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에서의 식사 시간(첫날 저녁식사 때의 모습임)
송주민
그래도 왠지 우리를 보는 눈길이 호의적이다. 간혹, '꼬레'(Corée, 한국)라는 말도 들리는데, 이 프랑스인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한국은 이 수녀원의 명맥을 잇게 해준 고마운 나라일 게다. 대다수가 한국인으로 채워져 있는 프랑스의 수녀원. 저 멀리 바다 건너 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교회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듯, 제3세계 이방 땅에 뿌려진 씨앗들이 이제 본토 터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한국을 좋아해요."아니나 다를까, 이 말이 들려온다. 그 이상의 대화는 어렵다. 봉수와(저녁 인사), 메르씨(감사해요), 위(예), 농(아니오)…… 간혹 들려오는 아는 단어와 불어 특유의 비음이 짙게 섞인 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던져지지만, 우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웃음만을 지을 뿐.
세끼 모두 수녀원에서 먹고 있다. 프랑스 가정식을 이렇게 먹어볼 줄이야. 전에도 몇 번 파리에 왔었지만, 주머니 얇은 청년 여행자로서는 빵류나 무겁지 않은 한 접시 음식을 끼니로 때웠다. 오늘의 전식은 야채 수프('뽀타주'라고 부르더라)다. 두리번거리며 본토 사람들이 먹는 걸 보니 별다른 방식은 없다. 그냥 먹기도, 바게트에 찍어 먹기도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깔끔한 맛이다.
"쎄트레봉! (아주 맛있어요)"본식은 생선 요리다. 농어에 각종 야채류를 쪄서, 별다른 양념을 가미하지 않은 음식이다. 양념류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은 원재료 그대로의 맛이다. 앞자리에 프랑스인 아저씨가 생선과 잘 어울린다는 화이트 와인을 슬쩍 따라준다. "메르시" 감사 인사를 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포크를 드는 내게, 그녀가 말을 건넨다.
"나 여기 있을 때 요리하는 영감을 얻었다고 할까. 특별한 양념이나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고, 원재료의 맛을 잘 살려서 조리하는 법 말이야."나도 담백한 게 좋다. 그런데 이제 배부르다. 양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전식과 본식으로도 충분하다. 옆에 아주머니가 더 먹으라고 건넸지만,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주머니는 보디랭귀지로 "살도 안찌고 말랐는데, 더 먹어도 되겠는걸?"이라는 투로 말하고 있다. 나는 다시 미소로 거절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후식으로는 달콤한 건대추 야자와 초콜릿이 나왔다. 여기 사람들은 꼭 이렇게 식사 말미에 단 음식을 먹더라. 배불러도 이건 또 들어간다.
말없이 음식과 분위기만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낸다. 필수 불어 표현이 담긴 앱을 실행하고, 어설프게나마 할 말을 찾아본다. 그래 이거다. 혀를 가다듬고, 외친다.
"쎄...트레...봉!(C'est très bon,이것은 아주 맛있어요)"말 없던 자의 한마디에,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린다. 그러나 "쟤 지금 뭐라는 거지?"라는 눈치다. 나는 다시 혀를 굴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천천히 "쎄트레봉!"을 말한다. 그제야, "아하!"라는 반응과 함께 모두 껄껄대며 웃는다.
수녀원에서 이런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전에 여행할 때는 꼭 한식이 그립곤 했는데, 이렇게 정찬으로 제대로 먹으니 그리 물리진 않는다. 오렌지를 직접 키워 오렌지 잼을 만들어 내주셨듯이,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수도생활자들의 감추어진 공간에 가면,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 싱그러운 텃밭이 있는 것일까. 소박한 우리를 두르고, 구구구구 울어대는 닭이라도 기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게 많은 이곳, 그리고 생폴드방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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