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학과가 사라졌습니다

대학 내 학과 구조조정 물결... 그 속의 학생들

등록 2015.07.11 19:47수정 2015.07.1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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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대학의 수는 늘어났지만, 학생은 줄어들고 교육의 질은 부실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국가 차원에서 고등교육 구조개혁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에 대학 내 정원 감축을 하지 않으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내놓은 중앙대나 10여 개 학과를 통합·폐지한 건국대 등 많은 대학이 학과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신이 다니는 학과가 없어지면서, 대학생들의 일상에는 금이 가고 있다. 작게는 해당 학과 학생들, 나아가 대학생들은 학과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사라져 버린 우리 학과

지난 2014년 4월, 상명대 일어교육과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내년부터 일어교육과는 인문사회대학 한일컨텐츠학과로 통합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4년도 일어교육과 학생회장을 맡았던 장성은(25)씨는 "4월 초 불어교육과가 폐지된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고, 일주일 후 일어교육과 또한 학과 구조조정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라고 말했다. 일어교육과뿐 아니라 사범대 내 학과들이 아예 없어지거나 전혀 상관없는 학과와 합쳐져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상명대는 1937년 민족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상명여자고등기예학원을 모태로, 1965년 상명여자사범대학으로 개교해 지금까지 왔다. 장성은씨는 "폐과를 하기 전에 해당 학과에 소속된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했더라면 더 나은 방안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면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결정이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상명대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사범대가, 단지 취업률과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학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데에 학생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기껏 신설해놓고 몇 년 만에 폐과시켜


이처럼 오래 존속해왔던 학과들뿐 아니라 신설 학과들이 오래되지 않아 폐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9년부터 우후죽순 생겨난 자유전공학부는 열린 전공 탐색을 통해 융합형 인재를 배출하고자 하는 취지로 신설됐지만, 경영·경제 등 인기학과로 학생들이 쏠리자 중앙대·성균관대 등 몇몇 대학에서는 학부 폐지를 결정했다. 연세대의 경우 2011년도부터 자유전공학부 인원을 점차 줄여 2016학년도부터는 더는 입학생을 받지 않는다.

수많은 신설학과 및 학부가 금방 사라지면서 학과·학부에 대한 학생들의 소속감이 줄어들고, 공동체도 무너지고 있다. 연세대 자유전공학부 부학생회장 윤서영(21)씨는 "학부 폐지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면서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공동체 문화 또한 존중받지 못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학과를 신설한 후 그 취지를 살리고자 하는 학교 측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같은 학부 학생회장 최한솔(22)씨는 "단순히 학생들이 상경·경영계열로 몰린다는 이유로 학부를 없애기보다는 학생들이 적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전공 탐색의 기회를 늘렸어야 했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학과 구조조정, 그 과정에서

상아탑, 학문 공동체로 여겨져 왔던 대학도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학과 구조조정도 그 양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학생들 또한 현실적인 측면을 인정하며, 학과 구조조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최한솔씨는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며 새로운 학과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 사라지거나 통합되는 학과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장성은씨 또한 "정원을 줄여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학교 운영에서 재정적인 면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학과가 통합 혹은 폐지되는 과정에서 학교와 학생 측의 소통이 이루어져 그 결과가 달라진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홍익대 조형대학 내 영상영화 전공과 애니메이션 전공이 통합될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조형대학 재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 본부와의 소통을 지속했다. 마침내 6월 말, 조형대학 내에 위원회를 설치해 앞으로 전공 개편이 있을 경우 학생대표 및 전공주임교수의 의견을 수렴해 일방적인 통합을 막을 수 있었다.

학과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학문의 특성을 무시한 채 학과를 통합·폐지하거나,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점은 분명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이대엽(21)씨는 "입시 결과나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학과를 통합·폐지하다 보니 각 과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무너진다"며 "학생들은 취업뿐 아니라 학문 추구, 인맥 등 다양한 목적을 갖고 대학에 오는데, 학교도 평가지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들의 다양한 목표를 포용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정서현님은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기자단 소속입니다.
#구조조정 #학과 통폐합 #평화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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