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본권 개헌을 위한 방향과 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낸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본권 생활 개헌'을 본격적으로 제기함으로써 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던 개헌 논의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남소연
신 의원은 "실질적이고 진정한 개헌은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한 개헌 두 번뿐이고, 나머지 개헌은 권력층 편의대로 주무른 것이다"라며 "4·19혁명이나 6월항쟁 이후에 한 개헌도 급급한 나머지 제헌헌법이 가진 문제들을 제대로 망라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헌법 제정 당시 유진오 박사는 의원내각제로 가려고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거부해 헌법기초 위원들이 하루 아침에 줄을 긋고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어 버렸다"라며 "미국 등 몇 나라가 예외이긴 하지만 민주국가들은 대부분은 의원내각제가 상식이다"라고 말했다.
"4·19혁명 직후 3차 개헌을 통해서 의원내각제로 갔다. 이것의 의미가 큰데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인해 다시 대통령 중심제로 되돌아갔다. 지금 헌법은 5·16 헌법, 제3공화국 헌법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6월항쟁 이후에도 대통령 중심제라는 권력구조는 바꾸지 않고 대통령 선거방법만 직선제로 바꾸었다. 너무나 당연한 대통령 직선제를 다시 되찾은 것 외에 마지막 개헌(9차 개헌)에서 얻은 것은 없다."신 의원은 "9차 개헌은 각 당에서 차출된 8명의 의원들이 한 달 만에 만든 것이어서 기본권 등 제헌헌법의 미비한 점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라며 "기본권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제헌헌법 이후 헌법을 한 번도 고친 적이 없었다"라고 아프게 꼬집었다. 실제로 그동안 진행된 개헌 논의에서도 기본권에 천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가 지금 기본권에 중점을 둔 개헌을 제기하는 이유다.
"헌법의 진정한 존재 가치는 이처럼 기본권 수호의 '권리장전'이자 공동체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회통합적 역할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본질'에서 개헌의 논거를 찾아야 한다. (중략) 따라서 이번 개헌 추진은 정치세력 위주의 '권력 개헌'이 아닌, 국민 기본권 중심의 진보적인 '민생 개헌'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최근까지 정치권에서 나오는 개헌 발언은 온통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견해뿐이다. 이미 과잉 상태인 권력구조 담론에 여론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다. 정치권의 선도세력이 담론의 초점을 이동시켜 기본권 분야를 집중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개헌에 대한 국민의 호감과 광범위한 공감대를 견인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략) 현재의 개헌 논의는 선후가 뒤바뀌었다."(<기본권 개헌을 위한 방향과 과제>, 36~37쪽)
신 의원은 "기본권 개헌과 관련해 개별사항들을 지적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본권 개헌을 제시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라며 "내용이 미흡할 수 있지만 내 지식과 생각, 경험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크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본권을 중시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또한 신 의원은 "우리나라는 국가주의적인 색채가 너무 강해 국민의 기본권이 경시되는 경우를 변호사 시절 법정에서 많이 봤다"라며 "국회에 들어와서도 그 근원을 따져 보니 국민의 기본권을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상당히 약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의식이 약한 원인 중 하나가 헌법 자체의 미흡함이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규정해줘야 하는데 기본권 조항도 적고 불충분하다. 헌법 자체가 워낙 미흡하고 불충분하니까 좋은 헌재 판결이 안나온다. 보수적인 헌재, 보수적인 판결로 흐를 수밖에 없다."신 의원이 제기하는 '기본권 개헌'에는 ▲ 남녀의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규정 ▲ 가사와 직장 생활의 양립을 보장하는 모성보호 조항 ▲ 미혼모의 특별한 보호 ▲ 어린이집 폭행 등을 방지하기 위한 아동인권 조항 신설 ▲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 ▲ SNS시대의 정보기본권 신설 ▲ 군인 기본권 보호 ▲ 평시 군사법원 폐지 ▲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 장애인의 실질적 평등권 강화 ▲ 토지공개념의 명문화 등이 포함돼 있다.
남녀 동일임금 규정이나 평시 군사법원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등은 상당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신 의원은 "명문규정을 두는 등 헌법이 구체적으로 역할해야 인권의식도 높아진다"라며 "70년이 지난 헌법도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저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청산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쉽지는 않다. 이것을 돌파할 능력이 우리 사회나 정치권에 있을지 우려된다. 국회의 권능이 강화되는 것을 싫어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보수언론과 현직 대통령을 품은 세력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권 개헌에 반대할 명분이 있을까?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권력구조 개헌이 어렵다면 그것보다 기본권 개헌을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신 의원은 "국가주의자, 국가우선주의자는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자는 안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 사회에 국가주의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남녀 동일임금이나 선출직 동수, 대체복무 허용 등이 논란이 많다면 논쟁하자, 그 논쟁을 통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권을 중시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라고 강조했다.
"아이슬란드처럼 국민 참여형 개헌으로 가자"신 의원은 <기본권 개헌을 위한 방향과 과제>에서 '아이슬란드 사례'를 들었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위기 타개와 국가 쇄신을 위해 국민들이 참여하는 개헌안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 2010년 '개헌포럼'을 출범했다. 정치권은 개헌 논의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했고, 국민들은 포럼과 SNS를 통해 의견을 냈다.
이렇게 마련된 개헌안은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헌법심의회의 숙의를 2년간 거쳤고, 그 결과물(개정헌법 초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리고 지난 2012년 11월 국민투표를 통해 '아이슬란드 경제를 외부 자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헌법이 확정됐다. <뉴욕타임즈>는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집단지성을 통한 개헌작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신 의원은 "아이슬란드는 개헌을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라며 "더 경쟁력있는 국가, 더 올바른 국가로 만들기 위해 헌법을 좀 더 나은 헌법으로 만드는 것부터 출발했고, 이것은 국민의 의식을 새롭게 하고 국력을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헌법기초심의도 정치권이 독점하지 않았다. 헌법심의회에 시민들과 전문가를 참여시켜 헌법 개정안을 기초하고 심의했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국가제도를 효율적으로 만들었고, 국민 의식도 새롭게 진작시켰고, 국민을 다시 뭉치게 했다."신 의원은 "우리에게는 국가, 인권, 역사, 미래 등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 국가 노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고민하는 계기가 없었다"라며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국민들은 어디에 위치해 있나, 어디로 가야 하나 등을 광범위하게 토론할 때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즉 아이슬란드처럼 '국민 참여형 개헌'을 시도하자는 제안이다.
신 의원은 "권력구조 개편이든 기본권 개헌이든 개헌 논의가 국가를 총체적으로 재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며 "다음에는 의회민주주의에 강한 소신을 가진 대통령이 나와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대통령이 개헌에 앞장섰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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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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