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영향력 감소해도 급속 소멸하진 않을 것"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47] 이덕우 CBS PD

등록 2015.06.26 14:58수정 2015.06.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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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에서 22년간 라디오 PD로 활동해온 이덕우 PD가 청소년들의 직업 선택을 돕기 위해 책을 냈다. 자신이 라디오 PD로써 겪은 경험을 엮어 <주파수에 꿈을 담는 이야기꾼 라디오피디>(아래 <라디오 피디>)를 지난달 출간했다.

<라디오 피디>는 라디오에 대한 역사 등을 소개해 청소년은 물론 현장에 있는 라디오 PD에게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22일, 목동 CBS 사옥에서 이덕우 PD를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청소년을 위해 쓴 책, 청소년만의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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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에 꿈을 담는 이야기꾼 라디오 피디> 표지 ⓒ 들녁

- 라디오 이야기인 <주파수에 꿈을 담는 이야기꾼 라디오 피디>를 출간하셨어요. 읽기 쉽게 되어 있던데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쉽고 친절하게 쓰여 있어서 읽기 편했다고 많은 분이 말씀하십니다. 실무적으로도 유용한 내용이 많아서 후배 PD들도 읽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특히 라디오 역사에 있어서 '화성 침공' 등(화성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다는 내용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송,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제 상황인 줄 알고 혼란을 겪었다)은 라디오 PD들도 잘 몰랐던 내용이거든요. 그런 부분이 좋았다고 해요. 그렇지만 판매가 많이 될 책은 아니에요."

- 라디오 역사가 흥미롭던데.
"스마트 시대여서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고 있잖아요. 라디오 미래만 얘기하니까 라디오가 너무 왜소해 보였어요. 미래가 어둡게 보일 것 같아서 '오디오를 전달하는 것이 라디오다'는 걸 설명하다보니 역사부분을 공부하게 되었죠."

- 라디오 역사를 공부하며 라디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아요.
"라디오가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책을 쓰며 가능성이 많다고 느꼈어요. 어떤 면에서냐면, 앞으로 시대가 고령화잖아요. 노인들에겐 라디오가 가장 친숙한 매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눈으로 스마트폰을 보는 게 피곤하거든요. 노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음성으로 인식하고 듣죠. 라디오는 쌍방향이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잖아요. 라디오는 올드 미디어로써 나이 드신 분들하고 친숙해질 수 있죠.

또 하나는 요즘 핸드프리라는 말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아이프리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차를 운전하며 손으로 라디오를 작동하는 건 위험하잖아요. 그러나 앞으로는 음성을 통해서 자동차의 모든 기능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게 오디오 콘텐츠인데 그건 라디오의 기본적인 발상이잖아요. 가능성은 많습니다."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 책은 들녘출판사의 청소년 미래탐색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성우 되기>, <다큐멘터리 감독되기>, <웹 소설가 되기> 등 여덟 개의 직업에 대한 책이 이미 나왔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직업에 대한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지난해 가을, 출판사에서 라디오 PD라는 직업에 대해서 써 달라고 저에게 의뢰를 했어요.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나서 망설였는데 피디 생활 22년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쓰게 됐습니다."

- 그럼 청소년 대상으로 쓰신 건가요?
"네. 청소년들은 자기가 어떤 적성을 가졌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부모님들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라디오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구상하고 썼어요. 그리고 라디오 방송에서 일하는 실무PD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넣었어요. 시작은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썼지만, 읽다보면 청소년들을 위한 책만은 아닌 것 같아요."

- 책을 읽으면 마치 옆에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제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하는 투로 말하는 편입니다. 학생들을 앞에 두고 설명하는 말투로 썼어요. 청소년 수준에서 어려울 것 같은 용어는 친절하게 도움말을 많이 달았습니다. 특별히 전문적인 서적이 아니잖아요. 쉽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중간 중간 단어에 각주가 아니라 말풍선을 단 게 인상적입니다.
"그건 출판사 디자인팀에서 제안을 한 거예요. 청소년들 정서에 맞춰서 재미있게 디자인을 한 거죠. 라디오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교양이나 상식도 쌓으면 좋잖아요."

소통과 공감이 라디오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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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PD ⓒ 이영광


- 책에도 있지만, 텔레비전이 나올 때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어요. 실제 예전만큼 라디오가 인기를 끌지는 못하죠. 그러나 여전히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존재하잖아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라디오는 제가 입사할 때도 위기라고 말했어요. 항상 위기였고, TV가 등장하면서부터는 계속 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흑기사처럼 라디오를 도와주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의 매력은 첫 번째, 단순하다는 거죠. 적은 인력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PD가 가진 섬세한 느낌과 의도를 정확하게 실을 수 있는 매체죠. 보통 라디오는 PD, 작가, DJ가 방송을 하잖아요. 작가가 없는 경우나 PD가 DJ를 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좀 더 화기애애하게 자기 의견과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매체예요. 변신도 빠른 매체죠. 어디든 붙을 수 있잖아요. 공감도 또 다른 매력 포인트죠. 생방송으로 소통도 할 수 있고요.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듣고자 한다면 <비트>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 좋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라디오는 DJ가 있잖아요. 그래서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공감과 소통, 이것이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에서 아이들은 TV 시청을 오래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내용이 있던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제가 교육이나 심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TV가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하다보니까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정보를 시청각을 동원해 전달합니다. 아이들은 그걸 따라갈 생각을 못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니까 머릿속이 멍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건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격이에요.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의 두뇌발달에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예요."

- PD도 TV와 라디오로 나눌 수 있죠. 이 PD께서는 22년 동안 라디오 PD를 하고 계시는데, 라디오 PD의 매력은 뭐라고 보세요?
"라디오는 매일 방송하잖아요. 매일 청취자와 만나는 게 매력입니다. 또 매일 제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도 매력인 것 같아요. TV는 장기적인 계획을 잡고 프로그램을 만들죠. 끝나면 몇 년을 쉬기도 하고, 스태프가 많다보니 번잡하단 느낌도 들어요. 물론 그게 TV만의 매력일 수도 있죠. 라디오는 매일 함께 얘기하는 가족 같은 매체기 때문에 그런 쪽에 적성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이 있습니다."

- 보람은 뭔가요?
"요즘 제가 <오미희의 행복한 동행>을 하고 있어요. 오후 8~10시까지 방송을 하는데,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중장년층이 직장문제, 가정 내의 부모와 자녀와의 문제 등을 겪습니다.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며느리, 직장에서 명예 퇴직한 가장, 자영업을 하는데 메르스 때문에 너무 손님이 없다든지... 이런 살아있는 목소리들을 항상 들을 수 있어요. 그 목소리를 듣고 DJ가 위로해주는 게 보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하잖아요. 라디오는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 같습니다."

-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 PD를 하는 것과 인터넷이 생긴 후는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다르죠. 예전엔 실시간 참여를 못했어요. 편지를 보내도 며칠이 걸리고, 문자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1990년대에는 엽서로 방송을 했어요. 그래서 MBC에서는 예쁜 엽서전도 했지요. 그땐 정성이 많이 들어갔어요. 편지에는 인간적인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니까 훨씬 소통이 잘 되는 면은 있지만 녹음방송을 할 때는 표가 나니까 바로 글이 올라와요. 때문에 비밀이 없어져서 제작하기가 조심스러워졌어요. 그리고 청취자들이 DJ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바로 반응을 하고, DJ가 말실수하면 즉각적으로 글을 올려주거든요."

후배들이 더 공부하고, 사랑하고,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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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PD ⓒ 이영광


- CBS 음악FM이 호평을 받고 있어요.
"청취율이 많이 올라갔어요. 라디오 전체에서 3위 정도 하거든요. 저희 CBS 음악FM은 레스 토크 모어 뮤직(less talk, more music)이라고 해서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토크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는 방송이잖아요. 게스트도 없지만 청취자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승부를 거니까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KBS나 MBC에 비하면 저희는 영세한 방송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스타들을 섭외하기도 쉽지 않고, 제작비를 많이 투자할 수도 없죠. 그런데도 청취자들에게 이 정도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기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희는 사심 없이 열심히 일하고 진심을 담아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때문에 이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라디오 PD를 이야기꾼이라고 하셨던데 자세히 듣고 싶어요.
"PD와 작가들은 이야기꾼이에요.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고 청취자들에게 전달해서 공감을 얻어내야 프로그램이 뜹니다. 이를 위해서는 라디오 PD들도 뭔가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하고, 침묵해야한다고 봅니다. 책머리에 니체의 시를 소개했는데요, 이 시가 많은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PD가 되고 싶은 후배들도 좀 더 많이 공부하고, 사랑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어요."

- 앞으로 라디오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세요?
"점차적으로 라디오의 영향력은 감소할 겁니다. 그걸 보여주는 게 광고 매출이에요. 인터넷이나 모바일의 광고 매출은 급속히 올라가는데, 라디오와 TV는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신문은 이미 사양 산업이 됐잖아요. 지금은 TV나 라디오가 조금씩 감소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급속하게 광고 절벽이 올 수 있다는 얘기를 해요.

그렇지만 라디오가 급속하게 소멸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공중파 라디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에 맞춰서 방송사들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으려고 합니다. CBS 경우는 크로스미디어센터를 세웠고, 다양한 채널을 만드는 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전망이 아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팟캐스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정치 쪽 팟캐스트가 많은 인기를 얻었잖아요. 그러나 최근 추세는 정치뿐만 아니라 코미디언들이 하는 팟캐스트도 인기가 있고, 인문학이나 역사 또는 교육 쪽으로도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친숙한 매체가 되었기 때문에, 팟캐스트가 라디오를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요. 지상파 라디오는 제도권에서 보장 받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게 무의미해지는 시기가 오겠죠."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라디오피디 #이덕우 #팟케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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