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붙잡고 얘기하고 싶은 탄자니아 사람 이러한 외국인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태도는 식민지 경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오랜세월동안 탐욕스런 정복자 (영국정부가 아닌 세실로드란 일개 기업)로부터 수탈을 경험한 짐바브웨, 잠비아인들은 처음 보는 외국인을 보스라 부를 만큼 주눅이 들어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식민지 역사와 영국정부의 유화 통치정책으로 탄자니아, 케냐인들은 외국인을 라피키 (친구)라 부르며 다가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근승
쪽팔려 죽겠다. 조그만 소도시인 모시 시내를 거닐어도 뒤통수가 후끈거리록 쳐다보는데, 하물며 무슨 연유로 법원에 나타났으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생전 경찰서 문턱 한 번 걸치지 않았던 조선놈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재판까지 받게 될 줄이야.
온갖 난리 부르스로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재판장에 있던 판사가 경찰을 부른다. 그 경찰은 쪽방 창문으로 다가가 사정없이 곤봉을 휘두른 다음, 나보러 저기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있으라고 눈짓을 한다.
재판장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로 가 앉았다. 조금씩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저어기 창살 안으로 그놈이 보인다. 그 앞에 서성거리는 그놈 동료들도 보인다. 그래도 제법 의리는 있나 보다. 그런데 눈이 마주쳐도 아는 체를 안 하고 외면해 버린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인사를 정말 밥 먹듯이 지겹게 하는데(인사를 안 하면 '아비없는 자식' 소리를 듣는다), 이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좀 의외다. 호미로 막을 일을 왜 가래로 막게 되었는지 알려나 모르겠다.
한 시간이 흐르도록 그놈과 동료들, 그리고 내 시선은 서로에게 고정돼 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낙서를 하고, 애써 지저귀는 새를 바라보는 척했을 뿐이다. 아마도 누군가 일어서서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았느냐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 다 여기 올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다.
먼저 그놈이 신호를 보낸다.
지부티가 갔다 와서 전하길 어젯밤부터 집안엔 먹을 것도 하나 없고, 아기는 배가 고파 운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내로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용서해달라고 한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미풍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바뀔 것 없는 상황 아닌가.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해서 예정된 재판이 취소될 일도 아니다.
일단은 더 가 보고 싶다. 한번 터진 물길이 나를 대체 어디로 싣고 가는지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 후회가 되더라도.
재판은 일주일 후로 연기되었다. 역시나 목사님 말씀이 맞다. 결론 없이 계속 출석 통지서만 나온다 하더니만.
법원을 나서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돈이나 가구는 미련없이 포기한다. 그러나 이 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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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법원에서 만난 '그놈', 마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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