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은 살아있다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

등록 2015.06.16 20:46수정 2015.06.1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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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미술관 ⓒ 정선애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우리나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 이중섭의 작품에 새겨있는 글이다.


평안남도 사람으로 한국전쟁 중 그의 가족은 서귀포, 지금은 이중섭거리라 명명된 한 귀퉁이 초가에서 1년 동안 셋방살이를 했다. 담뱃갑을 싼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4인 가족의 서귀포 생활은 이중섭에게는 희대의 행복과 평화를 안겨준 시간으로 기록된다.

"역사상에 나타난 애정의 전부를 합치더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오."

그가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그가 그리던 제주도는 가난에 가족과 헤어지고 서귀포를 떠난 후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라는 작품에도 절절히 표현이 될 만큼 사랑과 추억이 애절하다. 힘겨운 여생에도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 부은 그. 육체적 의지를 넘어선 정신적 세계의 폭발하는 역동성을 보여주는 그의 그림 '황소' 만큼 그를 대변할 수 있는 피사체가 있을까.

정신은 그림에 남아 있고, 숨결은 그가 다녀간 거리에 남아있다. 당시로서는 화가 및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밥 빌어먹고 살기 힘든 직업이라 무시와 천대의 비아냥 속에서 무너지 듯 비틀거렸을 터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문화라는 정신적 공감대 위에 몰려드는 사람들, 지적자극과 지성자로서의 표현적 발로의 욕구, 작지만 자신만의 기술에 땀 한 방울 새김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예술 소유자들, 그들이 이중섭을 기리며 그 위에 터를 잡았다.

이중섭 만나기


이중섭 공원 내 '이중섭' 동상 ⓒ 정선애


'이중섭 거리'에 들어서면 먼저 이중섭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거리의 이름조차 '소'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이니 이 곳 서귀포를 찾는 사람들에겐 꼭 다녀가야 할 필수 코스다. 이중섭 박물관은 서양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2002년 11월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 거리 안에 설립되었고, 서귀포시에서는 이전 1996년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이자 천재화가인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 당시 거주했던 초가 일대를 이중섭 거리로 명명했다.

이어 1997년 4월 그가 살던 집과 부속건물을 복원해 이중섭 거주지와 그의 호인 대향(大鄕)을 따서 대향전시실을 꾸미는 한편, 매년 10월 말 이중섭의 사망주기에 맞추어 이중섭 예술제를 개최해 왔다. 그러던 중 이중섭 거리를 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화관광의 거리로 활성화하기 위해 서귀포시는 서귀포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공원을 설립하기 이른다.

이중섭이 1년간 살았던 초가 ⓒ 정선애


이중섭 미술관 바로위에는 이중섭이 세 들어 살던 초가가 있다.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을 만큼 가난했던 그는, 4인 가족이 발은 뻗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4평 남짓 작은 골방에 묵으며 유명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현재 이중섭 초가로 알려진 이곳은 실제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초가를 봐왔지만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이라도 이중섭 화백이 번뜩이는 영감에 집 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모습을 눈으로 꿈꾸게 한다. 초가 사진을 찍기 위해 마당에 들어가 집 앞을 지나다가 방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는, 알고 들어간 사람들조차 여럿 깜짝 놀라게 되는 이유도 무릇 그 때문이 아닐까.

이중섭 거리 곳곳에 이색적인 까페와 공방들 ⓒ 정선애


서귀포가 심혈을 기울인 문화예술의 거리답게 이중섭 거리의 인상은 특별하다. 곳곳에 이중섭 그림을 카피한 조각과 그림들이 즐비하고, 도로조차 예술인들이 위트 있게 그려낸 그림들로 작품이 되었다. 가는 길 곳곳 눈길을  차지하는 수제공방들과 갤러리들은 특색있는 품목으로 지나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한 컷을 남겨준다. 또한 이중섭 거리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아트마켓이 선다.

판매부스의 외관도 나무박스 형태로 만들어 판매셀러들의 휴식공간과 진열공간도 넉넉히 보장하고 더불어 여느 프리마켓들과 다른 안돈적이고 깔끔한 인상을 내어 보인다. 판매 품목들은 판매를 신청하는 셀러에 따라 달라지며 직접 만든 방향제부터 날 좋은날 여러 색의 도료로 염색해낸 스카프, 옷, 모자들,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눈이 번뜩이게 만들어진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 서귀포 자생 농작물 등은 웬만하면 만날 수 있는 인기품목이다. 

건축까페'유토피아' ⓒ 정선애


나무 위 오두막은 가장 소중한 보물을 숨겨두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기도 하거니와 날렵하고 가벼운 어린애들이 아닌 이상 무겁고 이미 두려움에 지배당한 어른들은 쉽게 오르기도 어려운 장소다. 가벼운 구름같은 순수함만을 지닌, 아픔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만 허락됐던 나무위 오두막. 어릴 적 꿈을 안고 뚝딱뚝딱 만들어낸 어떤 어른의 유토피아를 서귀포 이중섭거리에서 체험 할 수 있다.

일명 건축카페, 유토피아는 이중섭 거리 아트마켓이 열리는 곳 중간 지점에 살짝 낮은 지대에 위치했다. 그래서 입구로 들어가기 전 카페를 바라보면 건물 내부가 훤히 보이고 지붕이며, 옥상 위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조망된다. 있던 것에 그대로 색을 입히고 나무들을 하나씩 덧대 제주가옥 위에 오두막을 입힌 이곳이 이중섭 거리의 핫플레이스, 유토피아다.
들어가는 길은 대나무가 양쪽을 받쳐서며 사람을 안으로 인도하고, 친절한 나무테크 양쪽으로 꾸민 듯 만듯한 풀과 자갈이 자박하다.

곳곳을 예리하게 관찰해야 사람이 살았던 집이었음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겉으로는 전혀 그런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나무와 나무사이의 건축이 돋보인다. 장난스레 뚝딱하고 못으로 박아 놓은 것 같은 나무기둥들, 울타리, 직접 만든 우스꽝스러운 테이블과 책 속 교실에서나 볼 법한 알록달록한 의자들은  커피와  휴식을 담아냈다.

이곳은 건축가 3명이 팀을 구성해 만들어낸 곳으로 일년이 넘게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공사라고 하기에는 이미 건물조성은 끝났지만 무언가를 만들려는 장인들의 간질한 손놀음이 건축카페를 계속해서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천천히 만들어  자신들의 공간에 보물을 하나씩 입히는 그들의 느긋함은 자유인으로 스스로를 대변하는 주식회사 유토피아의 대표 이선영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서글서글하고 여유로운 미소가 입가에서 눈가까지 이어져 있는 그녀는 처음부터 그저 그런 커피전문점을 벗어나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이 곳을 설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말이 설계인 것이지 실상은 충동적으로 머리에 그림이 쑥 하고 투영되면 바로 망치질에 들어가는 막무가내 직진을 추구한다고... 실제 '톰소여의 모험'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게 되었다는 이 건물은 그녀의 손에서  콘크리트의 차가운 벽면이 모두 지워진 채  꿈과 동심으로  발린 오두막 세계로 재탄생했다. 울타리와 나무 난간 및, 2층 베란다 형식의 옥상마다 형형색색으로 힘을 주고, 한 사람이나 겨우 오르내릴 것 같은 나무 계단은 오르는 재미와 내려오는 스릴을 안겨준다.

까페 내부 ⓒ 정선애


까페 내부 전시실 ⓒ 정선애


한 쪽은 전시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을 중점으로 보여주기 위한 키페이기도 하지만 이중섭거리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예술인들도 많이 들리는 까닭이다. 뒤로 난 큰 창에서 막 뛰어 들어 온 듯한 인상을 주는 전시작품 <검은 말>은 몸체에 구멍들이 뚫려 있어 안에서 돌아가는 전구에서 빛이 새어 나오며 여러 그림과 글자들이 말의 온몸을 타고 돈다.

이곳은 예술가들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한다. "전시를 하고 싶다,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말에 무조건 오케이를 날린다. 함께 놀고 공감하고 싶은 건축가들의 무한애정 파라다이스다.
보통 공연 시에는 옥상에서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수는 제한한다. 이선영 대표는 선선한 6월부터 호기로운 여름까지 모깃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기타를 치는 날들이 많이 예정되어 있다는 귀띔도 아끼지 않는다.

이중섭 거리 전경 ⓒ 정선애


천재화가 이중섭이 만들어낸 거리, 독특한 외관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공방과 갤러리들, 오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건네고 먼저 다가가는 아트마켓 사람들, 산만한 듯 아닌 듯 아기자기한, 마치 어린아이가 골똘거리며 만들어낸 것 같은 오두막집, 추억의 한 장을 땅바닥에서 가로등에서 사람들에게서 담아가는 이들.

서귀포 안 '이중섭 거리'는 자신만의 공간을 양분하며 서로 공생하는 문화와 사람이 녹아있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 신문 제주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제주생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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