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이상현
23일 흥남부두를 출발한 배는 피란민을 젓가락처럼 빼곡하게 태우고 25일 아침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13시간40분의 항해였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 공간에서 다섯명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1만4000명의 목숨을 건진 6.25 전쟁이 낳은 '인간 승리 대탈출'이었다. 혹자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ship of miracle'이라부른다. 독일 나치정권 당시 많은 유대인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를 생각나게 한다.
후일 레너드 라루 선장은 " 하나님의 손길이 나의 작은 배의 조타기를 잡아 주셨다"라고 고백했다.
한국전쟁은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을 남기고 휴전에 들어갔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잠시 소강상태일뿐.
전쟁를 겪지 않은 세대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지 못한다. 어떤 배경으로 전쟁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국민의 애국심과 의식이 바로 서야 전쟁이 일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6.25 발발 65주년을 즈음하여 다시 한번 한국전쟁에 대해 고민하고 지난 역사를 거울 삼아 다시는 이땅을 피로 얼룩지게 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지난 18일 천안 보훈회관을 찾았다. 6.25참전유공자회 천안시지회 이강은 지회장(84)은 1950.7.16일 19세의 나이로 자원입대를 했다. 전시 중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소총 쏘는 법을 배웠고, 소대, 중대, 대대를 편성해서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귓전을 때리는 포탄소리와 빗발치는 총알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전했다.
포탄과 소총은 한 인간을 하염없이 약한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선 그들을 강하게 한것은 무엇이었을까? 이강은 지회장은 "애국심과 전우애"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린 나이였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 뿐이었다. 두려움이 있었으면 절대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6.25 전쟁 중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지만 그중에 '안강 기계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강은 지회장은 안강 기계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안강전투는 전쟁의 초기인 1950년 8월9일부터 동년 8월 20일 까지의 기간에 이루어진다.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고 있을 때 국군 제 1군단(수도사단, 제3사단)이 기계, 안강, 영덕, 포항 일대에서 유격대(66부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제5,제12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전투이다. 안강전투가 왜 중요한가?
이곳의 방어선이 뚫린다면 평야지대인 이곳을 북한국이 바로 내달려 충주, 울산, 밀양, 부산까지 도달 할 수 있게 되어 대구 지역의 최후 방어선이 열려 버리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였기 때문이다.
이강은 지회장은 이 전투중 보급이 되지 않아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전투를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제대로 먹질 못하니 피똥을 싸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던지 천막 하나 없이 철모와 M1소총 하나만 가지고 그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목숨 걸고 온 몸을 던졌다. 전쟁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입대한 지 4년 6개월 만에 제대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