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의 정치화', 인간의 면역력을 살균하다

<세계문화의 겉과 속 ⑦>

등록 2015.06.24 20:25수정 2015.06.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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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높음을 인정하다. ⓒ KBS 취재파일 캡쳐 화면


TV 광고를 볼 때 최근 눈에 띄게 많이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살균제 광고입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사스와 신종플루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살균제 광고는 급증했고 관련 제품도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마트엔 살균 관련 제품이 아예 한쪽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로 인해 살균, 소독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살균 티슈, 손 세정제, 살균 스프레이​, 가습기 살균제, 각종 클리닝류 등은 회사마다 차별화를 내세우며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2011년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시장이 20억 원인 것을 보아서는 전체 살균 관련 제품의 시장 규모는 수백억 대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목숨을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사망자는 140여 명,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살균제 성분으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만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3년째 소송 중이며 아직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살균, 소독의 대상인 세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세균의 발견으로 근현대 인류의 역사는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 간략하게 짚어가고자 합니다.

세균, 나쁘지만은 않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까치 출판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통 성인의 피부엔 1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산다. ▲내장과 콧구멍, 머리카락과 눈썹, 눈의 표면에서 수영하는 박테리아, 이에도 엄청 많이 있다. ▲내장과 소화기관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는 400종 100조 마리가 넘는다. ▲사람의 몸은 1경(10의 16승)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는 10경(10의 17승) 마리나 된다. ▲사람은 박테리아의 일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박테리아의 수는 둘째 치더라도 그중 절반은 우리가 모르는 세균이라 합니다.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거죠. 그리고 이 세균 중에는 병원균도 있지만 인체에 유익한 균이 더 많다고 합니다.


단순히 장내 소화를 돕는 균만 아니라 병원균을 물리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이는가 하면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의 생성을 억제하고 소화관의 벽을 두껍게 해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볼 때, 세균은 꼭 나쁜 게 아닙니다.

세균은 '제3의 장기'​

​'동물 실험에서 세균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자란 동물은 항상 비실거리며 허약하다. 장의 융모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고 맹장이 기형적으로 커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다.'(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그래서 '세균은 제3의 장기'라는 말도 생겨났나 봅니다.

세균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우리 몸 속에는 더 많은 세균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균들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단순히 '세균은 해롭다'라는 일반적 사실에 근거해 면역력을 증가시킨다든지 몸에 유해한 세균을 없앤다는 항균, 살균 제품을 많이 사용하면 우리 몸의 유익한 세균까지 박멸시키게 됩니다. 결국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살균제품이 우리 몸의 자가 치유력을 살균시켜 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인류가 세균과 질병의 연관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채 안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의 <프랑스와 파스퇴르 박멸법>은 청결, 관리, 권력의 삼각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프러시아의 코흐(Robert Koch)는 질병이 세균에서 유래한다는 이론을 정립했는데, 특히 파스퇴르는 세균을 박멸할 수 있는 저온 살균법을 내놓아 세균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높였다(84쪽).

'세균과의 전쟁'은 계급간 분리와 정치화를 가속

​미생물이 부패와 발효,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걸 밝혀낸 파스퇴르의 위대한 업적은 과학과 산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파스퇴르에 의해 ​세균의 존재와 위력을 알게 된 프랑스 국민들은 세균 공포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외출을 꺼리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 청결 노이로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맙니다. 국가는 '세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더러운 세균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찾아냅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이었습니다. 19세기, 급속한 산업화로 노동자계급이 대거 도시로 이동하게 되며 계급 간의 경계선이 불명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르주아 계급은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기회가 온 것입니다. 주로 빈민가에 살던 노동자들은 의식주의 모든 것이 청결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를 빌미로 정부는 합법적으로 그들의 생활터전을 박탈하고 신흥 부르주아지가 개발하고 있던 파리에서 내쫓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조경진<맛과 청결의 정치>).

여기서 강준만 교수는 영국의 인류학자 매리 더글러스(Mary Douglas)의 말을 인용합니다.

"어느 한 사회의 외부 경계선이 위협받거나 혹은 그 문화의 도덕성 내부에서 내적 모순으로 위험이 발생할 때 더러움에 대한 불안감이 발생한다."(85쪽)

​더러움이란 위생관념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을 굳게 하고 외부 침입을 저지하는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유럽의 역사에서 주변 민족을 이민족이라 칭하며 '더럽고 야만적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이 보기에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온 민족들은 더럽고 위생관념이 없는 야만인들입니다.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저주의 대상도 됩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중세 초반 스코틀랜드의 켈트족이나 19세기 나치의 유대인들 역시 '더러운 민족'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기업은 세균에 대한 '공포 유발 광고'로 대성공을

이런 '청결의 정치화'는 청결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보적인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의 히피 문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청결을 부르주아나 항문 강박증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을 혁명적이라고 보았습니다. 히피가 증오했던 자본주의의 탐욕은 청결에 대한 강박증을 경제에 도입시키는데 성공을 합니다. 바로 세균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광고입니다. 우리들이 지금도 TV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입 냄새 때문에 면사포는 못 쓰면서 들러리 노릇만 하다가 어느새 비참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가씨 에드나"에서부터 "엄마의 입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채 엄마의 품을 벗어나려는 꼬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들을 등장시켜 미국인으로 하여금 '리스테린'이란 구취제를 사게끔 했고 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86쪽)

이런 광고는 별스럽지 않던 것들을 문제화시켰고, 더 나아가 공포를 유발하는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취(입 냄새)'란 단어도 수십 년 전에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화장실 냄새 역시 자연적인 현상이지 약을 먹고 없애야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움직이면 땀이 나고 먼지나 이물질이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먹는 음식에 따라 몸에서 각기 다른 냄새가 납니다.

무균 강박증과 냄새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야

숲 속에서 나무와 풀을 만지고 개울가를 뛰어다니는 것은 아이들에게 자연 치유력을 선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운동장에서 모래를 만지작거리거나 나무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풀밭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나무랄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깨끗이 씻도록 가르치면 될 일입니다.

숲에서 노는 아이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세균 중에 해로운 세균보다 이로운 세균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인간은 세균과 공존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질병에 대한 자가 면역체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차별적인 살균제품은 인간과 자연의 생태의 무지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 김승한


파스퇴르가 세균의 역할을 발견한 이후 의학계는 각종 질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발효의 원리를 알아내 음식문화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세계가 더 청결한 곳이 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청결에 대한 집착은 세균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유발시켰고, 이데올로기와 결합되면서 순수한 의미의 위생관념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도시화, 산업화로 우리는 과거보다 심각한 공기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또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신 물질로 된 상품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살균제를 사용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생태계를 간과한 채 만들어진 살균제가 범람하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아토피 질환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요? 위생과 청결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철저히 자본주의화된 기업의 살균제품으로 우리 몸이 보유한 자가 면역 체계마저 살균시켜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세계 문화의 겉과 속 - 모든 문화에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2


#자가 면역체계 #살균제 #소독제 #가습기 #파스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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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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