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병원의 '메르스 민낯'
이재용 부회장 리더십 시험대

[取중眞담] '최고'라는 오만과 무능한 정부, 또다른 '삼성공화국' 논란

등록 2015.06.15 19:43수정 2015.06.15 23:19
26
원고료로 응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a

삼성서울병원 정두련 감염내과 과장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책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재까지 메르스에 노출돼 병원에서 관리하는 인원은 약 2천500명"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설마 했는데..."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15일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이다. 이어 "지금은 사태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의 주요 관심사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아니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과 향후 진행상황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대책에 국민들이 불안해한다'고 했지만, 그의 답은 명쾌했다. "일부 정보공유 등에서 오해가 있다고 하는데, 병원 쪽에서 잘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초일류'라는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민낯'은 그대로 드러났다. 메르스 환자 관리는 부실 그 자체였다. 정부 역시 철저히 삼성서울병원의 실력(?)을 믿었던지, 삼성 감싸기에 급급했다. 메르스 사태 초기 평택성모병원 등 발병 원인을 제공했던 곳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도 삼성서울병원은 예외였다. 정부의 감싸기에도 그들은 '국가가 뚫렸다'라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와 국민은 말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뒤늦게 삼성은 고개를 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한 나라 국민의 생명이 걸린 메르스 사태에서조차 삼성은 예외였고 법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공화국이 온 나라를 메르스로 뒤덮이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짓말과 오만 그리고 무능의 합작품...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다

a

15일 오후 삼성서울병원에서 남형기 안전환경정책국장이 '방역관리 점검·조사단' 회의에 앞서 발열검사를 받고 있다. 정부는 이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의 2차 진원지로 지목을 받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방역관리 점검·조사단'을 구성, 삼성서울병원에 급파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메르스 초기 방역에 실패한 정부와 의료계는 삼성서울병원을 주목했다. 이달 초 메르스 2차 확산의 핵심이 삼성서울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메르스 확산방지 강화대책'을 내놨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환자가 특정 병원 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면서 "감염 발생 병원에 대해선 병원 또는 병동 자체를 격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시까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전 건양대병원 등 6개 병원 가운데 5곳이 사실상 격리됐다. 하지만 단 한 곳은 예외였다. 바로 삼성서울병원이었다. 의료계 일부에선 '왜 삼성만 빼나'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됐고, 2차 확산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와 삼성에선 "잘 관리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문 장관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아예 삼성서울병원을 안심하고 이용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국민들은 문 장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메르스 슈퍼 전파자로 지난달 27일 응급실에 온 '14번' 환자는 사흘 동안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삼성 쪽에선 정부의 정보공유가 늦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일주일 전 이 병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를 찾아낸 곳이었다. 그럼에도 추가 환자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뒤늦게 정부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부랴부랴 응급실에 온 환자, 가족, 의료진 등 893명을 격리·관찰대상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2차 유행의 고비가 되던 지난 12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60명 가운데 25명이 이 대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의사뿐 아니라 환자를 이송하는 요원조차도 격리대상에 빠진 채 수일 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봤다. 이송 요원이 그렇게 일한 9일동안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외래환자만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메르스 사태... 이재용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a

15일 부분적인 병원 폐쇄조치가 내려진 삼성서울병원에서 병원 관계자가 의자를 청소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삼성서울병원의 전염병을 다루는 태도는 정부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서울시의 정보공유 요구에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제대로 된 자료를 내지도 않았다. 정부도 '삼성이니까'라는 허상만을 믿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관계자는 "삼성 쪽에서 메르스 의심환자 등을 충분히 파악해 관리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증언은 허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사정이 이러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놓고 "삼성서울병원이 국가 방역망에서 사실상 열외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정도가 아닌가.

뒤늦게 삼성병원의 실체를 깨달은 곳은 또 있다. 삼성그룹이다. 특히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으로 그룹 지배구조가 개편되는 시점이다.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이 부회장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미 굵직한 그룹내 기업 인수와 합병과 대외활동에서 사실상 이 부회장은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 전직 고위임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다면 삼성서울병원이 저렇게 망가지게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방역 대책을 선제적이고, 즉각적으로 진행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임원은 "병원은 워낙 전문적이고 특수한 곳이라 그냥 믿었던 것 같다"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삼성 내부에선 메르스 사태가 끝난 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진단과 인사 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지금이라도 전면 폐쇄하라

a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확산 막기 위해 출입통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최대 진원지로 떠오른 삼성서울병원이 신규환자를 받지 않는 부분 폐쇄 조치를 내린 가운데, 15일 오전 강남구 병원 본관 앞에서 직원이 내원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유성호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뒤늦게 삼성서울병원에 방역관리 조사단을 파견했다. 병원의 방역대책을 직접 점검하고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후약방문이다. 24일까지 사실상 병원은 잠정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국민들은 초일류 병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전염병 대응과 정부의 무능을 믿지 않고 있다. 국내 대형병원에서 20년 넘게 교수직을 해 온 A씨는 "삼성과 정부의 실패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신뢰를 뿌리째 뒤흔들어놨다"고 토로했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환자와 의사 사이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병원 전체를 폐쇄하는 게 낫다. 메르스 치료에만 전념해도 된다. 정부가 명령을 내리지 못하면, 삼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삼성의 마지막 선택이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기도 하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메르스 #삼성서울병원 #이재용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여사 접견 대기자들, 명품백 들고 서 있었다"
  2. 2 유시춘 탈탈 턴 고양지청의 경악할 특활비 오남용 실체
  3. 3 제대로 수사하면 대통령직 위험... 채 상병 사건 10가지 의문
  4. 4 미국 보고서에 담긴 한국... 이 중요한 내용 왜 외면했나
  5. 5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