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따려고... 장화에 복면까지 '완전무장'

하필이면 뱀들과 말벌의 영역 '돌 틈'에 열린 산딸기

등록 2015.06.27 18:05수정 2015.06.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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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운 눈동자처럼 잘 익은 붉은 산딸기
영화로운 눈동자처럼 잘 익은 붉은 산딸기최오균

산딸기가 흐드러지게 열렸다. 텃밭 언덕에 몇 그루 자라던 산딸기가 금년에는 나 좀 보라는 듯 참으로 여물게 열렸다. 가뭄이 너무 극심하여 금년에는 산딸기 따 먹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웬걸 산딸기는 나 보라는 듯이 빨갛게 익어 붉은 입술을 툭 내밀며 미소를 짓고 있다.


잘 익은 산딸기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꼭지가 쏙 빠져 나온다. 잘 익지 않은 산딸기는 아무리 잡아 다녀도 꼭지가 잘 빠지지 않고 몸체가 일그러져 버린다. 올해로 4년 째 이곳에서 산딸기를 따는 나는 이제 척 보기만 해도 산딸기가 잘 익었는지 설익었는지 한 눈에 알아본다. 저 컴컴한 돌 틈에서 자라난 산딸기나무가 이렇게 예쁘고 영양분이 풍부한 빨간 딸기를 열려주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산딸기를 보면 생각나는 시

 뱀과 말벌이 자주 출현하는 돌 틈에 매달린 산딸기
뱀과 말벌이 자주 출현하는 돌 틈에 매달린 산딸기최오균

산딸기도 오줌을 누면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복분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옛 문헌에 '딸기는 양기를 도와주고 살결을 곱게 하며 그 즙을 머리에 바르면 머리가 희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온갖 정력제를 다 섭렵해 온 중국 명나라의 한 황제는 밤마다 이 산딸기를 한 주먹씩 먹었다고 한다.

산딸기의 효능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그 빛깔이 어찌나 곱던지 나는 한여름에 열리는 산딸기의 붉은 색깔에 그만 반하고 만다. 혹시 뱀이 나오지 않을까, 말벌집이 있지나 않을까 겁을 내면서도 나는 산딸기를 조심스럽게 따낸다.

아무도 없는 삼팔선 이북 고요한 적막강산 금굴산 자락,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아나 있는 우거진 산딸기 덤불 속에는 뱀들도 살고, 말벌들도 집을 짓는다. 그러니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실재로 이 지역은 뱀들과 말벌, 지네 등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현을 한다.


 산딸기
산딸기최오균

산딸기를 딸 때마다 나는 이원수 시인의 <산딸기>라는 시가 떠올리곤 한다.

산 속은 너무
조용해서 무섭다
따슨 바람은 괴어만 있어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
꼼짝도 않고


우거진 덤불 속에
아, 아
빨간 저 작은 불송이들
가시 줄기 사이로 죄짓는 듯 딴다
보드랍고 연해 조심스런 산딸기
- 이원수 <산딸기> 중에서

삼팔선 이북 금굴산 자락에 위치한 우리 집은 너무 조용하다. 아침나절에는 바람마저 잦아들어 정말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래 겁을 먹고 산딸기를 따는 내 숨소리만 들린다. 혹여 뱀이 나오면 어쩌지? 산딸기는 대부분 돌담에서 자라나는데, 산딸기나무 우거진 덤불 속에는 유독 뱀들이 많다. 독사, 꽃뱀, 그리고 말벌들도 많다. 아마 그들도 산딸기를 좋아 하는가 보다.

그래도 나는 겁을 먹은 채 산딸기를 딴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복면을 하고… 먼저 산딸기를 따기 전에 지팡이로 주변을 툭툭 두들겨 인기척을 낸다. 그래야만 저들이 피한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저들의 영역이다. 그리고 나는 저들의 영역을 침범한 무뢰한이다. 그러니 저들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저들을 해치지 않으면 저들도 나를 해치지 않을 거다. 자연의 법칙대로 서로가 조심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겁먹어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산딸기를 딴다. 혹시 저 시커먼 굴속에서 독사가 나오지 않을까? 장수말벌이 날아와 나를 쏘지는 않을까? 뱀들은 수시로 이 지역을 넘나든다. 2년 전에는 산딸기를 따다가 말벌 집을 건드려 혼비백산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니 그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새콤달콤 맛있는 산딸기

 아침 식탁에 올라온 산딸기
아침 식탁에 올라온 산딸기최오균

이원수 시인도 이 산딸기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시인의 마음이 그렇게도 지금 산딸기를 따는 내 심정과 똑같을까?

작아도 빨간 딸기 송이는
덤불 속에 열린
영화로운 눈동자
우리도 저런 것이 될 수 없을까

꾸르륵꾸르륵
어디서 괴상스런 소리의 새가 운다
사람이 너무 없어
아늑한 산이
무서우면서도 좋다
- 이원수 <산딸기> 중에서

그 컴컴하고 무서운 덤불 속에서 나는 매일 아침 그 영화로운 눈동자처럼 생긴 산딸기를 한 주먹씩 따 낸다. 장화신은 두 발로 버티고 조심스럽게 산딸기를 딴다. 그리고 그 영화로운 눈동자 같은 산딸기를 아침 식탁에 올려놓고 아내와 마주 보며 한 숟가락씩 떠먹는다. 그 빨간 불덩이를….

산딸기는 맛이 정말 새콤달콤하다.

 장화를 신고, 복면하고 장갑 끼고 조심스럽게 산딸기를 딴다.
장화를 신고, 복면하고 장갑 끼고 조심스럽게 산딸기를 딴다.최오균

불을 먹자
따스하고 서늘한
달고 새큼한
연하고도 야무진 불, 불의 꼬투리
네 입에도 넣어주고
내 입에도 넣어주고
- 이원수 <산딸기> 중에서

시인은 어쩌면 이렇게도 적나라하게 지금 우리들의 마음과 똑 같은 심정을 노래했을까? 참으로 시인들은 언어의 마술사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따슨 바람이 괴어 있는 무섭도록 조용한 산속에서 죄짓는 듯 빨간 불덩이를 따고 있다.
#산딸기 #연천군 #임진강 #굼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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