에 세 개의 점을 찍어 그곳이 뿌리임을 나타낸다. ⓒ 漢典


나무는 인간의 오랜 친구다. 인간보다 크게 자라는 나무는 고층 빌딩이 가득 들어찬 현대보다 고대에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나무 목(木)을 부수로 하는 한자가 1000자가 넘는 것만 봐도 나무가 고대인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사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학교(校), 다리(橋) 등의 건축물은 물론 총이나 창(槍), 기계(機械) 등도 모두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나무에 상징적인 부호를 더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게 사람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근본 본(本, běn)은 금문에서 보듯, 나무 밑동 부분에 세 개의 점을 찍어 그곳이 뿌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 가지 윗부분에 점을 찍어 끝을 나타내는 끝 말(末)은 모두 부호를 통해 의미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사자(指事字)들이다. 빛을 향해 위로 뻗는 나무줄기 아래에는 그 줄기를 움켜잡아 주는 뿌리가 대칭으로 함께 자라고 있다.

흔히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실천이 쉽지가 않다. 땅 위로 솟아 햇살에 멱 감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는 쉽게 눈이 가지만, 땅 속으로 드리운, 그 어둠과 자갈을 뚫고 깊숙이 뻗은 뿌리까지 생각의 눈으로 봐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모두 그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길 뿐, 그 아래 뿌리가 묵묵히 수행했을 노고와 역할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은 보이지 않는 뿌리를 들추는 일이라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고전은 한결같이 뿌리와 근본의 의미를 강조한다. <논어>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고 하고, <맹자>는 "무릇 그 근본을 돌아봐야 한다(盖亦反其本矣)"고 한다. <용비어천가>도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구절에서 예쁜 꽃과 많은 열매를 가져오는 것은 뿌리 깊은 근본이라고 알려주니 말이다.

"사람이 궁해지면 근본으로 돌아간다. 힘든 고통이 극에 이르면 하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몸이 아프고 참담한 지경에 이르면 부모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人窮則反本,故勞苦倦極,未嘗不呼天也;疾痛慘憺,未嘗不呼父母也)" 사마천의 <사기> '굴원가생(屈原賈生)열전'에 나오는 얘기다. 하늘과 부모를 인간의 시초이자 뿌리로 보고 있는데, 사람이 궁해지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참 아프게 들린다.


무슨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대책 운운하다가, 막상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뿌리가 없는 나무(無本之木)는 금방 생기를 잃고 말라가기 마련이다. 나무 끝에 맺히는 꽃과 열매를 쫓는 데만 정신을 팔지 말고, 정작 힘든 순간이 오기 전에 고개 숙여 자신의 발 밑동 뿌리를 한번 돌아볼 일이다. 위로 뻗은 가지를 지탱할 뿌리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지 말이다.   
#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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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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